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교양 (반양장) -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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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라는 큰 꼭지들을 중심으로 그와 얽혀있는 이해관계들을 소개하고 설명한다. 원론적으로 접근한다는 느낌이었지만 읽다보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빈민을 양산하는 교육제도와 국가 그리고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하는 저임금 등은 악순환하며 반복된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작가가 인용한 ˝가난한 이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지식인의 말을 뒷받침한다.

작가는 세상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는 능력을 ˝교양˝이라고 말하면서 ˝시민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한 세상의 구조화˝가 이 책의 목적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의 이익을 고려할 책임˝을 시민에게 요구한다. 자본가는 언제나 똘똘 뭉쳐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치/사회/경제 활동을 한다. 그러나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비난한다. 자본가와 달리 노동자는 자신이 속한 계급을 모른다. 매 선거 때 투표 결과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모든 사회현상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냥 생겨나는 것은 없다. 양비론적 시각과 이분법적 사고는 오랜 시간 주입된 한국 교육의 병폐일 뿐 세상을 보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 책은 그야말로 ˝시민의 교양˝을 위한 책이다. 이를 통해 삶에 기본이 되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시민이 갖춰 할 최소한의 교양을 겸비하자. 시민이라면, 앞서 언급한 지식인의 말에 갸우뚱하며 ˝그럼 내일을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하고 반문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사회의 내일을 선택하는 것은 시민이니까. 시민이 주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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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속으로 -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원도 지음 / 이후진프레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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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작가의 『아무튼 언니』를 만족스럽게 읽고 난 뒤 구입해 읽었다. 경찰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가진 나였기에 미심쩍은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매일 같이 발생하는 사건 속에서 인격적 모욕과 직업인으로서의 모멸감을 동시에 받는 일화들은 나로 하여금 혀를 차게 만들었다. 경찰로서 경험한 비상식적이고 가슴아팠던 일들을 읽으니, 나도 계속해서 경찰과 관련한 경험들이 떠올랐다.

시설보호요청이 들어오면 병력이 투입된다는 것은 알지만, 마치 자본가의 사설 용역과 같은 모습으로 전면에 나서 노동조합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을 숱하게 봐온 나로서는 경찰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다. 그래도 늘 경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곱씹으며, 문제를 개인화시키지 않아야한다고 스스로 믿어왔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참석했을 때, 사람을 향해 물대포가 무자비하게 난사됐다. 이미 쓰러져 움직임 없는 사람에게 경찰은 계속해서 물대포를 쏴댔고, 그 사람을 병원으로 이송하려하는 앰뷸런스 차량과 의료진에게도 물대포를 쐈다. 그 사람은 故백남기 농민이었다. 나는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았을 때의 그 고통보다 공권력의 남용과 폭력적인 진압으로 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울 수 밖에 없었다.

내 기억 속 경찰은 일관되지만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기억한다.

체불임금을 받기위해 사장 집에 찾아갔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향해 테이저건을 쏜 뒤 뒷수갑까지 채우는 과잉진압을 한 경찰을 기억한다.
사드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소성리 할머니들을 밀치고 표적연행을 한 경찰을 기억한다.
집회 참여와 관련해서 경찰조사를 받았을 때 사건과 관련없는 질문에 항의하는 내게 묻는 말에나 답하라며 윽박을 질러대던 경찰을 기억한다.

순경에게 처한 곤란한 상황에 순식간에 1억이 넘는 돈을 모아 준 일화에서는 약간의 절망과 희망이 교차됐다. 이 사람들 정의가 뭔지 아는구나!

작가가 말한 경찰의 비겁함. 그 비겁함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영화 명량, 이순신 대사 변형- 얼마나 좋을까? 거대한 경찰조직의 한 사람으로 무언가를 바꿔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편하고 쉽기때문에 폭력은 언제나 약자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겁함을 용기로 바꿀 불씨가 되지 않을까. 그래 그들은 경찰이기 전에 사람이니까.

나는 기대한다. 간절히 소망한다. 권력의 허수아비가 되지 않는 경찰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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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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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성폭력 생존자 이브 엔슬러가 가해자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쓴 편지 형식의 글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죽기 전 까지 사과는 고사하고 성폭력조차 인정하지 않은 아버지를 고발하고 있다.

