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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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
'채손독'에서 받아본 책이다.
맨부커상 수상작가인 줄리언 반스
40년 문학의 결정판이라는 띠지에
이 책이 너무 궁금해졌다.
처음부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오랜만에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낑낑대며 읽은 책이었다.

* 화자인 닐은 자신이 나이 먹고 들어간
학교에서 교수이자 멘토였던
엘리자베스 핀치와의 첫 만남을 서술했다.
메모도, 책도, 초조함도 없이
그들 앞에 서 있던 여자.
'문화와 문명'을 가르칠 예정이었던
그 여자는 닐의 평생에 이번 한 번만큼은
제대로 찾아왔다는 예감이 들게 했다.

* 총 3장으로 나누어진 책에서
1장은 엘리자베스 핀치와 닐,
그의 주변 상황에 대한 일들을 서술했다.
어떻게 엘리자베스 핀치를 만났고,
그는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으며,
그녀의 수업에만 있었던 그 모든 것들.
그 수업을 받으면서 그가 엘리자베스 핀치에게
받은 영향과 그의 삶의 변화가 나타났다.

* 수업이 마무리가 된 뒤에도 그들의
만남은 계속 되었다.
닐은 엘리자베스 핀치에게 가끔 만나서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것을 허락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닐은 그때는 몰랐지만 당시에 엘리자베스 핀치가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사망하면서 자신이 가졌던
메모와 노트, 책 등을 모두 닐에게 남겼다.

* 닐은 그녀의 유품을 받아들고서 당황했다.
하지만 곧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그녀의 수업과 그녀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대한 에세이를 쓴 것이다.
이때문에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기독교의 역사와
이교도 황제 율리아누스에 대해 파고 들어야만 했지만.

* 마지막 3장은 엘리자베스 핀치의 오빠를 통해
자신이 알지 못하던 그녀의 어린 시절과
그와 만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자신의 동창이자 전 연인이었던 안나와
다시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엘리자베스 핀치에게 적대적이었던 동창 제프를 통해
그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자신이 몰랐었던,
혹은 자신이 겪은 엘리자베스 핀치와
역사속 인물인 율리아누스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된다.

* 결론적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는 매우 힘든 책이었다.
처음에는 사춘기 소년도 아닌 남성이 선생에게
이렇게까지 반할 수 있을까? 하는 배덕감이 심했다.
심지어 그는 결혼도 했었고 자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로 가면 갈수록 대체 이 화자는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걸까? 하는 혼란이 있었다.

* 엘리자베스 핀치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단아한 여성이었는지를 알려주고자 함이었나 싶었지만
툭툭 튀어나오는 기독교 이야기에
책을 놓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때 마다 순간 머리를 팅!
울리게 하는 문장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 술술 읽히는 페이지 터너도 아니고
책을 이해하기 위해 강제 역사 공부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을 두고 느끼는 감정과 엇갈린 기억을 통해
내가 상대방에게 느낀 그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인도 누군가에게는 천사가 될 수 있듯이,
천사도 누군가에게는 악인이 될 수도 있겠지.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막상 책을 덮고 보니
심도 있는 철학과 지적 충만을 경험할

좋은 계기가 되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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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수명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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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최강 출판사 델피노!

언제부터인가 델피노에서 출간되는 책은

무조건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델피노 신작이 나왔다고 하길래

고민없이 집어들었다.

늘 신선한 소재로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인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두근두근했다.


* 대한민국에 수명 측정의 시대가 도래했다.

당뇨 수치를 재는 방법과 비슷한 채혈과

기계마저 비슷하게 꼭 닮았다.

한 방울의 피로 내게 남은 수명을 알 수 있다.

자연재해, 사고를 제외하고 수명은 늘릴 수도 있었다.

건강한 식단, 규칙적인 운동으로 힘들게 늘려도

늘린 수명을 줄이는 건 단 며칠의 일탈에 불과하다.


* 백도훈은 아침에 수명을 재고 깜짝 놀랐다.

요 며칠 술을 연달아 마시긴 했지만

수명이 2년이나 줄어있었던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 정우가 힘든 일이 있다며

울고불고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수명이 줄어들 일은 없었을텐데...


* 도훈에게 전화를 건 정우는 처음으로

수명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기대수명은

처음부터 형편없이 낮았고,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수명은 타인에게 나눔이 가능했다.

