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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5년 10월
평점 :
총 3개의 단편.
❝묻고 싶다.천선란 자네는 대체 어떤 살아을 해온 것이냐고 ❞ by 박정민
묻고 싶다. 박정민 당신은 대체 어떻게 한 줄 요약을 이렇게나 잘하는 것이냐고! by 제로
딱 한 줄로 요약하면 나도 저 심정이다.
1편을 읽을 땐 그저 잔잔하게 따스했다. 그리고 나름 신났다. 이번 작품은 난이도가 낮군. sf 세계관이 힘든 사람들도 따라가기 쉽겠어. <천 개의 파랑>처럼 사람이 아닌 개체와 이름 정도만 흡수하면 되는 정도라 좋았다.
그런데 슬슬 그가 말하는 사랑의 찐함이 1편 중후반부터 몰려오다 2권에 폭발했다. 폭발 수준이 엄청나서 나는 3권에서 오히려 cool down 되는 느낌이었다.
1부 제 목소리가 들르십니까
우주선에서 꽤 긴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좀비 영화가 현실화됐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나는 이곳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데!
학대받던 내가 살아갈 수 있던 힘이 되어주던 묵호를 두고 갈 수가 없다.
감염된 묵호. 함께할 수 있을까?
2부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
좀비를 피해 다들 떠나간 도시.
자폐 아들을 홀로 키우는 은미는 집엔 삶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엄마를 지키는 한 소녀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의사인 은미는 아픈 아이를 낳았다는 모든 비난을 홀로 감수해야 했고, 그런 아이를 키우는 일에 버거운 마음에 도망치고 싶었다. 왜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걸까? 아이를 버리고 싶다는 그 나쁜 마음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다. 아픈 존재가 자식이어도 도망치고 싶은데, 직계 존속이라면? 안타깝게도 인간은 내리사랑의 법칙이 있다. ㅠ 아픈 부모 분명 내 엄마이고 아빠이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나의 목숨까지 위험에 빠지는 상황에 이 존재들을 끝까지 감내할 수 있을까? 버리지 못하면서 버리고 싶은 마음 그 자체로 느끼는 죄책감 이 양가감정 속에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
3부 우리를 아십니까?
좀비가 된 아내와 함께 거북이를 바다에 보내주는 여정을 떠난다.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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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행동하지 않았다면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다는 거다. 마음마저 순결한 사람을 적어도 아빠는 살아오면서 본 적이 없다. 단지 순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열매 같은 거란다. 씨앗은 같지만 어떤 과육은 싱그럽고 어떤 과육은 썩어 있지. 또 어떤 건 달기도 하고 어떤 것은 쓰기도 하지. 떫기도 하고, 혀를 아리게 만들기도 해. 같은 씨앗이 모두 같은 맛을 내지 않는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중요한 건 씨앗보다 과육이야. 마음보다 보이는 모습이 어떤지가 더 중요한 법이야. 아빠가 늘 말했잖니. 사람의 친절은, 그냥 친절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그 속에서 어떤 안타까움이나, 어떤 우월함이나, 어떤 기만이 들어 있다고 한들 우리가 그것까지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고. (중략)
그러니 엄마가 심심해할 거리고, 외로워할 거라고, 슬퍼할 거라고 생각해서 너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지 말기로 아빠랑 약속했잖니. 150p
말이라는 것이, 소문이라는 것이, 조롱과 험담이라는 것이, 걱정을 뒤집어쓴 위로라는 것이 출처와 시기가 뚜렷한 채로 퍼졌던 적이 있던가. 어디에나 눈이 있다. 어디에나 입이 있다. 그 눈과 입은 주인이 없다. 마음껏 구경하고 떠들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177p
내 삶이지만 내가 쥘 수 없어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은 환자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삶까지 죄다 쥐고 있어서. 포기하는 것 외에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삭제된 상태로 멈출 수도, 내릴 수도, 끝낼 수도 없이 너무 오랫동안 멀리를 느낀다. 183p
이렇게 찐한 사랑을 쓰시다니.. 잘 쓰고 싶은 리뷰는 더 쓰기가 어렵다.
오래 묵혔는데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쓰긴 썼으나…
가을엔 사랑이죠.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