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와 혼란과 각성은 팬데믹을 거쳐 포스트 팬데믹을 통과하는 지금과도 여실히 맞닿아 있다. 재난 이후의 어지러운 세계에서 과연 어떤 예술이 이 세계를 규명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술이 과연 가능할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백여 년 전, 전쟁과 질병을 한꺼번에 겪은 그 시절 예술이 하려 했던 일들을 살펴보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 P106
"나는 예술로 삶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자기의 심장을 열어젖히는 열망 없이 탄생한 예술은 믿지 않아.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해.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야!" - P120
뭉크에 비추어보면, 예술가란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 불꽃같은 의미를 찾으며, 스스로 불안과 불행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이다. - P122
피투성이 예술가 뭉크는 사랑이라는 진폭이 큰 감정에도 달빛을 보는 차분한 밤과 같은 느린 파동의 감정들이 존재하고, 때론 느린 파동의 감정이 생을 이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 P124
세련되거나 정교하지 않은 꽃, 꽃잎은 날카롭고 검은 씨앗이 쏟아질 듯 들어찬 꽃, 꽃에서 씨앗까지 생의 고리가 한눈에 보이는 꽃,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꽃이었다. 반 고흐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태양은 기독교 신앙에서 신의 대체물이자 자연의 원천으로 본다. 한때 목회자가 될 생각도 가졌던 반 고흐는 하늘을 우러르는 해바라기의 성정에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노랑은 태양의 색이자 땅의 색이었다. - P130
반고흐는 어떤 장면이든 사건의 중심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너무도 많은 영감으로 가득해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우리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악수를 건네는 것만 같다. 테오에게 보낸 무수히 많은 편지처럼,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가득한 편지글이다. - P146
그림은 우리를 거센 바람이 부는 드넓은 밀밭으로 데려가, 강한 바람 속에서 겨우 몸을 가누며 거대한 자연 앞에 서있는 화가를 보게 한다. 화구통에 담긴 녹색과 노랑과 푸른색의 튜브 물감,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르더라도 최고급을 고집했다던 그 물감, 그러다 마음이 무너지면 삼켜버리기도 했다는 그 물감이 이룬 것들을 보게 한다. - P150
그림은 이겨내겠다는 마음으로 전쟁을 치른 화가의 노획물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파도처럼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붓질과 두껍게 발린 물감은 캔버스에 존재하는 화가의 실존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 P151
케테 콜비츠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피에타를 그렸다. 그 어머니를 위로하되 종교적인 의미는 조금도 담고 싶지 않았던지, 후광은 반짝이는 금색이 아니라 현실적인 흙의 색에 가깝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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