평생에 단 한사람에게만 줄 수 있다.

공여자는 그만큼 수명이 줄어들고,

수여자는 그만큼 수명이 늘어난다.

정우는 가족이 있었기에 당연히

수명 나눔을 받을 수 있을줄 알았다.


* 하지만 정우는 가족들에게 수명을

나눔받지 못했고, 그렇게 그는 죽었다.

가족같은 친구의 죽음에 도훈은 폐인이 됐다.

그런 도훈에게 그녀가 찾아왔다.

차세희. 매정하게 도훈을 버리고 가버린 여자.

그녀는 도훈에게 정우의 부탁으로 왔다며

자신과 함께 다시 시작하자고 얘기한다.


* 그렇게 도훈은 세희와 행복하다면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 사이에 딸 은유도 태어났다.

고아였던 도훈에게 완벽한 가족의 형태가 생긴 것이다.

세희는 자신의 기대수명이 짧으니

수명을 나눠주라고 했고, 도훈은 승낙했다.

그리고 수명 나눔 수술이 끝난 후

세희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더 이상 도훈에게 볼일이 없는 것처럼.


* 오래 살고자 하는 욕구는 어쩌면

인간에게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훈을 버린 세희를 보면서,

또 은유가 아프자 세희를 찾아가고

세희와 같은 방법을 선택하는 도훈을 보면서

이들에게 양심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무엇인들 못하리오.

그 자식들에게 그들은 헌신적인 부모겠지만

그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는

악마가 따로 없겠지.

이들의 양심은 비추는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크리스탈 같아 보였다.

하나뿐인 자식의 생사가 걸린 일이니

미쳐 날뛰는 것도 이해는 간다.

가슴은 이해를 하지만, 머리는 이건 아닌데... 라며

나 스스로도 양심과 이성 사이에서 싸우며 책을 읽었다.


* 책을 읽는 내내 참 씁쓸했다.

나는 내 수명을 나누어 준다면,

누구에게 나누어 줄까?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내 냥냥이지만.

나의 수명을 알고도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근본적인 물음과 함께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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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아가멤논 가문의 저주 대가 고전·인문 시리즈 (LINN 인문고전 시리즈) 15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아이스퀼로스 지음, 김성진 편역 / 도서출판 린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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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
'채손독'을 통해서 받아본 책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어렸을 적부터 만화책으로,
애니메이션으로 많이 봐서 꽤 익숙한 편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애니보다는 영화와 책으로
그들을 만나 봤었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많고 많은 신과
인간의 가문 중에서 가장 최고의 비극으로 꼽히는
탄탈로스 가문.
그 탄탈로스 가문의 저주와 복수를
잘 정리한 책이 있다고 해서 냉큼 받아봤다.

*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은
전쟁에서 이긴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살해당한다.
그것도 자신의 아내에게.
아가멤논과 아내 크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서 난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살해하게 된다.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아들이 어머니를 죽인
가장 그리스 최고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 이들이 어째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따지자면 그들의 선조 탄탈로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포스 궁전에서 열리는
신들의 만찬에 초대해 신들이 먹는 음식과 술을 먹는
기회를 가진 사람.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누릴 수 없는 호사의 특권을 지녔으나
곧 딴마음을 품고 만찬에서 나오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훔쳐서 인간 친구들에게 나눠주는가 하면,
신들의 비밀을 떠벌리고 다니기도 했다.

* 까마귀가 백로와 논다고 해서 백로가 되는 것은 아닌데,
그는 자신이 신들과 함께 하기에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의 화를 돋군 탄탈로스는
신을 시험하고 능멸한 대가로 큰 벌을 받는다.
맛있는 사과나무가 눈 앞에 있어도 먹을 수 없고
아무리 갈증이 나도 마실 수 없는,
영원한 배고픔과 갈증 속에 갇힌 것이다.

* 이러한 신들의 저주는 탄탈로스에게만 내려지지 않고
대대손손 그의 가문을 피의 가문으로 만들었다.
큰아버지가 조카를 죽이고, 그 피와 살로 음식을 만들어
동생에게 먹이는 일도 있었다.
딸과의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이를 복수의 도구로 쓰기도 하며
동생에게 복수를 종용하는 일도 있었다.

