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독서클럽의 첫 번째 도서로 권비영씨의 "덕혜옹주"가 선정되었다. 얼마전에 읽은 책이긴 한데, 주제발표자로 정해지고 나니, 덕혜옹주에 대해 모르는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덕혜옹주에 관한 다른 책들을 검색하다 작가가 덕혜옹주를 쓰면서 많이 참고했다는 혼마 야스코가 쓴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 덕혜옹주"를 읽게 되었다. 소설 "덕혜옹주"를 읽었다면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룬 혼마 야스코의 "덕혜옹주"도 읽어보길 권한다.
소설 덕혜옹주를 읽을때만 해도 왜 이 책이 인기가 있는 걸까?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혼마 야스코의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동안 잊혀졌던 덕혜옹주가 왜 지금 이 시점에 와서 우리에게 큰 이슈가 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다. 전문가적인 답을 얻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속시원한 답은 얻지 못했다. 다만 최근에 사극을 보면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선덕여왕, 미실, 김만덕, 정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등이 그 주인공이다. 덕혜옹주도 그런 맥락으로 보는 견해가 있을 뿐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잘 맞아 떨어졌고, 덕혜옹주의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하고 불행했던 우리 민족의 삶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녀에 대한 동정여론도 함께 작용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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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소설 덕혜옹주는 그동안 우리가 관심 갖지 않았던 구한말 조선왕실의 삶을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동시에 덕혜옹주란 인물을 모르고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덕혜옹주의 존재를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렇다면 혼마 야스코의 덕혜옹주는 어떨까?
우선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에 관한 기록이다. 다케유키에 대한 왕실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는 죽기 몇 년 전 낙선재로 옹주를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옹주와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 책에는 다케유키가 옹주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그 이유로 그가 남긴 시를 예로 들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혼마 야스코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다케유키는 단 한번도 아내와 딸 마사코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들에 대한 다케유키의 생각을 엿볼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가 남긴 시와 그림이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다케유키가 옹주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왜 그녀는 남편과의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불행한 결말을 맞았을까? 비록 일본에 대한 저주와 원망이 가득했다고 하지만, 그 부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남편이었다면 시간이 좀 걸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비참한 결말은 오지 않았어야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다케유키는 굉장한 미남자에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두 권의 덕혜옹주를 읽어보면 그는 성품과 인격적인 면에서도 훌륭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부인과 이혼후 바로 그 해에 재혼을 한 다케유키를 보면서 정말 사랑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덕혜에 대한 다케유키의 마음은 사랑보다는 연민의 정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익을 위해서 하게 된 결혼생활, 갈수록 심해져가는 정신분열증 때문에 제대로 된 가정생활을 할 수 없었던 덕혜와의 결혼생활이 다케유키에게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케유키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달리 생각해보면 그 역시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점점 심해가는 정신분열증을 단 한번도 치료하지 않았고 의사에게 보인적이 없다는 다케유키.. 자신의 치부가 될 수 있고,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좋았던 시절에 그는 어찌보면 부인의 병을 방치한거라고 볼 수 있다. 후에 그가 남긴 시들.. 아내를 사랑한다는 구절, 버림받은 남편을 언급한 구절등은 지난 세월을 돌이켜볼 때 회한으로 남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던 만큼 감상에 젖여 적었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 구절등으로 덕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두 사람이 사랑했지만 결혼생활은 불행했다고 결론짓는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또 하나 왜 다른 왕족들에 비해 덕혜옹주에게 더 가혹한 일들이 많았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을 통해서 다소나마 얻을 수 있다. 덕혜옹주는 왕실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존재감이 사라진 왕실이었지만, 덕혜옹주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은 대단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아버지 고종까지 잃고 난 그녀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은 남달랐다. 일본은 이 점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녀에 대한 동정여론이 반일운동으로 나타나는게 아닐까란 점이 일본이 그녀에게 가혹했던 이유였다. 또한 그녀가 여자란 이유도 한 몫했을거란 개인적인 생각도 든다.
내성적인 성격에 온실속에 화초처럼 귀하게만 자라온 옹주에게 고종과 순종, 그리고 어머니 양귀인의 연이은 죽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특히 어머니 양귀인의 장례에 행해졌던 일본인의 행동은 만행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그녀의 정신병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개인적인 절망감과 정치적 희생양으로 전략한 고뇌가 합쳐져 생긴 병이라고 생각된다. 또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침묵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던 옹주의 소극적인 방식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본에 함께 있었던 이은과 이방자 여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 두사람이 옹주에게 큰 힘이 되지 못했다고 혼마야스코는 적고 있다. 10살 나이에 일본으로 간 이은은 이방자 여사와의 결혼생활과 일본 생활에 잘 적응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많이 의지하기까지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피를 나눈 형제지만, 오랜세월 다른 환경에서 생활한 남매 사이에 특별한 정은 없었던듯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덕혜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면 그와같이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일본인이 쓴 책이라 어떤 식으로 썼을까? 궁금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데,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던것도 사실이다. 그런면에 있어서 혼마야스코는 상당히 객관적으로 잘 서술했다. 물론 남편 소다케유키에 관한 부분에 의문점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그녀가 덕혜옹주의 삶을 알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잊혀졌던 황녀.. 덕혜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린 일본인.. 그녀의 책을 통해서 우린 황녀 덕혜이기전에 한 여자로서,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서 덕혜의 고뇌와 아픔을 알 수 있었다.
소설"덕혜옹주"가 문제집이라면 혼마야스코의 "덕혜옹주"는 해답집 같은 느낌이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덕혜옹주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참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