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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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유산을 찾아 떠나는 숨막히는 모험

책의 표지를 보고 조금은 의심을 했어야 했다. 왜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배 그림이 있을까하고...폴 크리스토퍼의 <렘브란트의 유령>은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단순한 팩션 류의 소설에서 거친 바다를 무대로 한 해양모험소설로 둔갑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마술을 부린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소설들이 대부분 그 틀 안에서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에 비해 <렘브란트의 유령>은 그 틀을 깨고 놀랄만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렘브란트의 그림과 보물찾기라...이만한 상상이 또 어디 있을까?

소설은 매력적인 두 주인공의 등장으로 매우 '평범'하게 시작한다. 그들은 피터르 부하르트라는 사람의 공동 상속인이 되어 세 가지 물건을 상속받게 됐는데 15일 내로 그 물건들을 접수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조건에 따라 차례대로 물건을 접수하던 중 핀 라이언과 필그림은 이 물건들이 숨겨진 '보물'을 찾는 열쇠라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보물탐사에 나선다. 하지만 그 여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핀과 필그림은 부하르트의 세 번째 유산인 바타비아 퀸호를 타고 보물의 근거지를 추적하다 무시무시한 태풍과 사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목적지인 섬에 표류한다. 수수께끼같은 섬에서 한참을 헤매다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교수와 만나게 되고, '버뮤다 삼각지' 이상의 미스터리를 지닌 이 섬의 비밀을 알게 된다. 또한 핀과 필그림은 교수로부터 피터르 부하르트로 추정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행했던 선원들과 혹시 살아 있을지 모르는 피터르 부하르트를 구하기 위해 핀과 필그림은 교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교수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고, 교수가 그토록 피해왔던 원주민과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모든 모험소설이 그렇듯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는 생각지 못한 아군이 등장하는 법. 위험에 빠진 핀 일행에게도 아군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핀 일행을 도와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일까지 함께 하게 된다.

선원들이 잡혀있는 마을에 도착한 핀 일행은 신속한 작전을 펼쳐 선원들을 구해낸다. 그리고 핀과 필그림이 그토록 궁금해 하던 인물, 피터르 부하르트와 만나게 된다. 교수의 말과는 달리 피터르 부하르트는 그곳에 잡혀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원주민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 생각났는데 원주민 위에 '군림'하던 커츠와는 달리 부하르트는 그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부하르트와의 만남도 잠시, 보물을 노리는 나쁜? 놈들이 무장한 채 섬에 도착하고, 핀 일행과 부하르트에게 큰 위험이 닥친다. 과연 그들은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보물의 행방은?

<렘브란트의 유령>은 결말에 이를수록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고,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게다가 마지막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반전의 미학' 또한 만만치 않다. 잔인무도한 '해적놈' 같던 칸이 의롭고 나름의 철학을 지닌 인물이라는 설정과 "다 끝났군..."하는 순간 슬며시 드러나는 보물의 실체는 책을 덮고 나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렘브란트의 유령>은 숨막히는 모험과 잔잔한 여운이 잘 어우러진 정말 재밌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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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화 -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뜻밖의 조선사 이야기
배상열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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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조선의 역사 속으로

방대한 양의 실록이 전해짐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역사란 실로 미미한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조선의 역사는 오로지 시험을 치르기 위한 암기의 대상이었을 뿐 그것을 통해 우리의 전통과 정통성을 알고자하는 노력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고, 교과서에서 다뤄지는 내용 또한 역사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보단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인물과 사건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조선의 역사는 그야말로 피상적으로 몇몇 인물과 사건만이 각인돼 있는 게 전부인 실정이다. 이런 기초 없는 역사 토대 위에 TV사극과 영화 등을 통해 보여진 왜곡되고 날조된 조선의 역사를 사실인 것처럼 쌓아올려 이제 뭇사람들에게 조선의 역사는 야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역사스페셜이란 프로그램이나 특정시대를 다루는 사극이 나오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그 시대를 다룬 단행본 역사서 등처럼 역사를 본 궤도에 올리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기초로 해서 '제대로 된 역사알기'의 풍토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심심찮게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비화> 역시 그런 역사바로알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에는 등장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다루면서 감추어진 조선역사의 일면을 보여준다. 저자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줄기는 사건, 인물, 세태라는 세 가지의 주제로 요약된다.

