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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박서양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1월
평점 :
1권으로 끝내기 참 아쉬운 책이다. 2, 3권까지 나왔다면 좋지않았을까? 궁금한 이야기도 많고 풀어낼 이야기도 더 있는듯 한데, 서둘러 결말을 지은듯해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백정은 사람과 똑같은 외모를 지닌 의사소통이 통하는 짐승에 불과했다. 백정은 똑같은 천민계급사회에서도 가장 최하층에 속했으며 아무리 어린 꼬마에게도 고개를 바로 들고 쳐다볼 수 없었고, 일반사람들과 섞여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백정이 아무리 뛰어난 머리와 재능을 타고 났다고해도 그는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짐승을 잡는 일을 할 뿐 관직을 꿈꾸거나 학문에 대한 욕심을 낼 수 없었다. 자신의 신분을 뼈져리게 느끼며, 절망가운데 망가지기 딱좋은 것이 바로 이런 백정이다. 넘어설 수 없는 신분의 한계과 현실의 벽을 넘어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가 된 백정의 아들 박서양이란 사람이 있다.
100여년전 백정이라 손가락질받던 박서양은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기까지 10여년 세월동안 백정으로 살다가 신분제 폐지 후 제중원의학교에 입학하여 8년여의 공부를 마치고 조선에서 의사생활을 하며 교편을 잡고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안락한 삶을 뒤로 한채 36살이란 나이에 만주에 가서 병원을 열고 환자치료를 하면서 조국독립을 위해 살다 1936년 귀국 4년 후 56세의 나이라로 사망한다. <제중원 박서양>은 바로 이 사람 박서양을 모델로 쓴 소설이다.
외할버지는 이름없는 의원이었다. 자식들에게 가난만 물려주고 가버린 외할아버지.. 동생들과 먹고 살기 힘들었던 어머니는 백정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박서양은 그들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박씨 성은 외할버지의 성을 물려받은것이다. 어머니는 백정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역시 백정으로 살게하지 않기 위해 한문으로 백정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지어줬다. 박서양 역시 다른 백정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맞서다 심한 구타를 당하곤했다. 그러던 어느날 심한 구타로 인해 사경을 헤메던 그를 아버지는 들쳐없고 제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이를 그 곳에 버리다시피하고 돌아선다. 세월이 흘러도 백정과 섞여살 수 없을 것 같은 아들.. 백정이란 직업때문에 아내도 잃고, 작은아들까지 잃은 그는 큰아들만큼은 살리고 싶어서 제중원에 맡긴것이다. 그 곳에서 외국인 의사 알렌과 조선의 역관출신 범석을 만난 박서양은 서양의술을 배우게 된다. 어깨넘어로 배우는 영어실력까지 탁월해서 그는 알렌에게 대단한 신임을 얻게된다.
하지만, 그는 백정일뿐이었다. 아무도 그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고, 백정이 글을 읽고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사실자체에 분노하는 사람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부족한 서양의을 더 많이배출하기 위해 알렌은 고종의 허락을 맡아 제중원 의학당를 설립한다. 풍양조씨 가문의 조연학과 몰락한 양반가문의 이강헌, 출세욕과 범석에 대한 열등감만 가득한 조준구.. 평생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들을 바로 이 곳에서 만나게 된다.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던 조연학.. 그는 평양조씨 가문의 자손이 맞으면서도 아니다. 그는 풍양조씨 가문의 조유가 유배지에서 만나 잠깐동안 정을 통한 여자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둘 다 가정이 있던 두사람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었다. 유배가 끝나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때 자신을 데려가달라던 여인의 청을 거절한 조유는 다음날 그녀의 자살을 목격하게 된다. 어미의 죽음도 모르고 울어대던 아이가 바로 조연학이다. 봇짐장수 남편은 조연학이 자신의 아인줄 알았다. 오랫동안 얻지못한 자식이라 끔찍했던 그에게 조유는 모든 사실을 얘기한다. 알면서도 자신의 아이처럼 잘키웠던 그는 연학이 10살정도 된 시점에 조유에게 연학을 맡기고 사라진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몰라도 봇짐장수 아비를 기억하는 박서양을 연학은 엄청난 구타를 동원해서 괴롭힌다. 하지만, 똑같이 아비에게 버려졌다는 이유만으로 공감대가 이뤄졌던 그들은 이후 둘도없는 친한 친구가된다. 입학생 총 16명 중 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박서양뿐이다. 학교 졸업 후 에도 그의 대접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출신을 아는 환자들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백정에게 진료를 받을 수 없다 거부했고, 그는 신분적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 많을때마다 좌절하게 되고, 오기로 똘똘뭉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알렌이 고종의 명을 받고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알렌이 사라지면 다시는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되는 박서양은 알렌에게 사정하여 미국으로 함께 떠날 수 있게 된다. 미국으로 가기전 들른 홍콩등 타국에서 그는 신분적 차별이 없는 꿈같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과 환희로 다가왔다.
