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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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여름비이야기 #기시유스케 #이선희 #비채 #협찬도서

* 비채 서포터즈 자격으로 받아본 책이다.
기시 유스케는 '검은 집', '악의 교전' 등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가을비 이야기'에 이은
'여름비 이야기'로 돌아왔다.

* 어린 시절 큰 사고를 당했던 나는
사실 '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수술 후 일반 병실로 옮겨진
날이 하필 장마철이라,
그 습함과 통증의 기억이 오래도록 몸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장마가 시작되면 여전히 잠을 이루기 어렵다.
이젠 그 통증 대신, 이 책이 떠오르길 바라며 책장을 펼쳤다.

*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모두 비와 함께 시작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인 '5월의 어둠'은
비와 함께 찾아온 옛 제자의 이야기였다.
퇴직한 교사 노부오가 옛 제자 나오의 부탁으로,
자살한 오빠의 하이쿠를 해석하면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그린다.

* 하이쿠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일본어 번역본만으로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시의 행간에서 전해지는
불길한 기운은 충분히 느껴졌다.
진정한 공포는 ‘진범’이 아니라,
망각(忘却)이었다.
잊어버림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는
인간의 심리가 어쩐지 오싹하게 다가왔다.

* 두 번째 이야기는 비 내리던 날,
‘카페 파피용 누아르’를 찾은
요시타케가 꾼 악몽으로부터 시작된다.
옛날부터 검은 나비는 죽은 자의
영혼이라고도 한다는데
꿈 속의 나비는 그저 쫓아가도
따라잡을 수 없을 뿐이었다.

* 이 검은 나비의 정체를 밝혀준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카페를 나서는 그의 앞에 천리안을 가진
고명한 행자인 닛사이가 나타나
검은 나비의 정체는 요시타케를
지옥으로 이끄는 것이라며 그에게
당분간 재계를 하라고 요구한다.

* 세 편의 이야기 중에 가장 몽환적이며
현실과 꿈의 경계에 상징성이 다분한 작품이었다.
여기에서도 ‘속죄’ 대신 ‘망각’이 자리한다.
자신의 죄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두고,
그저 현재의 안위를 지키려는
인간의 모습이 비극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다.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그 꿈속을
들여다보는 냉정한 마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 마지막 이야기는 장마가 시작된 어느 날,
집 안에 정체 모를 버섯이 창궐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버섯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단숨에 공포로 다가온다.
사진에는 찍히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며
오로지 눈에만 보이는 것.

* 버섯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꽃말이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이 아니었다면
평생을 몰랐을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지만 오히려 뒤로 갈수록
가장 신선했던 이야기였다.
가장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기도 했다.
이걸 이렇게 비틀었을 줄은 몰랐지.
다만 여기에도 앞의 두 이야기처럼
'망각'의 형태가 들어갔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 비와 함께 하이쿠, 검은 나비, 버섯이라는
소재를 통해 기시 유스케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죄의 기억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기담과 추리, 상징과 반전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기담집이었다.
다음엔 정말 낮에도 어두운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읽고 싶다.
그때는 두려움 대신,
묘한 위안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drviche
#잘읽었습니다

#여름비 #장마 #여우비 #하이쿠
#검은나비 #곤충 #오이란 #꿈
#버섯 #창궐 #꽃말 #메세지 #경고
#망각 #죄의식 #기억 #기담 #비채서포터즈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소설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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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가지 다쓰오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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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용신연못의작은시체 #가지다쓰오 #이연승 #블루홀6 #출판사 #도장깨기

* 예약 구매를 해놓고도 바쁜 나날에
표지만 쓰다듬었던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드디어 읽었다!!
블홀 책을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었던 적은 처음이다.
진심으로 눈 감았다 뜨면
11월 둘째 주였으면 좋겠다.

* 처음 표지를 봤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심장이 멎을 것만 같고,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일본 추리 소설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복선의 신', 그리고 '전설'이라 불리며
40년 만에 복간된 작품.
어느 정도길래 전설의 타이틀이 붙은 걸까?
그 궁금증 하나로 책을 펼쳤다.

* 간토 대학교에서 건축공학과
교수 나카조 도모이치.
그는 얼마전 홀어머니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오래 전, 위험 사상을 가진 인물로
낙인 찍혀 1940년 출옥 후 몇 달 만에 돌아가셨고
하나밖에 없던 동생도 전쟁 중
학동 소개 당시 익사 당했다.

* 죽음을 앞둔 어머니는
마디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네 동생은 살해당한 거야."
유언 같은 거창한 것도 아니었고
어쩌면 병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렸을 적 부모형제의 품을
떠나 세상을 등진 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해보기로 한다.