우선 사건비화의 경우는 '경종시해설'처럼 다른 책에서도 다뤄져 익숙한 사건도 있었던 반면 '남용된 신문고'의 경우처럼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있었다. 민초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도구로만 알았던 신문고가 기득권층의 불만을 토로하는 도구로 쓰이거나 오히려 악용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일반백성들이 신문고를 이용하는 절차는 왜 그리도 복잡한지 그저 북만 치면 땡이 아니었다. 백성을 위해 설치한 도구였음에도 정작 백성들이 이용할 수 없는 이 어이없는 현실은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

두 번째 주제인 인물비화에서의 첫 내용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예로 들며 조선이 불교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다루고 있다. 언급한 혜원의 그림은 '단오풍정'이란 그림으로 단오를 맞아 개울가에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승려들을 가리키며 불교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꼬집고 있다. 하지만 혜원이 풍속화가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저자의 접근은 약간 억지스러움이 있는 것 같다. 혜원이 남긴 작품을 두루 살펴보면 알겠지만 당대에 있어 파격이라 할 정도로 세태에 대한 풍자정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단순히 편견이니 입소문이니 하는 것보다 혜원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내용을 담지 않았다면 그처럼 실감나게 묘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단오풍정'에 등장하는 중들은 동자승이라 할 수 있는 어린 중들로 아직 수행이 길지 않은 터라 자신들의 성적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혜원의 그림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드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인용한 부분을 빼놓더라도 불교에 대한 편견은 아주 공공연하게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주제인 세태비화는 오늘날을 비추어 볼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동방간음지국'이라 명명한 첫 내용에서부터 병역비리와 '학력위조'로 여겨지는 사건을 다룬 부분까지 어쩌면 이토록 지금 시대와 유사한 지... 유교적 엄숙주의로 꽉 막힌 상황에서 일탈적 성행위는 이제는 더 이상 놀라워야 할 사실이 아니라 그 원인과 심리를 파헤쳐 봐야 할 부분이 아닐지..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이 국방력 강화보다 병역비리를 뿌리뽑기 위한 것이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고,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타파'된 것이 아니라 급속한 전 국민의 '양반화'로 인한 세금수취의 문제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조선비화>는 연대와 사건 순으로만 나열된 채 인과관계없이 짤막하게 내용서술에만 치우치고 있는 종래의 역사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그 내막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훨씬 수월하게 역사를 이해하는 장을 마련한다. 마침내 베일을 벗고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조선의 역사, 이제 그 진가를 발휘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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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콘서트 2 - 우리 동네 집값의 비밀에서 사무실 정치학의 논리까지, 불확실한 현실에 대처하는 경제학의 힘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2
팀 하포드 지음, 이진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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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선택이론으로 풀어보는 일상의 모습

표지에 '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덧붙여 출간되는 책들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그만큼 요즘 독자들이 경제(학)에 관심이 많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는데 그렇게 많은 책들이 과연 모두 쓸모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나 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어느 분야든지 시류에 편승한 무임승차는 있는 법이니까... <경제학 콘서트 2>도 그런 시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책은 2권이 아닌가? 출판흐름에 기대고 전작의 후광효과까지 업었다면 당연히 눈을 흘기고 볼 수밖에...