성폭력과 학대를 가할 때 마다 아버지는 ‘그림자 인간’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불러내어 범죄와 자신을 분리시키며 자신을 변호한다. 이 얼토당토않은 변명은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이 자행하는 자기 합리화와 모순에 맞닿아있다. 수 많은 범죄행위를 열거한 뒤 끝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아버지의 말은 ˝여전히 사과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여성들˝을 위한 징검다리이자 그들을 향한 응원이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김영서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아버지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의 책을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출간했다. 수 년 후 본명으로 개정판을 낸 그에게 왜 이제야 본명으로 책을 출간했느냐고 비난하거나 저의가 무엇이냐고 의심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자의 용기와 선택이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피해자를 2차 가해한다. 미투운동이 사회를 휩쓸었을 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성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를 둘러싸고, 누군가는 정치공작이라 선동했고 대중들은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며 피해자를 의심했다. ‘왜 이제 와서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는가.’가 그들이 가진 의심의 핵심근거였다.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에게 왜 소매치기를 당했느냐 힐난하지 않듯이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재단 당할 이유가 없다. 가해자의 권력으로 만들어진 서사는 오랜 기간 강요당한 침묵을 이제야 깨고 나온 피해자들을 공론의 장에서 퇴출시킨다.

죽고 나서야 받을 수 있었던, 그것마저도 성폭력 생존자인 자신의 말로 풀어낸 아버지의 사과. 아버지로부터의 지속적인 학대로 오랜 기간 자신을 버릴 만큼 고통스러운 날을 보냈지만, 저자는 그 시간들을 복기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거쳐 상처를 극복한다. 결코 쉽지 않은 그의 용기와 의기에 찬사를 보낸다. 이렇게 “지금, 여기 존재를 걸고 말하는 진실의 목소리”가 있는 한 피해자는 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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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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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워낙 흥미로운 내용인데다 강한 흡인력까지 갖춘 소설이라 금세 읽었다. 유색인과 여성이란 교차점에 위치한 흑인/황인 여성에게 차별과 억압은 더욱 가중된다. 작가는 흑인 여성(다나)이 타임슬립하며 19세기와 20세기를 오가는 과정 속에서 교차적 억압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우연히 19세기로 가게 된 다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흑인들을 목격한다. 그 후 남편 케빈과 함께 19세기로 가게 되는데 인종과 젠더를 아우르는 ‘최고 계급‘에 위치한 백인 남성 케빈의 눈에는 흑인 노예의 삶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뭐, 이를테면 최저임금으로 살 생각 없는 자본가들이 ˝최저임금 충분히 높다! 더 올리지마라!˝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랄까.. 흑인 여성을 배우자로 두고 있으면서도 흑인이 당하는 수모에 눈 감는 케빈의 졸렬함과 아둔함이 유독 돋보였다.

지금 우리 사정은 어떨까. 자율적 계약이라곤 하나 결국 자본가 소유의 부품으로 소비되고, 허울뿐인 여성상위시대를 진짜인 양 믿는다. 차별은 안된다고 믿으면서도(혹은 자신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정작 젠더나 인종문제에 있어서 차별하거나 방관하는 경우가 많다. 아, 그건 ‘인지 부조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불과 몇 세기 전 존재했던 노예제가 지금은 말도 안되는 혐오스러운 제도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당연한 인식과 제도들이 미래에는 갖다버려야 할 유물이자 편협한 생각이 되지 말란 법 없다. 새로운 건 엄청나게 좋아하는 자본주의의 키즈들이 왜 후진적 마인드는 버리지 못하는지 참 아이러니하다.

p.189 ˝제대로 된 숙소도 없고, 흙바닥에서 자야하고, 음식은 부족해서 쉴 시간에 텃밭을 가꾸고 세라가 눈감아줄 때 부엌채에서 뭐라도 훔치지 않으면 모조리 몸져누울 지경이지. 권리는 하나도 없고 언제든, 아무 이유도 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가족에게서 떨어져 팔려나갈 수 있어. 케빈, 사람들을 때려야만 잔인한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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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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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은 시의성이 담긴 글로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곤 한다. 때론 읽기에 불편하고 힘들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나 신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지 않을 수 없다.

황정은은 이 소설을 통해 존재하지만 ‘존재해서는 안되는‘ 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그 참담한 실태를 폭로하고 있다. 그 중에는 내가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했던 내용들도 있었다. 특정한 시공간이 아닌 어디서나 범람하고 있는 폭력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목표로 함께 나아가던 사람들 속에서도 거대하게 자리한 차별과 편견으로 누군가를 배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의 갈급함으로 주위를 둘러 볼 겨를이 없이 살아간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도록 살아왔으니, 그렇게 길러졌으니 마음에 빗장을 치고 ‘아이히만 식의 상투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집회현장 내 성차별, 젠더와 장애인 혐오에 대한 둔감성, 용산참사에서 세월호참사에 이르는 정치적 무관심 등 현대사의 크고 작은 소용돌이 속에 지워진 존재들과 사유의 무능에 갇힌 묵자의 세계인들이 차례로 조명된다. 대부분 자조적이면서도 곳곳에 조소가 묻어나 있지만 말미에는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으로 황정은은 이 세상 모든 존재에 위로와 안부를 건넨다.

필요한 이들에게 우산을 줄 수 있는, 우산이 없을 땐 함께 비를 맞을 수 있는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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