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내 힘으로는 동생의 목숨을 구할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뭐라도 조금이나마 알아줄 수는 있었을 텐데, 그애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무언가를 말이야.
여자친구의 오빠가 말했다. "자네가 그때 읽어준 아쿠타가와의 톱니바퀴에, 비행사는 고공의 공기만 마시기에 갈수록 지상의 공기를 견딜 수 없어진다.… 뭐 그런 말이 나왔었잖아. 비행기병이라던가. 그런 병이 정말로 있는지는 몰라도, 그 문장이지금도 기억나."
그것은 무언가를 우리가 살아간다는행위에 포함된 의미 비슷한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우연에 의해 어쩌다 실현된 단순한 시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 두 사람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요소는 없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우주를 가로지른 끝에 이리도 덧없고 침침한 별밤하늘에서 위치를 찾아내는 데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별을 나 자신의 수호성으로 삼게 되었을까? 이야기를 시작하면 은근히 길어진다. 하지만 기회가 생긴 김에 잠깐 이야기해보자. 어쩌면 나라는 인간의간결한 전기 비슷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것만으로 그럭저럭 행복했다. 어쩌다 팀이 이기고 있을 때는 게임을 즐기고, 지고 있을 때는 ‘뭐, 인생에는 지는 훈련도 중요하니까‘라고 생각하려 했다.
잠수부가 오랫동안 주의깊게, 수압에몸을 길들이듯이,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 가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간소한 제본, 일련번호를 기입한 오백 부에 일일이 사인펜으로 또박또박 서명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하지만 예상대로 거의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런 것을 돈 내고 산다면 어지간히 별난 인간이다. 실제로 팔린 것은 삼백 부쯤 될까. 나머지는
그것은 나의 소년 시절 일어났던, 어쩌면 가장 눈부신 사건 중하나였을 것이다. 가장 축복받은 사건이라 해도 좋을지 모른다. 내가 야구장이라는 장소를 사랑하게 된 데는 그 이유도 있을까?
망원경을 반대쪽에서 들여다보는 것처럼신기할 만큼 투명한 기억. 몹시 멀고, 몹시 가깝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나는힘이 남아도는, 흉악한줄무늬 인디언들에게 둘러싸여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깃발 아래비통한 성원을 보내고 있다. 고향에서 심히 멀리 와버리고 말았다. 고해류 속의 작고 고독한 섬에서내 가슴은 조용히 욱신거린다.
물론 지는 것보다야 이기는 쪽이 훨씬 좋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에 따라 시간의 가치나 무게가 달라지지는않는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시간이다. 일 분은 일 분이고, 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시간과 잘 타협해서, 최대한 멋진 기억을 뒤에 남기는 것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도 소설을 쓰면서 그 소년과 똑같은 기분을 맛볼 때가 종종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사과하고 싶어진다. 죄송합니다. 저기, 이거 흑맥주인데요." 라고,
그녀는 실로 범상치 않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범상치 않음은 결과적으로나뿐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을 그녀 주위로 모이게 했다. 자석이 오만 가지 형태의 유용무용한 쇠 부스러기를 끌어당기듯이.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얄팍하고 피상적이었는지, 나중에 가서 통절히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강한 개성 -혹은 흡인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평범하지 않은 외모가 있기에 비로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F*가 풍기는 세련미와 추한 외모의 크나큰 격차가 독자적인 다이너미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힘을 의식하고 조정하고 행사할 줄 알았다.
우리가 이의를 제기할 바 없이 훌륭한, 이른바 궁극의 피아노곡으로 선택한 것은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 몇 곡과 슈만의피아노 작품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곡만 남긴다면 뭐가 좋을까? 딱 한 곡만? 그래요, 딱 한 곡만, 하고 F*는 말했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가져갈 피아노곡. 어려운 질문이다. 집중해서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슈만의 사육제)"라고 나는 끝내 마음먹고 말했다.
연주가 아무리 기교적으로 완벽하다 해도, 그것을 구사하는방법이 음악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육제>라는 곡은 그저 무기질적인 손가락 운동으로 전락해버린다. 매력의 태반이 사라져버린다. 사실 대단히 표현하기 어려운 난곡이다. 어지간한 피아니스트는 감당하지 못한다.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볼 줄 알았어 - 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살던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 ‘슈만은 미치기까지 했는데, 내가 다소용없게 만들어버렸다‘고, 이거,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의견 같지 않아?" "근사해." 내가 동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