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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월
평점 :
철학책추천 철학자와 늑대 야생동물에게 배운 인생수업 추천도서
내가 살면서 키워본 동물이라곤 금붕어와 거북이뿐이다. 두 개의 어항 속에 나뉘어 있던 금붕어와 거북이는 그저 관상용이었다. 그 친구들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는 2~3달에 한 번씩 어항을 청소할 때였다. 그러니 금붕어와 거북이의 움직임을 내 손으로 느껴본다거나 그들과 교감하고 소통했던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최근에 강아지 목줄을 잡아볼 일이 있었다. 강아지 친구가 앞으로 막 걸어가려고 하는데, 내가 목줄을 강하게 당겨 행동을 제어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강아지가 가는 대로 내가 끌려가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 입에서는 "가자. 가자." 아니면 "천천히 가자. 천천히 가자."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내 옆에 있던 실제 강아지 주인의 말은 듣는 것 같다. 더 놀라운 것은 강아지는 단 한 번도 짖지 않았는데, 강아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강아지 주인은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내가 듣지 못하는 걸 들으며, 내가 느끼지 못하는 걸 느낀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강아지의 주인이 너무 멋지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여기 더 대단한 사람이 있다. 키우는 동물이 강아지가 아니라 늑대다. 넓고 깊은 산속 어딘가에 있는 늑대를 키운다는 말이 아니다. 야생 늑대를 집안에서 키우고, 늑대를 데리고 강의실에 들어가 철학 강의를 하는 괴짜 교수님이 계신다. 『철학자와 늑대』는 괴짜 철학자 마크 롤랜즈(Mark Rowlands)이 늑대 '브레닌'과 11년간 동고동락하면 겪고 느꼈던 이야기를 담은 철학책이자 에세이다.
『철학자와 늑대』 저자와 늑대 브레닌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저 큰 늑대를 집에서 키운다고?' 엄연히 개와는 달라 애교도 없고, 사람을 잘 따르는 편도 아니고, 혼자 두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물어뜯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친구다. 하지만 저자는 본인이 늑대의 소유자도 아니고 보호자도 아니며, 어떨 때는 동생 같고 어떨 때는 형 같은 형제라고 말한다.
『철학자와 늑대』 저자는 늑대 브레닌과 아주 가까이 소통해가며 깨달은 인문학적 통찰을 이야기한다. 인간과 동물 간의 고생 관계, 동물과 인간이 유대가 형성되는 과정, 동물이 가진 지능과 감정, 사고하는 존재, 문명사회의 의미, 그리고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거나 우리보다 더 깊고 뛰어난 늑대의 모습을 보며 철학자의 심리적 고뇌와 철학적 고찰을 담았다.
저자와 늑대는 언어적 소통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소통을 이어간다. 늑대의 행동, 몸짓, 울음소리를 통해 늑대의 감정과 의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언어의 제약을 뛰어넘어 늑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저자 덕분에 우리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본 늑대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야생 늑대를 집에서 키우는 저자를 보며, 누군가는 브레닌을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동물이 야생에 있을 때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인간이 가진 오만함이라고 말한다. 이때 저자는 종 폴 사르트르의 '존재'에 관해 이야기하며, 왜 인간만이 수천 가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정작 다른 생명은 오직 자연에만 종속되어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되묻는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 변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자신에게 주워진 운명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늑대 브레닌과 지내며 얻은 깨달음이다. 집안에서 키우는 늑대라고 하여 인간으로부터 그저 보호받는 동물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자아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인정해 주는 셈이다. 늑대 브레닌을 향한 존엄성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브레닌은 항문샘 감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저자가 브레닌의 항문을 소독해 줄 때마다 브레닌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주인이 자신을 고문하고 학대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때마다 저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브레닌이 내가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결국, 브레닌은 안락사를 당한다. 브레닌 앞다리 혈관에 치사량의 마취제를 투여한다. 이때 저자는 브레닌에게 "우리 꿈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마지막 말을 건넨다. 꿈속 하늘나라에서 온 동네방네를 뛰어다니며 온갖 잡동사니를 물어뜯고 있을 건강한 브레닌을 상상해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