책의 내용을 살피기 전에 표지에 있는 문구들을 먼저 보면 이 책을 가리켜 '불확실한 현실에 대처하는', '실전응용력이 강해지는' 등의 표현을 하고 있다. 이 말들은 사람들에게 능동적인 행동의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솔직히 이 책의 효과가 거기까지 미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 팀 하포드가 줄기차게 외쳐대는 '합리적 선택'은 인지의 대상이지 행동의 변화를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그러하듯 책에서 읽은 내용을 행동으로까지 발전시키진 못한다. 심리학과 경제학 책을 두루 섭렵했을지라도 막상 선택의 순간에선 그야말로 '내 방식대로'인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크게 행동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다.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생동감 넘치게 이야기할 뿐 주장을 가지고 독자를 설득하려 들거나 독자로 하여금 행동을 변화를 주도록 자극하진 못한다.

이것은 저자의 이야기방식에서도 알 수 있다. 책에는 저자가 인용한 수많은 연구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연구내용과 실적들은 이야기의 내용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저자에 의해 증폭된 호기심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분명한 건 저자가 인용한 다양한 연구들이 '사실의 이해'를 위한 도구일 뿐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아니라는 점이다.

표현방식이야 어쨌든 이 책은 독자들에게 경제학의 눈을 통해 세계를 관찰하는 법과 합리적 사고의 틀을 제공해 준다.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일상 곳곳에서 합리성을 찾아내 보여주고, 정치와 역사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의 이름으로 해석을 시도한다. 이제 경제학은 더이상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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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게 될 거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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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게 될거야>의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의 작품은 국내에 여러 작품이 출간돼 있음에도 정작 만나본 작품은 <절대 울지 않아>와 나오키 수상집 <플라나리아> 뿐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어떤 면에서 이번 작품은 앞서 읽었던 두 작품과 비교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내 나름의 추측컨대 그것은 주위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 여주인공의 거침없는 성격(플라나리아)과 '운다'라는 행위가 말해주는 의미(절대 울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울게 될거야>의 주인공 쓰바키는 내레이터 모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으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고 있는 23세의 젊은 아가씨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보통이란 이름의 일상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져 있고, 그녀의 화려한 남성 편력이 말해주듯 당장의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면 부도덕한 일조차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직설적이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태도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녀를 거의 '불능'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타인으로 하여금 소통의 문을 닫게 만드는 치명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선 <플라나리아>의 하루카를 연상시키는데, 하루카 역시 자신의 병력을 공공연하게 밝힘으로써 남자 친구는 물론 주변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고 만다.

방종과 타락으로 오염된 그녀의 삶은 그녀가 동경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토대로 얻어진 것으로 이 또한 하루카가 플라나리아가 되길 꿈꾸며 현실과 유리된 채 퇴행을 거듭했던 것과 유사하다. 쓰바키는 할머니와의 동일시를 통해 암묵적으로 자신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행동들을 정당화하면서 늙어서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꿈꾸었지만 병실에서 '평범한 노인들'과 다를 것 없이 그저 힘없이 누워있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 꿈은 깨어져버린다.

아름다움을 최고의 무기로 생각했던 쓰바키가 병상의 할머니를 통해 그 아름다움이란 것이 꽃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덧없이 사라짐을 목격하고, 게다가 그 아름다움조차 사랑받지 못한 무의미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자 자신의 인생 중 처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다. 또한 여기엔 "눈물 뺄 날이 올 거야"라는 우오즈미의 가시돋힌 충고도 적잖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목도 그렇고, 여성의 심리를 잘 그린다는 작가의 글쓰기를 생각해 볼 때 우오즈미가 쓰바키를 향해 던졌던 '울게 될거야' 라는 외침은 분명 의미가 있다. 여기서 눈물을 흘리는 행위, 즉 운다는 건 <절대 울지 않아>의 주인공들처럼 마음의 치유나 고통의 해방을 담당하는 역할 외에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대한 자기반성의 역할도 있음을 짐작케 한다.

