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폭력 -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유서연 지음 / 동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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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대부터 이어져온 여성 착취를 설명하면서 보는 순간, 그러니까 당장 눈앞의 대상으로 그 외의 시간과 맥락이 생략된 ‘지금 여기에 있는‘ 현전성에 집중한다. 현전성은 사진이나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을 타자화시키는 가장 주요한 개념으로, 주체인 ‘나‘와 객체인 ‘너‘를 구분 짓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곧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 타인을 객체화 시키는 무기가 되는데(152쪽) 이로 인해 남성들은 소라넷, 불법 촬영물, N번방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성 착취물을 공유하며 서로의 유대를 확인하고, 여성혐오를 둘러싼 광기와 폭력의 주체가 된다.

책에 따르면 관객들은 신이 되어 스크린에 보이는 세계를 자신이 지배하고 있으며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어, 영화는 기계장치가 만든 허위적인 환각일 뿐이지만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 장치가 내포한 이데올로기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134쪽) 결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살인당하거나 성착취를 당하는 것을 보는 관객의 시각은 ˝객체화된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스크린을 통해 보는 쾌락과 즐거움이 관음증으로 전환˝(138쪽) 되고, 이는 여성 배우의 극중 노출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액기스 영상‘의 이름으로 퍼져나가거나 여성 살해를 연상케하는 사진이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화면에 현전하는 여성의 신체는 이미 사람이 아닌 사물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매 장을 넘길 때마다˝몇 년 전 한 줌의 재가 된 내 친구는 어째서 한국 남자들의 모니터 속에 XX대 XX녀 라며 아직 살아있는가.˝라고 쓴 피켓이 떠올랐다. 여성은 사망했더라도 화면 속에 현전하기에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남성들에 의해 새로운 이름으로 계속해서 공유된다.

또한 남성은 공고한 남성 카르텔 덕분에 이러한 행위들에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안전하게 불법 영상물을 소비한다. 불법 영상물 카르텔의 중심 손정우와 갓갓, 박사, 양진호 등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고 성착취물을 공유하며 소비했던 공범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겠지. 여성은 화장실도, 버스나 지하철도 하물며 자신의 집도 안심할 수 없는 불법 촬영이 만연한 세상이다. ‘일상적 공포‘라는 말은 이제 구태의연한 표현이 되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일상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남성들의 시각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여성들은 시선강간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해왔다. 이것이 과하다거나 불편하게 느껴지는 남성들이 있다면, 모든 남자를 똑같이 보지 말라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불법을 일삼는 남성 카르텔을 향해 말하라. 멈추라고. 공분해야 할 대상은 여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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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여자는 없다 - 국민여동생에서 페미나치까지
게릴라걸스 지음, 우효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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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남성의 추접한 성적 욕망을 투영해 만든 ‘롤리타‘, 식료품과 요리책 마케팅에 사용한 ‘제마이마‘ 등은 남성 중심의 사회가 세상에 없는 여성은 만들어서라도 기존 여성에게 혐오와 숭배 이미지를 주입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여자는 결국 남성들이 만들어놓고 욕하는 가상세계의 누군가였다. 시대와 세계를 막론하고 남성들의 주특기는 내뇌망상인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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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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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공장식 축산의 잔혹함을 알게 된 후 비거니즘을 실천한 저자 전범선은 페미니스트 애인을 만나며 자신이 비장애인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으로 태어난 사실 자체가 엄청난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그리고 여성주의-채식주의-생태주의-평화주의는 모두 연결되어있고, 연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이라고 말하는데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저자는 비인간 동물 각각의 이름이 있는데도 이름 명을 사람 셀 때만 사용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이 엄연한 종차별임을 꼬집으며(165쪽) 비인간 동물을 언급할 때 마다 ‘마리‘가 아닌 ‘명‘으로 수식합니다. 그러면서 채식주의를 단계별로 분류하고 위계질서를 부여해(145쪽) 채식주의자로 하여금 자기검열과 죄책감을 심어주는 사회적 시선에 우려를 표하는데요.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비건이기에 완벽한 비건은 없으며, 누가 더 윤리적으로 순결한가를 겨루는 것조차 인간중심적인 허세(148쪽)라고 일침합니다. 1월부터 육식을 하지 않고 있는 저 역시도 완전한 비건이 아닌 페스코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로 죄의식에 괴로웠는데, 그의 말에 위안을 받으며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저자는 책에서 비거니즘을 중심으로 문제시되는 여러 담론들을 꺼내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거대 담론일 수도 있을 내용들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지금도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고통이 돈으로 환산되는 과정에서 악의 근원에 대한 사유는 실종된다˝(169쪽)는 그의 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생활의 편의 속에서 누군가의 고통을 자연스레 망각하며 지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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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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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192쪽)