모든 일이 불안할 정도로 잘 풀렸다. 그리고 결국탈이 났다. 미국과 조선이 가까워지길 싫어했던 청국은 알렌일행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 일행은 용케도 알렌일행을 발견했고, 붙잡고자했던 박정양이 없자 조선인을 함부로 외국에 데려가는것을 고종이 허락했느냐고 협박하며 박서양을 붙잡아갔다. 초죽음이 되어 돌아온 조선.. 박서양은 일본인 아베세이지 의사와 혜민서에서 의사습독관으로 있었다는 강의원에 의해서 살아난다. 강의원에게 참 의원의 길을 배우고 진정한 의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등을 배운 박서양은 자존감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라는 강의원에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하게 된다. 그리고 뛰어난 실력으로 돌아온 그에게 세상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전 제중원에서 심부름을 하며 짝사랑했던 태린 아씨와 만나 그녀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결혼을 해서 한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의원생활을 하면서 풍족하지 않지만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던 그에게 학생들을 가르쳐달라는 제의가 들어온다. 큰 꿈을 품고 들어선 학교.. 그의 과거를 알게 된 학생들은 백정에게 수업을 들을 수 없다며 수업시간에 들어오지 않았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일..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현실에 당당히 맞셨고, 그의 뛰어난 실력과 인품은 등돌렸던 학생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고, 그를 존경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의 성화를 뿌리치고 학교를 나온 그는 만주로 향한다.
아무도 몰랐을것이다. 일본인의 도움으로 일본최고의 의학교 들어가 최고 실력으로 돌아온 그를 사람들은 친일파로 생각했다. 평생 그의 뒤를 쫓으며 그를 감시했던 준구역시 그랬고, 그의 절친한 친구 조연학 역시 그를 친일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고종의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의술을 통해서 일본의 정보를 빼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용했었다. 이완용이 그리고 준구가 그걸 눈치챘을때 그는 이미 만주로 떠난 상태였다. 또 그와 같이 고종의 사람으로 제국익문사로 활동했던 범석 역시 자취를 감춘 후였다.
사람들은 짐승을 잡던 백정이 사람을 잡는 백정이 된 것일 뿐 달라진건 없다고했다. 주제파악하지 못하고 글을 읽고 유학을 다녀왔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백정은 백정일 뿐 사람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수없이 절망했고 수없이 좌절했다. 목숨을 잃을뻔하게 맞은적도 많았고, 억울한 누명을 쓴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박서양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학문을 익히고 현실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처절하게 몸무림치며 달려왔다. 암울했던 구한말.. 외줄타기같던 박서양의 인생과 외세앞에 풍전등화같았던 조선의 모습은 너무 닮아있었다.
그리고 끈질기게 자신의 꿈과 미래를 놓지 않고 붙잡았던 박서양은 마침내 새로운 인생을 거머쥐게 되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는 이야기였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 그리고 시대와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보진 않았지만 익히 아는 일이라 그의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알고도 남는다. 세상의 시선과 사람들의 멸시를 이겨낸 박서양의 일대기는 감동을 넘어 위대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