쓰바키는 분명 잘못된 길을 걸어왔지만 그녀의 심정을 변화시킬 만한 여러 일들을 겪었으니 분명 전 보다 달라진 삶을 살 거라는 생각이 든다. 봄에 만개하기 위해 다른 계절은 인내의 시간으로 보내는 동백꽃처럼 쓰바키도 진정한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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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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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라는 키워드로 다시보는 세종시대

최근 세종에 관한 책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세종시대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정보 가운데서도 몇몇 책에서 짧게나마 다뤄졌던 세종시대의 부패나 비리에 관한 내용들을 호기심어린 마음에 유독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다른 시대도 아닌 세종시대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놀라움과 의구심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내막을 알고 싶었으나 그와 관계되는 책을 찾지 못했다.

그런 중에 만나게 된 것이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라는 책이다. 사실 제목만 듣고는 세종시대 있었던 모든 비리나 부패사건을 총망라한 책인 줄 알았는데 막상 책을 보고나니 그 중 특정한 한 사건만 다룬 책이었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이다. 단행본 역사서 치고는 책이 유난히 얇고 작아 보여 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역시 특정사건만을 다루다 보니 그럴 수밖에...

이야기는 맞바로 세종대에 벌어졌던 희대의 "권력형 비리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자세히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조말생이라는 고위공직자가 사적으로 노비를 받아 부를 착복했으며 그 대가로 각종 이권을 허용해 주고, 인사상의 특혜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부패의 전모가 알려지자 그의 죄를 추궁하는 상소가 빗발쳤고, 결국 그는 귀양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조말생은 죄에 대한 벌로 귀양길에 올랐지만 사헌부나 사간원 등의 관리들과 대신들은 죄가 크다며 사형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종은 조말생을 아껴 그를 결단코 죽이려 하지 않는다. 끈질기게 사형을 주장하는 신료들과 자신이 아끼는 신하를 보호하려는 세종의 긴 싸움은 계속되고 결국 세종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한편 세종은 조말생의 벌을 줄여주는 것도 모자라 그를 재선임하기에 이른다. 이 또한 다른 신하들의 큰 반발을 불러왔지만 결국 세종의 뜻이 관철되고, 조말생은 복진된다. 게다가 세종의 뜻에 부응해 완벽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세종과 대신들의 조말생의 형량에 관해 논쟁했던 일을 1차전, 조말생의 복귀문제와 관해 논쟁했던 일을 2차전이라고 하면, 3차전은 조말생 자신의 신원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세종이 자신을 신임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과거 못지않게 높아진 위신으로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자신의 죄가 없음을 밝히는 논쟁의 불씨를 키우려 하지만 세종은 이를 묵과하고 단지 그의 능력만 높이 사고, 그에게 있어 부당한 대우를 해소해 주는 선에서만 일을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끝내 그는 자신의 죄를 백지상태로 만들진 못한다.

이처럼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는 세종시대에 아주 긴 시간동안 벌어졌던 한 비리 사건을 추적하면서 그 사건이 어떤 식으로 처리가 되며, 그 과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짚어 보고 있다. 마땅히 사형에 처해질 죄임에도 죄인의 능력을 우선시해 확고한 감형을 택했던 세종의 조치는 법치주의에 반하는 행동이었지만 꼭 필요한 인재라는 확신만으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그의 확고한 신념은 실용주의가 어떤 것인지, 어떤 일에 함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부족함을 느꼈던 것은 각주가 없다는 점이다. 책의 내용 중 형법에 관한 용어이나 각종 한자어 등 각주를 달아 설명을 요하는 내용이 많음에도 각주가 전혀 달려 있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의 단어들은 글 속에서 설명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글을 어렵게 느끼게 할 뿐이다.

부패는 정직하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그리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에겐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세종은 ''필요한 인재''라는 생각으로 정직하지 못한 조말생의 능력을 믿었고, 그것은 뚜렷한 성과로 이어졌다.

세종의 굽히지 않은 소신과 믿음.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리더십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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