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없는 페미니즘 - 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
김익명 외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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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텀블벅 펀딩 참여를 통해 구매한 책이다. 페미니즘 서적 출간에 힘을 보태고 싶기도 했고, 나의 취미 중 하나가 책 모으는 것이기도 해서 참여하게 되었으나 이 책을 구매하고 책장에 꽂아둔 채 3년이 흘러 집어 들게 되었다. 늘 책과 가까이 지냈던 것은 아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생각에 세 가지 정도의 변화가 있었는데, 첫째로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워마드에 대한 나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 2008년 경에 생긴 일베와 비슷한 언어를 쓰는 워마드에 대해 반감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워마드=여성 일베’라는 나의 인식은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대로였을 것이다. 이 책이 내 생각을 많이 바꿔주었다.

‘왜 그들은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었던 나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워마드를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언어를 빼앗는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했다. 2008년에 일베에서 시작된, 이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혐오의 언어들에 권력자들은 방조했고 어쩌면 동조했다. 이를 차용한 언어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워마드를 잘못된 것이라고, 왜 더 유순한 언어를 사용하여 여성운동을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또다른 여성 혐오이며 페미사이드인 것이다.

나는 늘 남성인 내가 페미니스트일 수 있나, 여성 앞에서 내가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해도 되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고 내 생각과 같은 부분이 있어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얻은 결론은 나는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페미니즘에 공감하고 공부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남성들이 있는 자리’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야 하고 나의 목소리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남성들에게 더 잘 닿기 위한 ‘바람잡이’ 정도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무대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여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이지만 페미니즘의 당사자가 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받고 동그라미를 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페미’였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여성단체에 매달 약간의 돈을 후원하고 이렇세 가끔은 펀딩에도 참여하지만, 페미니즘 당사자가 아닌 나는 페미니즘 밖엔 길이 없는 여성들과는 달랐다. 그냥 입으로 주절거리고, 손가락으로 조금 탁탁 쓰고 나서 페미니스트라는 칭호를 얻길 바라는 ‘입페미’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남성들은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이것이 두 번째이고 이를 통해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하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행동해보려고 한다.

세 번째는 여성운동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똥꼬충’이라는 단어에서 기인한 성소수자 혐오에 관한 문제에서 페미니스트들 간의 갈등이 심했었는데, ‘똥꼬충’이라는 단어는 자신의 정체성을 속이고 여성과 결혼하는, 그리고 여성 혐오적인 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게이 남성들에 대한 미러링으로 생겨난 용어였다. 이 미러링 단어의 사용 여부 문제가 당시 메갈리아가 워마드와 갈라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때는 나도 ‘혐오를 혐오로 되갚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었고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게이 남성들의 여성 혐오 문제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적 약자와의 충돌 문제는 작년 트랜스젠더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 반대 문제에서 또 터져 나왔다. MTF(이 책에서는 MTT라고 나온다)가 여대에 입학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학생들은 ‘생물학적 여성’만이 여대에 입학해야 한다고 트랜드 여성의 입학을 반대했고 결국 입학을 포기했던 사건이었다. 이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 나 역시 수술을 통해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했으니 당연히 여대에 입학 가능하고 여성들이 이에 학생들이 반대하는 것이 퀴어 포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물론 트랜스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대에 입학하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왜 반대했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역시 남성들의 유구한 여성 혐오에서 기인한 것이었고, 남성들(게이 남성 포함)의 통렬한 반성과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남성 대학생들이 여대에 가한 폭력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저자는 여대는 여성만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여대라는 여성들의 공간에서도 젠더 권력을 행사하려 하는 남성들을 규탄한다. 숙명여대 트랜스 여성 입학 반대 역시 이것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수술을 통해 자신을 정체화한 여성’이라는 것보다 ‘그가 생물학적 남성이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만큼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공포심은 크다는 것이리라. ‘생물학적 남성’이었던 트랜스 여성을 여대에 입학시키게 되면 여대가 더이상 여성들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어질 수 있다는, ‘남성이 여성들의 공간에 침투할 여지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남성들은 이 문제에 뒷짐 지고 있거나 트랜스 여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퀴어 포빅이라고 손가락질하기만 했던 것이다. 가장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할 주체가 반성은커녕 혐오라고 손가락질만 했던 것을 깊이 반성한다.

그 밖에도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이 책이 변화시킨 나의 생각에 대해 서술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아직 나는 더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하고 나의 성별 고정관념들이 더 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여혐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기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더 입을 다물고 여성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워마드라는 존재를 평가했다는 것에 반성하게 되었고 ‘입페미’로 사는 것에 안주하는 나를 돌아보고 행동하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다. 더 열심히 듣고 읽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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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4-21 0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올라오는 것도 놀랐지만 읽다가 남자 분이라 하셔서 더 놀랐습니다. 잘 읽었어요. 이 책 리뷰 저도 썼던 거 생각나 다시 읽어보러 가보니 제일 먼저 달린 댓글이 ‘여자만 안고 가겠다는 용자 납셨네’ 네요. 하하하.