˝그 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311쪽)

느릿느릿 전개되는 이야기는 중후반부터 거센 눈보라처럼 몰아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아픔을 갖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손가락을 절단 당한 사고를 당했음에도 자신의 새 아마의 생명을 생각하는 인선과 생을 끝내고 싶을 만큼의 우울감에도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까지 가게 되는 경하. 죽음의 세월을 지나 온 인선의 어머니 이야기는 그렇게 독자에게 가닿게 됩니다.

그 날의 증언은 제주 방언으로 기록되었기에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비통함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소중한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사람은 황망한 마음을 뒤로 한 채, 계속 살아내야 하는 고통과 마주합니다. 그이들을 기억하는 것, 그건 남은 이들의 숙명이겠지요.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간 무수한 사람들. 기억해야 할 아픔의 역사들은 우리와 작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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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 라이더가 말하는 한국형 플랫폼 노동
박정훈 지음 / 빨간소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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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노동자와 근로자를 혼용해서 사용한 것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배달업에 종사하는 라이더를 향해 ˝월 300은 족히 넘게 벌면서 세금 안 낸다˝, ˝신호 위반을 너무 많이 한다˝라는 식의 비난을 합니다. 게다가 배달노동을 단순 아르바이트로 치부하거나 못 배운 사람들이라는 원색적이고 천박한 소리까지도 합니다. 당장 유튜브나 라이더 관련 인터넷 뉴스 댓글창만 보더라도 그렇지요. 라이더들이 배달 중 사고가 나서 손가락 인대가 찢어지더라도 탈탈 털고 일어나 다시 배달을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길 바랄 뿐입니다.

거대한 배달 플랫폼 업체는 배달하는 사람을 ‘파트너‘로 부르면서(97쪽) 정작 계약서에는 고용 또는 대리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명시(101쪽)합니다. 또 라이더들의 출퇴근 시간과 휴무를 확인하고, 강제로 배차하는 등 지휘 감독하지만(179쪽) 정작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라 말하며 산재보험도 가입을 막습니다.(182쪽)

배달업은 연간 20조에 육박하는 거대한 산업이 성장했지만 라이더들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갇혀 있습니다. 음식점은 매월 사용료와 배달 건당 수수료를 플랫폼 업체와 배달대행업체에 지불하고, 라이더들은 건당 수수료와 관리비를 제한 금액을 가져갑니다. 이전에 소개해 드렸던 『중간착취의 지옥도』에서 말한 이중 착취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 본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바로고‘ ‘부릉‘ ‘생각대로‘ 등이 이중 착취의 근원지이자 이른바 사람 장사를 하는 곳이지요. 이를 개선하고 바로잡기 위해서는 라이더 당사자들의 노동조합 가입과 의식적 행동이 선행되어야 할 테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마련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의지가 아닐까요.

CJ 대한통운 노동조합의 파업이 한 달을 넘겼습니다. 책을 읽으며 파업 노동자들이 제 머릿속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게도 한참 전에 주문했지만 도착하지 않은 책과 물품이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들의 파업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시민과 소상공인을 볼모로 삼고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며 악선동하는 찌라시 수준의 언론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 우리가 진짜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연쇄작용으로 일어납니다. 택배 기사님들의 파업이 승리로 끝나야, 배달업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될 것이고, 다른 업종과 직종의 노동자들의 삶도 더 나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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