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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창 내고저 창을 내고저 이내 가슴에 창 내고저
고모장지 세살장지 가로닫이 여닫이에 암돌쩌귀 수돌쩌귀 코나
큰 장도리로 뚝딱 박아 이내 가슴에 창 내고저
이따금 하 답답할 제 여닫어나 볼까 하노라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때 지루할 것 같아!란 생각에 한 쪽 구석으로 밀어뒀다.
그러다 며칠뒤 새벽녘 잠결에 화장실로 들고 간 책이 바로 지루할 것 같았던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이었다.
이 책은 20가지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몇 수의 시조를 소개하고 있다. 처음 생각과 달리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책 속에 푹 빠지게 되었다.
특히 늦은 밤 또는 새벽녘에 달을 본 후에 읽으면 그 재미가 더욱 좋다.
특별한 매체가 없던 시절이라 우린 시조 한 편으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가 만나고 또 우리 가슴을 울리게 하는건 바로 사람이다. 한 수 한 수 읽어갈때마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나에게 웃음을 주고 때론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사람들을 만나는게 난 참 좋았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전혀 다른 문화를 접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그 옛날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감동받고, 미소 짓는다는게 신기했다.
시조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꼭 상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의 표현력은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다.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글 속에 담긴 내용이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면서 사는 이야기라 할찌라도 정적이지 않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시조 내용의 전 후의 이야기를 만들어 살을 붙여보는 것이다. 그 다음은 말이야.. 이렇게 전개되는게 맞아.. 아니.. 요 부분은 요렇게 살짝 바꿔야겠다. 하고 말이다.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가는데 다 닳아버렸고
두만강의 물은 말이 마셔 말라버렸구나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어느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리.
이 책을 읽으면 시조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사라지게 된다. 시조는 멋있는 글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글이며,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글이다. 처음엔 단어들이 어려웠다. 무슨 뜻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한 시조 해설을 통해 이런 어려움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쓴 작가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설명되어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뭐든 겉만 보곤 모른다. 툭 찔러보고 반응이 없다고 돌아섰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종종 있다. 처음 이 책을 받고 던져둔 채 그냥 그렇게 지났다면 너무 후회할 뻔 했다. 시조 그 매력에 앞으로 종종 빠져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