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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듣는 시간 -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다큐멘터리 피디의 독서 에세이
김현우 지음 / 반비 / 2021년 11월
평점 :
다큐멘터리 PD인 저자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많은 타인을 만나며,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의 위험함. 연대의 언어인 ‘우리’라는 언어로 인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책과 연결하여 이야기한다.
책은 총 1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챕터에 한 권씩의 책의 일부 문장이 소개된다.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자, 유족, 방사능과 수은에 오염된 열악한 지역에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시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을 만나며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노력하며 접근한다. 프로그램에 큰 역할을 할 사람이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더라도 무리해서 촬영을 진행하지 않는 그의 자세에서 그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를 엿볼 수 있다.
- ‘연대’는 타인을 이해한 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상관없이 그들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타인의 존재를, 그이의 고유한 세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내가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타인의 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탓해야 할 것은 타인의 지닌 낯선 특징이 아니라 그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편협함이어야 한다.
- 혁명의 언어는 때로는 무례하고, 자주 무력하다.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그때까지 살아온 몸의 경험과 감각에 따라 결정된다.
- 어째서 개인들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그들이 살고 있던 어떤 시기 어떤 공간에 대한 사회적 기록이 될 수 있는가? 그런 단위의 확장이 가능한 것은, 개인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계들이 교차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 이해란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몸으로 하는 것이다.
- 우리는 남이고, 각자가 가장 확실하게 전할 수 있는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밖에 없다. 그 사실에 무감한, 혹은 ‘더 큰 이유’를 들이대며 그 사실을 외면하는 이들의 연대는 환상일 뿐이며, 섣불리 ‘우리’를 칭하면서 공통의 언어(라고 하지만 사실은 권력을 가진, 혹은 가지고 싶어 하는 쪽의 언어)로 타인의 경험을 재단하는 것은 폭력이다. ‘각자의 모습을 유지한 우리’여야만 우리의 연대도 더욱 확고할 것이다.
- 나의 목적이 분명하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세계에서 분명 이로운 것이라고 해서 나의 세계 바깥에 있는 타인에게도 이로운 것이라는 확신이 바로 오만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