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머거리의 집에서 나동그라진 늙은 화가는 그 자신이 그저 늙은 개에 불과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지만 아름다운 것, 마음을 따듯하게 하고 미소 짓게 하는 것,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 그러니까 종달새의 노랫소리를 붙잡고 싶었던 것일까? 산뜻하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날갯짓이 꿈결처럼 귓가에 스친다. - P309

그림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얇디얇은 종이에 가느다란 선으로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가 마침내 껍질을 깨고 하나의 세계를 열었다. 어떤 위대한 걸작도 그 시작은 이렇듯 하나의 선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면 수많은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이 남는다. - P323

얇은 종이 위에 그려진 가느다란 펜 드로잉을 소중하게 간직한 사람들이 있었고, 가치를 알아보고 비용과 기술을 들여 수집하고 보존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 앞에 불멸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행성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켜야 할 것들을 어떻게든 지켜오는 그 마음이, 어떻게든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예술의 생애를 무한하게 만든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제는 온 마음을 다해 지키는 사람들이 전제가 된다. - P331

예술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끝끝내 보는 사람이다. 본다는 것은 온몸으로 그 몸을 둘러싼 것들과 벌이는 맹렬한 싸움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데는 마음이 작동한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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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폐허가 된 자신을 그릴 때 그 고통은 표현의 기쁨으로 해소되었을까? 오히려 엄습하는 고통을 거듭 되새기며 더 깊은 고통 속에 머무르게 했던 건 아닐까? - P219

날아가는 검은 티티새 같은 눈썹으로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다. 빗방울처럼 쏟아지는 눈물도 방해하지 못했다. - P221

우리는 백골로 남게 되고 그마저도 풍화되어 한 줌의 먼지가 될 운명이지만 자연은 영원의 이름으로 존재를 감싸게 될 것이니, 이것은 위로의 순간이라 해야 할까, 초월의 순간이라 해야 할까? - P245

출생지나 교육환경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몸담고 있는 그곳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그것이 미국의 예술을 만든다고 그녀는 믿었다. - P250

그가 지난날 몰두하던 죽음은 내면에만 존재하지 않고, 이제 도처에 있었다. 이 어두운 세계를 예술로 돌파하려면 그 죽음들을 다시 바라보아야 했다.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던 두 눈을 세계를 향해 돌렸을 때 그의 눈에 띄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의 몸을 감싸주던 색색 가지 이불이었을지도 모른다. - P282

서로를 끌어안는 것만큼 인간적인 행동은 없다. 에곤 실레의 그림처럼, 인간의 몸은 서로를 끌어안으라고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안고 보듬으며 사랑을 나누고 열매를 맺는 것.
1918년의 사람들이 바랐던 것은 단순히 그것이었을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정,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 바로 그것.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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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된다면 훨씬 앞서가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겠지만 좋은 예술가는 천재의 뒤를 좇으면서 그동안 사라진 끈을 복구시켜야 한다."

천재 예술가와 좋은 예술가, 그는 그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았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좋은 예술가 쪽에 있었다. - P170

세잔은 자신의 눈, 자신의 감각을 믿으며 보이는 것들 사이의 기적 같은 마법을 읽어내려 했다. 그것이 자연의 본질이라 믿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한 세잔의 산은 언제까지나 미완성이며, 미완성인 채로 완성이다. - P194

세잔도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확히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알지못했다. 언젠가 세잔은 ‘모티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을 받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곰브리치가 말한 대로, 그는 정확한 소묘를 무시한 이 순간이 미술사의 대전환이 되리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이것이 앞으로 무엇이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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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와 혼란과 각성은 팬데믹을 거쳐 포스트 팬데믹을 통과하는 지금과도 여실히 맞닿아 있다. 재난 이후의 어지러운 세계에서 과연 어떤 예술이 이 세계를 규명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술이 과연 가능할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백여 년 전, 전쟁과 질병을 한꺼번에 겪은 그 시절 예술이 하려 했던 일들을 살펴보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 P106

"나는 예술로 삶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자기의 심장을 열어젖히는 열망 없이 탄생한 예술은 믿지 않아.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해.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야!" - P120

뭉크에 비추어보면, 예술가란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 불꽃같은 의미를 찾으며, 스스로 불안과 불행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이다. - P122

피투성이 예술가 뭉크는 사랑이라는 진폭이 큰 감정에도 달빛을 보는 차분한 밤과 같은 느린 파동의 감정들이 존재하고, 때론 느린 파동의 감정이 생을 이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 P124

세련되거나 정교하지 않은 꽃, 꽃잎은 날카롭고 검은 씨앗이 쏟아질 듯 들어찬 꽃, 꽃에서 씨앗까지 생의 고리가 한눈에 보이는 꽃,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꽃이었다. 반 고흐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태양은 기독교 신앙에서 신의 대체물이자 자연의 원천으로 본다. 한때 목회자가 될 생각도 가졌던 반 고흐는 하늘을 우러르는 해바라기의 성정에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노랑은 태양의 색이자 땅의 색이었다. - P130

반고흐는 어떤 장면이든 사건의 중심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너무도 많은 영감으로 가득해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우리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악수를 건네는 것만 같다. 테오에게 보낸 무수히 많은 편지처럼,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가득한 편지글이다. - P146

그림은 우리를 거센 바람이 부는 드넓은 밀밭으로 데려가, 강한 바람 속에서 겨우 몸을 가누며 거대한 자연 앞에 서있는 화가를 보게 한다. 화구통에 담긴 녹색과 노랑과 푸른색의 튜브 물감,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르더라도 최고급을 고집했다던 그 물감, 그러다 마음이 무너지면 삼켜버리기도 했다는 그 물감이 이룬 것들을 보게 한다. - P150

그림은 이겨내겠다는 마음으로 전쟁을 치른 화가의 노획물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파도처럼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붓질과 두껍게 발린 물감은 캔버스에 존재하는 화가의 실존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 P151

케테 콜비츠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피에타를 그렸다. 그 어머니를 위로하되 종교적인 의미는 조금도 담고 싶지 않았던지, 후광은 반짝이는 금색이 아니라 현실적인 흙의 색에 가깝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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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에서 수련은 중요하지 않다. 수련이 제대로 표현되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빛과 색이 창조한 마술 속에 기꺼이 갇히고 거두어지는 순간에 빠져들 뿐이다. 마법 같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은 움직임을 멈추고 우리는 생각을 멈춘다. 아주 잠시라도 그 영원 속에 잠겨있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의 세상 속으로 되돌아가기 전까지. - P35

마네는 모두가 존경하는 대가들의 작품을 박물관의 높은 벽에서 꺼내어 일상 생활을 담아내는 프레임으로 활용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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