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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난치병을 딛고 톨킨의 번역가가 된 박현묵 이야기
강인식 지음 / 원더박스 / 2022년 4월
평점 :
기자인 저자가 난치병을 앓고 있는 ‘박현묵’군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국내외적으로 매우 드문 유전질환인 중증 혈우병 환자인 박현묵군. 단순 혈우병이 아닌 중증 혈우병이다. 그 어떤 약으로 통제되지 않는 혈우병을 앓고 있기에 수시로 몸 속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그 출혈이 잡히지 않고 모든 관절이 망가지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그게 그가 갖은 병이다. 그런 그가 톨킨의 책을 번역했다. 그리고 서울대에도 입학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나 ‘인간승리’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그렇게 읽히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처음 기사로 쓰려했던 것을 틀어 책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인간승리로 박현묵이란 사람을 말하기엔 그는 너무 큰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묵은 증상이 심해 초등학교만 다닐 수 있었다. 그마저도 반밖에 등교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어서 많이 슬퍼했지만, 그는 그만의 세계(침대)에서 ‘반지의 제왕’을 만났다. 톨킨이 만든 세계는 방대했고 그 세계를 탐닉하는 박현묵의 지적 호기심은 왕성했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현묵의 엄마는 현묵을 아픈 아이로만 대하지 않았다. 현묵을 이고지고 어디든 데리고 다녔다. 그 덕분에 현묵의 세상은 침대로 국한되지 않을 수 있었다.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삶을 살면서도 현묵은 톨킨 덕질을(‘중간계로의 여행’이라는 팬카페) 이어갔고, 그 세상에서 선생도, 아이돌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반지의 제왕의 오류도 발견하여 전세계 판본을 수정하게 만드는 일도, 아직 국내 번역되지 않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번역도 하게 된다. 아무런 댓가 없이 2년여간 홀로 꾸준한 번역을 해 온 것을 반지의 제왕 판권을 산 ‘아르테’ 출판사의 팀장이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알아본 덕분이다.
2018년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한림대 소아청소년과 유전병 전공의 ‘김준범’교수를 찾아갔고, 어떤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은 현묵에게 신약 임상실험에 참여하게 한다. 2019년 6월에 신약 치료를 받게 된 현묵은 처음으로 출혈이 잡히고, 생기더라도 쉽게 치료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통증에서 좀 자유로워지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의 도전은 이어진다. 고등 검정고시, 번역, 대입.
톨킨의 세계에 푹 빠져 지낸 이 소년은 국어 문법과 고전이 재미있단다. 번역으로 다져진 그의 영어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수학도 홀로 독학을 이어간다.
“나의 10대는 나태함에 아픔이 양념처럼 뿌려진 상태”라고 표현하는 박현묵. 나태함에 대해 이토록 엄격한 사람이 또 있을까?
- “사춘기 시절질풍노도는 늘침애 위에서 끝났어요. 그렇다고 해도 아프다는 것으로 나를 정의하거나, 무엇을 못 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삼고 싶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못 했다면 그것은 나태함 때문이에요. 장애 때문이 아니죠. 나의 10대는 나태함에 아픔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는 상태였어요. 혈우병도 장애도 저의 주인은 아니었어요.
- 어려움, 아니 어려움이라기보단 비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묵의 사례는 비극과 마주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비극 안에 양념같이 희극을 넣는, 비극에 함몰되지 않고 그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유연함을 배우는, 그래서 어느 순간 그 비극을 역전시킬 기회를 얻는, 그런 이야기일 수 있다.
+ 박현묵이 번역한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톨킨의 다른 책과 달리 스토리로 서술되지 않고, 온갖 설정에 대한 주석과 해설이 넘쳐나는 거대한 신화이다. 그래서 반지의 제왕 기존 역자들도 선뜻 번역에 나서지 못하는 책이라고 함.
+ 반지의 제왕 덕후들 넘사벽…;;;
박현묵님 외에도 팬카페 활동하시는 분도 오류를 발견하고 영국 출판사에 알려줬다고 한다.
+ 읽으며 감탄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