* 현재 실험중에 있는 연구도
동료 교수에게 잠시 부탁을 하고 향한 곳은
지바현의 외딴 산골 마을, 야마쿠라.
그곳에서 우연히 마을 의사인 하나시마의 권유로
그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 동생 슈지가 초대 받았던 오래된 명문가
'다에미 가'를 조사하는 한편,
동생이 목숨을 잃은 '용신 연못'에도 찾아간다.
마을에 머물며 당시 동생을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려 할 수록 누군가가 도모이치를
주시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 그러던 중, 하나시마의 집에 혼자 남게 된 도모이치는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한다.
두 시간 동안 의식을 잃고, 머리에 상처까지 입은 채
도쿄로 돌아가려던 일정도 어긋나버린다.
하나시마는 도모이치의 안정과 혹시 모를
후유증을 대비해 그를 계속 머물게 한다.

* 며칠 뒤, 마침내 귀가 허락이 떨어진 날.
떠날 준비를 하던 도모이치의 앞에
순경 아와타가 나타난다.
그를 데리고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용신 연못.
그곳에서 붉은 말뚝에 찔린
참혹한 시체가 떠올라 있었다.
게다가 주변 증거품들은 모두
도모이치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는 함정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 어머니의 임종 전 시작된 한마디로
시작된 조사는 어디가 끝인지도
모른 채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린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도모이치는 진행중인 연구를 끝까지 마칠 수 있을까?

* 세세한 트릭을 모두 맞추지는 못했지만
큰 틀과 시작이 된 사건은 쉽게 맞출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줄진 않았다.
복선이 하나씩 회수될 때마다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오히려 훨씬 강렬했다.
초판 출간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시간은 작품을 유치하게도, 진부하게도 만들지 못했다.
역시 전설은 전설이었다.

* 전쟁기 일본의 시대적 배경,
폐쇄적인 농촌 마을의 공기,
그 안에서 드러나는 권력과 계급,
그리고 1960년대 후반의 성 역할과 직업적 위계까지.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한 시대의 인간상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 평소 한 번 읽은 책은 재독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예외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읽으며
한 문장, 한 복선씩 곱씹고 싶다.
‘전설의 복선’이 왜 전설인지,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 출판사 도장깨기 56/91

#용신 #연못 #복선의신 #전설 #부활
#건축공학과 #교수 #본격 #미스터리
#습격 #함정 #재독 #확정
#빨리 #또내줘요 #일본문학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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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0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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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0권


* 어느새 토지 필사가 반환점을 돌고 있다.

두 번째 읽고 있는 토지는 전에 읽었을 때

보지 못한 다른 세심한 점을 더 잘 보게 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크나큰 흐름을 따라갔다면,

이번에는 그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평사리 주민들의 인간관계와 그에 따른

삶의 변화에 더 중점을 두려고 노력했다.


* 토지 10권은 조마조마함이 가득했다.

홍이의 혼인식날 비바람이 몰아쳤고

초례청에서 멀쩡했던 닭이 죽는 등

불길한 느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좀 정신을 차리나 싶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하아.....

반반한 얼굴에 어쩔 수 없는 마음은

영락없는 이가네 핏줄이던가...


* 그런가 하면, 훌쩍 커버린 환국이

서울로 공부를 하러 떠난다.

남편없이 아이들을 잘 키운 서희,

어미로서의 모정이 눈물겨웠다.

그나저나, 길상이는 대체 어디있는거지ㅜㅜ..


* 아마 10권이 조마조마하게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는

평사리를 급습한 왜헌병들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평사리 주민들은 옥고를 치루고

죽는 일이 있어도 타인의 입을 통해서

'아무개가 이랬다 카더라~'정도로 서술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뚜렷하게

그들이 급습을 당하는 장면부터

공포심, 불안감 등이 세세하게 서술되었다.

불안한 심리는 이와 더불어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의 학살,

박열의 이야기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더 고조되게 만들었다.


* 그 안에서 어지러이 방황하는 사람들과

사상의 대립 등 정치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여자 하나를 두고 소심하고 치졸하게 구는

사람 냄새 나는 모습도 보였다.

여성들은 또 그 나름대로 '신여성'이라는

타이틀과 자존심, 전통의 굴레에 대한

눈초리 등 그들 나름대로의 환난을 보여주었다.


* 11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부디 길상이의 소식도 들었으면 좋겠고,

평사리 주민들이 무탈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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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 푸른사상 소설선 72
이수현 지음 / 푸른사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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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비늘 #이수현 #푸른사상 #협찬도서

*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
‘채손독’을 통해 받아본 책이다.
비늘은 어류나 파충류, 조류 등
대부분의 척추동물에게서 보이는
피부 조직의 한 단위다.
생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 그런데 이 책은 말한다.
“비늘은 상처가 아니라, 살아냈다는 증거다.”
그 한 문장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나를 지키는 보호막이라 여겼던 비늘이,
사실은 내가 살아낸 흔적이라니.
책 속의 인물들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기에 이런 흔적을 남긴 걸까?