* 인간은 신을 섬기며 신에게 기대어 신탁을 받는다.
그들은 신의 말을 듣고 일을 행했다고 믿어지지만
가장 근본적인 밑바닥에 깔린 것은 인간 스스로가 가지는
권력욕과 복수의 감정이었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신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을 보살피고
잘 살 수 있도록 돕지만, 그들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화를 입거나 제물을 바치도록 했다.
설령 그 제물이 그들의 딸이라도 말이다.
전지전능하신 신과 한낱 미물의 인간은 다르면서도 꼭 닮은듯 했다.

* 연극 대본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연극을 좋아하는 내가 상상을 하며 읽기에 너무 좋았다.
나름대로 무대장치를 상상하고, 조명의 고도를 따라
긴장감을 높이고 낮추며 읽었더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한국에 이같은 연극이 있다면 꼭 보고싶을 정도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지는 재판의 과정도 흥미로웠다.
현재의 재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오랜만에 읽는 인문학 책이 제대로 취향저격이라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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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처방해 드립니다 1
이시다 쇼 지음, 박정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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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
'채손독'을 통해서 받아본 책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나는 냥집사이다.
생후 3개월이 넘어갈 무렵 데리고 온 아이는
내년이면 14살이 된다.
얼마 전에 큰 수술도 했고, 회복이 더뎌
아직도 완전히 다 나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애써 외면해 왔었다.
'고양이'는 안그래도 내 눈물버튼인데
책을 소화해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래도 계속 미뤄둘 수는 없었기에
오늘은 펑펑 울어야지! 라는 각오로 책을 펼쳐 들었다.
미로 속 출구를 찾듯이 찾아간 병원.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은 건물의 5층에
그 병원이 있었다.
마음이 힘들어 ㅇㅇ클리닉, 정신과 등을 다니던
사람들이 소문을 모여들고 찾아드는 곳.

* 그렇게 찾아간 곳은 의사 하나,
뚱해 보이는 간호사 하나가 전부였다.
상담이 시작되면 의사는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실실 쪼개며 성의없이 보이기도 한다.
정체가 뭐지? 싶은 순간에 유레카! 처럼 외치는 한마디.
'고양이를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의사에게 떠밀려 강제적으로 집사가 된 사람들.
그들은 고양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울고 웃으며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느낀다.
처방 된 고양이를 다시 보내지 못해
그대로 키우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이미 갈 곳이 있는 고양이를 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 동그란 머리에 수염도 있고, 길쭉길쭉한 꼬리도 있다.
날카로운 발톱도 있지만 한 번 만지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는 젤리도 있다.
보들보들한 털을 만지면서 고롱고롱한 골골송을 듣고 있노라면
하루의 피로가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가 버린다.
음, 이 기분 내가 잘 알지! 고양이는 만병통치약이지~!
하다가도 틈틈히 펑펑 울기 바빴다.

* 처음 내 고양이를 봤을 때의 기분, 그 느낌,
처음으로 아이를 안았을 때의 촉감과 설렘,
그 모든 것들이 어제 일처럼 한꺼번에 떠올랐다.
내 두 손에 포옥 담길 정도로 작디 작았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커서 큰 수술도 견디고
아직도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니.
그저 안쓰럽고 기특해서 야밤에 간식 하나 꺼내줬다.

* 뻔한 틀에 갇히지 않고 중간에 니케 선생님과
지토세 간호사의 정체를 숨겨놓은 것도 꽤 흥미로웠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라면 중반쯤 부터는
대충 눈치 챌 수 있었지만, 고양이를 안키워보신 분들도
눈치를 챘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지만.

* 고양이는 백약 중에 으뜸이다!
이 말에 나도 동감한다.
바쁘고 정신 없는 일상에 소소한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이
반려동물이고, 고양이라고 생각한다.
'도도한 빙구.' 고양이를 지칭하는 별명 중 하나이다.
보기에는 엄청 도도한데 가끔 빙구 같은 짓을 한다.
그래서 더 귀여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빠진 내 고양이를 안고,
젤리를 만지면서 눈물, 콧물 쏙 빼고
내 마음까지 빼앗아간 책이었다.
내 주변인들이 나를 가장 부러워 하는 한 마디.
'나는 있다 고양이!'
벌써 2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2권도 재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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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스
곤도 후미에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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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플라자에서 받아본 책이다.

