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종들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3
한 둥 지음, 김택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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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독종들>은 한 개인이 지나온 삶과 한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성장소설이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손종일의 <어린 숲>이 떠오르기도 하는 이 소설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격동기였던 중국의 70년대부터 비교적 오늘날에 가까운 최근의 중국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장짜오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세상의 모습은 과거 60, 70년대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의 사소한 놀이문화나 행동거지 등은 우리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내 친구들을 보는 것처럼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졌고, 타국의 소설이라는 이질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장짜오라는 소년의 주인공이 궁수이의 현중학교로 전학을 오는 내용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고약한 장난을 일삼는 동급생 웨이둥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며 그가 다니게 될 초급2학년 1반에 입성하지만 오히려 웨이둥의 장난에 당한 일이 계기가 되어 주훙쥔이라는 배짱 두둑한 아이를 친구로 사귀게 된다. 주훙쥔은 좋은 아이였지만 정말 못 말리는 독종 중에 하나였다. 사람이 아닌 ’전기’와 겨루기를 하고, ’특이차량’에 열광했으며 그만의 독특한 ’사냥철학’으로 공갈 사냥을 했다. 또 한명의 독종은 어딜 가나 꼭 있기 마련인 안하무인의 망나니 같은 녀석이었다. 그의 이름은 앞서 언급한 웨이둥. 게다가 이 악동에게는 든든한 집안배경이 있었고, 또 그 배경만큼이나 무기가 될 만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 두 독종과 한 반이 되어 왕짜오는 그렇게 학창시절의 추억과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쌓아갔다.

양 극단에 위치한 두 독종은 좀처럼 대립하지 않았고, 왕짜오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호기심 있게 관찰했다. 이런 왕짜오의 관심은 점차 그 둘을 넘어 다른 아이들과 이웃들에게까지 이어지고 그의 눈에 비친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그 시절의 풍경과 함께 생생히 그려진다. 독종에다 타고난 괴짜였지만 친구에게만은 헌신을 아끼지 않은 ’절친’ 주훙쥔에서 가난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또 한명의 친한 친구 딩샤오하이, 명랑거지에서 괜찮은 집안의 양자가 됐다 살인범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신성, 그리고 왕짜오 아버지의 친구들과 또 다른 독종들과 아이들과 팽팽한 기싸움을 하던 선생님 등등 궁수이에 만난 왕짜오의 다양한 인연들이 등장한다.

세월이 흘러 왕짜오와 주훙쥔, 딩샤오하이는 각자 자신의 길을 걷게 되고, 편지를 통해서 인연의 수명을 연장해 보지만 미대에 입학해서 무던한 대학생활을 하던 왕짜오와 군인으로 입대해 더욱 더 심한 괴짜기질을 보인 주훙쥔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의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그들의 깊은 우정에 금을 만든다. 두 친구의 반목은 딩샤오하이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이제는 더욱 가속도를 내서 각자의 길을 갈뿐이었다. 이제 어린 시절의 우정과 추억은 말 그대로 과거의 일, 그뿐이었다. 종종 딩샤오하이에게서 주훙쥔의 소식을 듣지만 왕짜오는 소식을 듣는 걸로만 만족할 뿐이다. 왕짜오와 주훙쥔은 끝내 우정 어린 재회를 할 수 없게 되고, 과거의 희미한 기억만 가슴에 남은 채 왕짜오와 딩샤오하이만이 중년의 길에 접어든다.

점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소설 속 세 친구는 익숙한 우리주변의 모습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그 시절을 지나서 누구는 대학에 가고, 누구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점점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작은 차이가 쌓이게 되고, 그것이 그들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든다. 그래서 작은 성의를 베푸는 것조차 상대는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만남 자체도 거북하기 일쑤다. 세월의 무게는 그렇게 둘 사이를 닿을 수 없을 만큼 멀게 만들었다. 쓸쓸하게 돌아서는 친구의 뒷모습이 점점 더 작아지기 전에 마음의 시간을 그 때 그 시절로 되돌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유년을 기억해 주는 친구야말로 인생에 가장 소중한 친구니까 말이다. 나는 왕짜오가 정성을 다해 그린 그림을 가지고 딩샤오하이와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 그림 속에는 왠지 그 시절 가장 친했던 철부지 삼인방이 짓궂게 웃는 모습이 담겨 있을 것 같다. 더불어 그 그림의 제목은 ’독종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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