이월 2021-04-21 10:46   좋아요 1 | URL
잘 읽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이 그랬던 것처럼 ‘헛소리를 하는 남성에게는 꺼지라고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 같아요🙄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출구 1
허새로미 지음 / 봄알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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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피해의식이 있다는 건 피해를 지우는 말이다. 아주 흔하게 너 미쳤다는, 예민하다는, 별스럽다는, 까다롭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내면을 파헤치면 ‘아무것도 되묻지 말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라’는 뜻의 말이다. 이 무서운 세상에 딸이 갈 곳이라고는 가족 밖에는 없는데 가족을 의심하다니 너에게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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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출구 1
허새로미 지음 / 봄알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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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갔을 때는 2층 버스를 꼭 타고 싶었던 엄마의 청을 들어주고 싶어 무리하다 결국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치기도 했다. 설거지나 방 청소는 엄마 마음에 꼭 들게 해놓지 못하는 딸이지만 장남처럼, 아들처럼, 사람 구실하는 자식처럼 엄마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게 하는 그런 딸이고 싶었다. 나는 아들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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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목소리 - 사물에 스민 제주4.3 이야기
허은실 글, 고현주 사진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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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끝내 남아 부르는 노래(허은실) (P245)
다른 책들을 읽을 때는 좋았던 구절들에 밑줄도 치고 손으로 노트에 써가면서 읽었는데 이 책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생존자와 피해자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좋을 수가 없었다. 책의 마지막에 와서야 한 구절 적어볼 수 있었다.

이 구절은 북촌 재후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그래, 난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구나.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무슨 글을 쓴다고 중앙정보부에서 잡으러 오지 않는다. 안기부에서 나를 남영동으로 끌고가 몽둥이로 매질하고 물에 머리를 처박아 거짓 자백을 강요하지 않는다. 군사재판에 넘기지도 않는다.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나는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구나.

자기 표현을 거리낌 없이 하는 게 평화 아닙니까?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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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목소리 - 사물에 스민 제주4.3 이야기
허은실 글, 고현주 사진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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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이었던가. 제주 4.3 사건 71주년 추념식 영상들을 유튜브로 보았었다. 이후 알고리즘에 이끌려 제주 4.3 사건 관련 영상들을 보면서 아직 제주 4.3 사건의 이야기들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제주 4.3 사건에 대해 알아가면서 매년 4월 3일이 되면 나만의 방식으로 4.3을 추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는 이 <기억의 목소리>와 <순이삼촌>을 구매해 읽는 것으로 4.3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해보려 한 것이다.

택배로 <기억의 목소리>를 받아 책을 펴보면서, 이 책을 디자인하신 분은 ‘디자인에도 제주를 담았구나’하고 생각했다. 화려해 보이는 표지와 그렇지 않은 순백의 책 겉면. 밖에서 화려해 보이는 제주도 자연의 이면에는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희생자들의 유품 사진, 유가족과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유가족이기도 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허은실 님의 시가 겹겹이 포개어진 이 책에서는 아픔과 분노가 느껴진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찌 몇 자의 글로 책에 다 담을 수 있겠냐마는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의 아픔과 분노, 그리고 희생자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허은실 시인의 시에서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고.

어릴 적 교과서에서 배운 4.3 사건의 이야기는 짧았다. 지면에 실을 수 있는 한계가 있어 최대한 압축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겠지만 약 7년 7개월 가까이 진행된 민간인 학살이 고작 몇 줄의 내용으로 압축되었다는 사실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약 3만 명(추정) 정도의 목숨이 쉽게 사라졌다. 그분들 중에는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살해 후 바다에 던져졌거나, 육지로 끌려가 6.25 전쟁에 동원되기도 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는 시신 없는 헛묘가 많다. 언제쯤 이 헛묘들이 사라질 수 있을는지.

대한민국 현대사는 수많은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제주 4.3 사건만큼 오랜 기간 동안 손가락질당할까 두려워 쉬쉬한 사건이 없다. 1947년에 시작되어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행된 이 학살 사건은 그로부터 약 50년이 흐른 2000년에 들어서야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2021년이 되어서 4.3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었으며 이번 4.3 사건 추념식에서 최초로 국방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동시에 참석했다. 이제 제주는 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정부를 용서하고 화해를 할 수 있을까?

[그가 돌아왔다]라는 넷플릭스 영화가 있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대거 학살한 홀로코스트 범죄의 가해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2014년 독일에서 깨어난다는 설정을 갖고 있는 이 블랙코미디 영화.

치매를 앓고 있던 연세 지긋한 피해자 할머니는 뒤돌아있으면서도 집에 들어온 히틀러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 히틀러를 보면서 “난 당신이 누군지 알아. 하나도 잊지 않았어.”하고는 집에서 쫓아낸다.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도 이야기한다. 그때를 잊지 않았음을. 7년 7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행된 학살의 증인임을, 그리고 아직도 분노하고 먼저 보내야 했던 이들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말이다. 정부의 진심을 담은 사과와 피해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제주도 역시 영화에 나온 할머니처럼 정부를 외면하고 규탄할 것이다. 그분들의 마음에서는 아직도 이 비극적 사건이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이 책에서 아픔과 분노를 꺼내 보여주신 분들은 대부분 1940년대에 태어나신 분들이다. 아픈 과거를 안고 입을 다문 채 살아오길 50년, 이제야 그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로 전하는 4.3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아 슬프다. 하루라도 빠르게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길. 떠나시기 전에.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연로하신 피해자들이 하나둘 스러지신다 하더라도 우리가 대신 이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날까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2021년 4월 3일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4월 3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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