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해로외전
박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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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지 못한 사람이 악인이면 그 주변에만 파장이 있지만, 똑똑한 사람이 악인이면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맥락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을 표현하는 말은 아니지만, 그 문장이 떠올랐다.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 부가 따르는 경우. 하필 오직 큰아들만 바라보는 엄마가 많았던 시절이라면?
2남 2녀의 가족 구성원을 이룬 한 집안에서 큰아버지의 부로 다른 가족들이 도움(?)과 상처를 입는 이야기.

큰아버지 댁, 여름이면 능소화가 환하게 피어 있던 집. 마당이 딸린 번듯한 이층짜리 독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던 집.

수현의 가족이 그 집에 살았던 것은 잠시였지만, 작은 고모는 그 집의 일하는 사람이 지내는 방에서 수진 언니와 꽤 오래 머물렀다. 부유했지만 종종 친정에 찾아와서 악마같이 행패를 부리는 어린 딸과 방문하던 큰 고모와 편가르기와 눈치가 빨랐던 예리가 있었던 곳. 칼보다 날카로운 할머니의 말이 쏟아지던 곳.

학교에서의 일로 약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에게 연락하려고 하지 않는 정상에서 조금 궤도를 벗어난 생활을 하던 중 바닷마을 언니의 사춘기 딸인 수진이 잠시 집에 머물게 됐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돈을 주고 한 국제결혼이라는 시선을 받아야 하는 큰아버지의 아들 장훈 오빠의 딸인 수아는 고모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여기서 고모는 한국에 사는 고모가 아닌 큰아버지의 전처의 버려진 딸들 중 한 명이었다.

할머니가 큰고모에게 시집가지 말고 장훈의 두 누나, 장선과 장희를 맡아 키우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일찍 출가한 둘째 딸은 어쩔 수 없고 네가 맏딸이니까 맏딸 노릇을 하라고 강요했다는 거였다. 큰고모는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괘씸하다고 했다. (중략)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큰고모는 ❛감히❜라는 말을 내뱉었다. 124p

야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장희는 프랑스에서 의사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포기했던 가족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야엘. 그녀는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좋은 부모를 만나 지금에 이를 수 있었지만, 버려졌다는 상처보다 더 큰 부채감을 품고 있었다. 오로지 남자 아이만을 품었던 사회에서 어린 그녀가 품었던 질투가 불러온 일이었지만, 어른들은 그걸 이해해 주려 하지 않았다.

큰아버지의 두 번의 결혼으로 생긴 두 아이의 입양. 남은 한 아이. 그리고 새롭게 생겨난 가족에서 남은 아이의 심정은 어떠한지? 큰 집에서 잠깐의 생활이 아직도 상처로 남은 수현과 달리 그 집에 오래 살았던 수진 언니의 의연함은 어디서 온 것인지? 책은 보여주지 않는다. 진정한 외전을 기다리게 만드는 책이다.

책은 꽤 많은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어수선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촘촘하게 잘 쓰인 글이었구나. 책을 덮고 든 생각이다. 다만, 그걸 리뷰로 표현할 내 능력의 부족이 안타까울 뿐…

옛날에 서울에서 살 때,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었어. 우리 일가가 이만큼 살고 있는 건 전부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 덕분이라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행려 병자가 된 남편을 죽을 때까지 거둬 먹였기 때문에, 비록 아버지는 칠순도 맞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그 순간까지 함께했기에, ‘백년해로’했기에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는 거라고. 301p
책의 제목이 이런 무서운 뜻을 품고 있었다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곧 다시 읽을 ‘시선으로부터’랑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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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말 그대로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야말로 제대로 살아볼 기회가 생긴다고 누군가 그랬다. 나는 그 말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저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기를 쓰고 모른 척했던 많은 이야기들.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내 복수를 대신 해준다고 생각하며 남의 불행에 슬그머니 웃던 순간들. 그러나 슬픔에 빠져 구덩이 앞에 쭈그려앉은 사람의 등을 발로 차는 사람이 나 자신은 아니었는지. 돌아보면 너무나 이른 나이부터 나는 내가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에도 착한 아이가 아니었고 딱히 좋은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착한 아이, 좋은 사람이란 것도 전부 이데올로기일 뿐이야, 라는 말 뒤에 슬며시 숨었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학생이 내게 연락해서 간절하게 말할 때,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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