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신보가 나왔지만 나의 베스트는 지금도 변함없이 루빈스타인이다. 루빈스타인의 피아노는 사람들의 가면을 억지로 벗기려 하지 않는다. 그의 피아노는 가면과 민낯 사이를 바람처럼 부드럽고 경쾌하게 빠져나간다.

☆행복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야. 그렇지 않아?

어쩌다 음이 흐트러져서나는 소리가 아니라, 그에게는 하나의 중요한 심적 상황의 표현이라고(그렇다, 심적 상황의 표현‘이라고 나는 그때 실제로 말했다). 그리고 그뒤에 헤어지면서 받은 그녀의 전화번호 쪽지를,
나는 어딘가에서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영원이란 매우 긴 시간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하지만 그날, 거울 앞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이상하게도 일말의 께름칙함을 머금은 위화감 같은 것이었다. 께름칙함? 뭐라고표현하면 좋을까…… 그것은 자기 경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살아가는 사람이 느낄 법한 죄책감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법에저촉되지는 않을지언정 윤리적 과제를 안고 있는 사칭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어차피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그런 유의 행위가 가져오는 불편함이다. 

그래도 반은 의무적으로, 반은 습관적으로 그 소설을 계속읽어나갔다.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을 도중에 내던지는 건 옛날부터 좋아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가서 갑자기 재미있는 전개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ㅡ 실제로 그럴 확률은 매우 낮지만,

아마도 내가 아까부터 느껴온 막연한 위화감 탓인 것 같았다. 뭔가 미묘하게 어긋난 느낌이었다. 나라는 내용물이 지금의 그릇에 잘 맞지 않는다, 혹은 마땅히 존재해야 할정합성이 어디서부턴가 손상돼버렸다는 감각이다. 가끔 그럴때가 있다.

가만히 바라보자니 당연히 거울 속의 나도 이쪽의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문득 이런 감각에 휩싸였다ㅡ 나는 인생의 회로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슈트를 입고 넥타이를 맨 내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그 감각은 점점 강렬해졌다. 보면 볼수록 그것이 나 자신이 아니라, 처음 보는 다른 누군가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곳에 비친 이가 만약 나 자신이아니라면 -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