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하얀빛이었다가 푸른빛이었다가 붉은빛이었다가
아니면 그 모든 색깔을 사유하던 시간의 첫머리였다고 - P63

뭔가 다 나간 자리에도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있었다

몰랐을 뿐이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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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잘해주지 못해서 마음은 비었고
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손도 비었다
꼭 내가 당신을 배반한 것 같다 - P11

꿈꾸는 귀가 듣는 발자국 - P13

한때 이국의 시어들은 겉돌았고
아직 오지 않는 말을 향하여
이미 왔던 말들이 창밖의 바람을 흔들었다
그 바람 속에는 무엇이 있었나

말의 그림자만이 오십 년 전에 쓰인 그 말의 그림자만이
냉수를 마시며 지나간 말을 지우고 올 말도 지운다 - P36

저녁은 갑자기 오더니 어둠은 천천히 오시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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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목적 없이 지상에 내려오지 않고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면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오만한 신념이며, 인간이 신을 숭배하는 단 하나의 이유다. - P266

성하는 잠깐 후회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흥할 부족과 쇠할 부족을 정하는가. 오랜 옛날에 내려왔던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남쪽 사람들에게도 죄가 없으며, 그들이 해를 입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진짜 신이라면 이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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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지구로 가려 해. - P115

벌점으로 배급을 줄이면 사람들은 물자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돼. 자기가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사람들은 배급이 줄면 윗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탓해. 그리고 자신을 실수하게 만든 옆 사람을 탓하지. - P142

돛단배를 위해 아이들과 종이로 꽃을 접어서 창가에 놓아두었어. 긴 세월을 혼자 여행한 그 작은 영웅을 위해서. - P141

항변하면 놀림감이 돼. 내가 불순분자들이 좋아하는 인권이나 노동권 같은 말을 하고 있대. 이제 그런 말은 다 조롱거리가 되었지. 다들 ‘이런 시국에‘ 하며 말을 시작하는데 그 ‘이런 시국‘이 언제부터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 - P145

보이는 대로 믿어서는 안 돼.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싶다면 눈에 보이는 영상보다는 인간의 신경계와 빛의 성질을 연구해야 해. 중요한 건 ‘왜 그렇게 보이는가’지,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야.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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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사라지는 것 앞에서 비명을 질렀어. 망가지고 사라지고 늙고 낡고 분해되고 죽고 멸망해가는 것들 앞에서. 단 한 번에 어처구니없이 잃어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애도했어.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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