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말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 들렀다. 늘 인터넷 구매만 하다가 지난 번에 우연히 이 서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언젠가 한 번 들어가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곳이었다. 천천히 둘러보다가 온 김에 책도 한 권 사려고 무얼 살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집어들었다. 김영하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작이 실린 작품집. 9년 전에 나온 이 책이 아직도 중고서점도 아닌 일반 서점에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김영하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내가 다녀온 서점은 회원에게 10%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나는 처음 간 곳이라 회원도 아니었고 할인을 해주는 지도 몰랐지만 서점 주인분이 그냥 10% 할인해주셨다! 온 김에 젊은 작가상 수상집 동네책방 에디션이 있나 찾아봤는데 없어서 아쉬웠다. 미리 사두었어야 했는데.

오늘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책을 살 때는 잊고 있었다가 돌아와서 기억이 났고, 책의 날에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매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고 뜻깊었다. 대형 온라인 서점들에 밀려 동네 서점들의 생존이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는 하루이틀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서점에서 행사도 하고 독서모임도 갖고 그랬지만, 요새는 그마저도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다. 오늘 집에 들어가는 길에 동네 서점에 들러 평소 눈여겨보았지만 선뜻 구매하지 못했던 책을 한 권씩 품에 안고 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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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그렇게

마음은 두고
몸들이 없어지나요

-없어지는 사람 中 - P32

사랑이 폭우에 젖어
불어터지게 살아온
네가
나에게 오기까지
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눈물이 가슴보다
먼저 북받친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뭉클 中 - P36

그래도
무거운 등짐을 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뒤로 넘어질 수 있으니

그렇게도
무너질 마음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살아 있으니

잠깐이다
그날까지

잠깐이다 中 - P42

한때의 사랑이 왜 모자랐을까

저렇게 출렁이며 나에게 오는 너를
왜 다 받아줄 수 없었을까

바닷가 모래가 대신 받아주는 그 울음을
왜 새겨두지 못했을까

어떤 위로로도
멈추는 법을 모르는 너는 몰라
이렇게 부서지며 오는 너를
나는 왜 짧은 저항으로 끝내지 못했을까

파도 같은 中 - P48

사람이 산다는 것은 자기가 심어질 마음의 자리를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해설
사랑의 장소
안서현(문학평론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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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부끄럽지만 이 책이 내가 읽는 김영하 작가의 첫 번째 책이다. 유튜브 알쓸신잡과 대화의 희열 클립들을 보면서 김영하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특히 대화의 희열을 보면서 자신의 성공을 통해 얻은 영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최근에 아는 분이 개인 라디오 채널에 게스트로 초대해주었고, 주제가 여행이라서 나의 경험과 함께 곁들일 작가의 언어로 선택한 책.

독서를 마치면 독서노트를 작성하는데, 이 책을 읽을 때는 독서노트에 쓸 말이 없을 것 같아서 걱정했다. 100% 집중해서 읽은 느낌은 아니었기에. 하지만 기우였다. 두세 페이지로 끝날 것 같았던 독서노트가, 쓰다 보니 여덟 페이지를 넘어서 아홉 페이지까지 쓰게 된 것이다. 좋았던 구절과 이유를 세 장도 넘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여행 경험, 그리고 그에 따른 생각, 여행자가 여행지에 가서 가져야 할 태도 등을 다른 작가들의 언어와 함께 곁들여 200페이지 정도로 서술한 얇은(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책이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 옛사람들처럼 이 책의 글에서 쓰인 ‘여행’이라는 단어를 ‘인생’으로 바꾸어 쓴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즉,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인생 경험과 그에 따른 생각,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쓴 책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마무리하며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어차피 지구에 여행 온(태어난) 거 여행자처럼 열심히 즐기자고, 현재를 살면서 어릴 적 누군가로부터 환대를 받아온 만큼 베풀며 살자고. 그리고 홀연히 떠나자고.

(북플에서는 좋았던 구절을 찍어서 올리기만 했는데, 언젠가 독서노트에 쓴 생각들을 소개할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옮겨 적든, 아니면 새로운 글에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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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하늘이 문득 흐려지는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이라서
더 크게 울 수 있는 사람이라서
여기까지 빗방울을 뭉쳐왔을까

사랑하는 사람들 떠난 가슴에
사람은 어떻게
어렵사리 새길을 내나

어떻게

안 오던 비가 오고
또다시
새 꽃이 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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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정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P148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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