'세 명의 소녀를 연결하는 세 건의 살인사건!'

이라는 강렬한 띠지의 문구.

특히 '캐리어의 절반을'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던지라 같은 작가님의 

전혀 다른 색을 맛보고 싶어서 신청했었다.


* 한 소설가에게 온 의문의 편지 한 통.

세 친구를 둘러싼 관계에 관심을 가질 거라는 말에

소설가는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모두 소설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가늠할 뿐이다.


* 그렇게 만난 유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 사토코와 마호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같은 단지에 살아서 친하게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사토코와 유리.

사토코는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유리의 집이나 밖에서 놀았지만,

그래도 둘은 늘 함께였다.


* 그러던 어느 날, 유리의 할아버지가 집을 방문 했을 때

사토코는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여자애는 할아버지랑 같이 자는 거지요?" 라고.

유리는 그때 그게 무슨 말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늦은 밤까지 할아버지는 유리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유리의 부모님은 남이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며

유리가 사토코와 더는 놀지 못하게 하겠다고 얘기했다.


* 부모님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유리는 좌절감에 빠졌다.

사토코가 무슨일을 당했는지는 몰랐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할아버지와 같이 자는 사토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사토코는 유리를 찾아와 묻는다.

자신이 할아버지랑 자는 것을 누구에게 얘기 한 적이 있느냐고.

없다는 대답과 함께 돌아온 사토코의 말은

저주와도 가까운 것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죽여버릴 거야.'


* 그 사이의 2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지만

유리는 비로소 그때, 자신이 알던 사토코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렇게 사토코와 멀어졌지만 전학을 오게 된

마호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 그날도 마호와 함께 집에서 놀다가 시간이 늦어버렸다.

유리는 여느 때처럼 마호를 집까지 데려다 주러 나섰다.

집 앞 공원에서 눈으로 마호를 배웅하고 있을 때,

수상한 차 한대가 마호에게 따라 붙었다.

밴에서 내린 남자는 마호를 납치하려고 했다.

그때, 유리는 자신이 어린시절 지키지 못했던 사토코와

현재의 마호가 겹쳐 무엇이든 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


* 그래서 남자가 들고있던 식칼을 주워 돌진했다.

그렇게 유리는 마호를 지키고 도망쳤다.

다음 날 바로 잡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사토코가 사람을 죽여 잡혀갔다는 소식이.

마호를 지키려 사람을 찌른 건 유리인데 왜.......?

어째서 범인이 유리에서 사토코가 된 건지,

유리는 그때도 알지 못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을 살아갈 뿐이었다.


* 소년원에서 나온 사토코는 유리에게 얘기한다.

'내 할아버지를 죽여줘. 유리, 너라면 할 수 있어.'

사토코가 자기 대신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어린 시절 사토코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남아있던 것일까.

유리는 사토코의 제안을 승낙하게 된다.


*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었어도 유리는 혼자였다.

우연히 사토코와 마호와 마주치는 일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연락처를 묻지도 않는 옛 친구.

그런 친구가 다시 유리를 찾아왔다.

가정폭력으로 힘드니, 남편을 죽여달라는 부탁과 함께.


* 책을 읽으면서 내내 사토코와 마호는

참 이기적인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배려는 없이, 자신의 상황에만 전전긍긍하며

서슴없이 절교라는 카드를 꺼내는.

어쩌면 이것도 이미 어른이 된 나의 시선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들은 늘 유리에게 '희생'을 강요한 느낌이었다.

중학생 때, 그 사건이 있은 이후부터 

둘은 한뼘도 자라지 않은 모습이어서 꽤나 실망했다.

그러면서도 책은 절대 놓을 수 없었다.


* 책을 펼치고 첫 문장, 첫 페이지를 읽으면

간혹 어떤 강렬한 예감이 들 때가 있다.

'아, 이 책은 덮을 때까지 못 자겠구나.' 하는.

이 책이 그랬다. 다시 찾아온 마호의 

숨겨진 진심과 함께 잠도 호다닥 달아나버렸다.

이 세 친구의 비극은 그저 외면하고,

남일로 치부하기 바빴던 어른들의 무심함이 아니었을까?

씁쓸하면서도 역시, 곤도 후미에는 대단해!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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