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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인간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조경수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의 뇌와 한 사람의 육체를 빌어 태어난 인간
<걸작인간>은 정말 흥미로운 소설이다. 육체는 온전하지만 사고로 인해 뇌를 포함한 머리가 망가져 버린 한 청년과 오로지 머리만 말짱한 채 사지는 엉망이 돼버린 한 남자의 결합! 뇌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제어하는 중추역할을 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나는 머리만 살아있던 남자 게로의 머리(뇌)가 육체만 남아있던 요제프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취해서 쉬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흔해빠진 장기이식이 조금 거창하게 진행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합하는 수술의 과정처럼 '새로운 게로로 태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의 육체 모두를 취하는 것은 그 육체에 묻어나는 경험의 흔적들과 본능의 파편마저 수용해야 했다.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반응, 좋아하는 운동 등등 요제프의 육체가 남긴 생각과 행동의 경험들이 그것을 제어하려는 게로의 의식에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게로도 모르는 사이' 벌어지게 된다. 요제프의 육체에 남아있던 신경들은 자신의 주인이 바뀌었음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게다가 이런 게로와 요제프간의 육체와 정신의 대결, 의식과 경험의 대립 구도에서 또 하나의 모습이 끼어들게 되었으니 두 사람의 결합으로 발현한 '신인간'이었다.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트랭크스와 손오천이 '퓨전'이라는 것을 통해 '오천크스'라는 둘의 특징을 지녔지만 전혀 다른 인물을 만들어냈듯이 게로와 요제프의 '합체'는 요르게라는 인물을 만들어 냈다. 정확히 따진다면 게로와 요제프의 수술적 결합은 요제프의 몸을 가진 게로나 게로의 뇌를 가진 요제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요르게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인간 요르게는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게로와 요제프를 정신의 수면 밑으로 가라앉힌 채 이제 자신의 길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길동무로 게로와 요제프 수술의 길잡이 의사였던 레나를 택한 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레나는 요르게에게 있어 모성애와 이성애 모두를 느끼게 하는 대상이다. 요르게라는 인간이 탄생하기까지 일 년 남짓한 짧은 시간동안 항상 곁에서 함께했던 레나의 보살핌은 모성애의 싹이 되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요르게라는 사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 인정해주는 그녀였기에 요르게는 게로의 처 이본네나 요제프의 여친 리타가 아닌 레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뇌를 가진 사람에게 육체를 선사한 사람이 모든 면에서 구속될 줄 알았던 처음의 생각은 전혀 맞지 않았고, 너무 단순한 판단이었다. 경험의 총체인 사지와 의식을 지배하는 뇌의 결합은 전혀 다른 인물을 탄생시켰고, 그 인물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 진정 자신을 위한 삶을 찾으려 노력한다. 인간의 손에 의해 탄생된 요르게. 의식의 수면아래 침잠해 있는 게로와 요제프의 무수히 많은 기억과 경험의 산물들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기억, 새로운 경험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길...아직 그의 육체는 충분히 젊고, 그의 뇌 역시 새로운 세포 속에 모든 것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