* 이혼 전문 변호사 강도희는
늘 누군가의 ‘끝’을 다룬다.
오늘도 의뢰인과 그의 아이,
그리고 그들을 버린 상대 배우자를 마주했다.
칼날처럼 벼려진 말들 사이에서
‘아빠’라는 존재에 상처 입은 아이를 보며,
도희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 남들은 교육감의 딸로 부유하게
자랐다고 생각하지만,
그녀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그로 인해 지금은 감정무표정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일까, 도희는 누구보다 의뢰인과
그 자녀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한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 우연히 후배 지연과 함께 간 아쿠아리움.
그곳에서 도희는 수많은 인면어 중
유난히 눈부신 황금빛 인면어를 마주한다.
그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손을 수조 안으로 뻗고,
그 날 이후, 도희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 의뢰인의 눈을 마주치자 그 속에
‘눈 부처’가 보이고,
그들의 과거가 영상처럼 펼쳐진다.
그 환상 같은 장면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도희는 상처로 덮인 의뢰인들의 비늘을 벗겨줄수록,
자신의 비늘 또한 벗겨지고 있음을 느낀다.

*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도희의 삶을 다시 공포로 물들게 하는 남자
그녀의 아버지, 강경남.
겉으로는 존경받는 교육자였지만,
집 안에서는 폭력과 공포의 화신이었다.
그는 뻔뻔하게 찾아와 돈 오천만 원을
요구하며 협박한다.
“못다 한 효도를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네 어머니와 남편,
시부모에게 모두 찾아가겠다.”
그의 목소리 하나에도, 숨소리 하나에도
도희는 몸이 굳고 숨이 막힌다.
그녀는 과연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자신의 비늘을 벗겨내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세상에 이런 부모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팠다.
태어나 가장 보호받아야 할 존재에게서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그 상처의 깊이는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는 모습은
잔잔한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 도희의 아버지, 의뢰인들의 아버지, 그리고 명우의 아버지.
서로 다른 아버지들의 모습이 대비되며,
‘진짜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그 대조 속에서 울컥했고,
한편으로는 내 아빠가 그런 사람이 아님에 안도했다.

*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른다.
상처를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상처를 이겨내는 법을 모른다.
삶은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흘러간다.
중요한 건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아닐까?

* 내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니가 뭔데?”
나를 무시하거나, 상처 주려는 사람을 마주할 때
속으로 이렇게 되뇌면 조금은 단단해진다.

* 앞으로도 내 삶에는 여러 겹의 비늘이 생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새로운 비늘을 얹어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내 몫의 비늘을 조금씩 벗겨내고,
타인의 비늘을 조심스레 떼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의 삶을 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도 구해가는 이야기.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chae_seongmo
@dltngus1515
#잘읽었습니다

#배드파파 #변호사 #가정폭력 #위자료
#위자료청구 #소송 #황금빛 #인면어
#눈부처 #과거 #위로 #흔적 #가능성
#치유 #힐링소설 #힐링소설추천
#한국문학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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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작가
알렉산드라 앤드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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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소설 #익명작가 #알렉산드라앤드루스 #이영아 #인플루엔셜

* '당신의 소설을 훔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궁금했던 책이었다.
익명 작가라는 제목도,
누가, 왜, 어떻게 소설을 훔치는지도
온통 궁금한 것들 투성이라서
너무 기대했던 책이었다.

* 플로리다 출신의 플로렌스.
그녀는 뉴욕의 출판사에서 편집 보조 일을 하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글은 단 한 줄, 아니
한 단어도 쓸 수 없었지만 어쨋든
그녀의 꿈은 소설가였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었다.

* 포레스터북스 출판사의 출간기념 파티가 있던 날,
그녀는 편집자이자 그녀의 상사의 상사인
사이먼과 하룻밤을 보냈다.
그 일이 그녀를 더 상류 사회로 올려주길 바랬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의 가족들을 주시했고,
그의 아내에게 사로잡혔을 뿐.

* 그녀의 상사인 어맨다의 소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플로렌스는
자신이 썼던 단편 소설들을 그러모아
사이먼을 찾아갔다.
결과는 대 실패. 사이먼은 그녀의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그동안 찍었던 사이먼 가족의 사진들을
그에게 보낸 그 날, 플로렌스는 해고 되었다.

*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깨부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글을 모든 출판사에 보냈다.
그 중 하나는 연락이 오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정말 그 중 하나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출간 소식이 아닌,
모드 딕슨이라는 한 익명 작가의 보조로
일할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 본명과 나이는 물론이고 성별조차 나오지 않은
그 작가의 보조라니!
그녀는 비밀 유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그렇게 모드 딕슨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외딴 곳에 있는 집, 그 속에 속해 있는 별채에 머무르면서
플로렌스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부터
뭐든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가장 가까이에서, 제일 먼저 출간 예정인 글을 읽고
그 모든 것을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작가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꽤나 힘들었고,
가끔 겁을 먹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런대로
잘 해나가고 있었다.
자신을 옭아매는 엄마와의 연락을 끊고
천재 작가의 성공 비결을 훔친다면
그녀도 밑바닥이 아닌 그토록 원하던
상류층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돈 걱정하지 않으면서 즐길 수 있는 여유와
그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게
작가의 모든 것을 닮고자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차기작을 위해
모로코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곳에 플로렌스가 같이 가줬으면 해서
둘은 모로코로 떠나게 된다.
조사보다는 여행에 더 가까운 일정이었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다시 없을 기회를 붙잡게 된다.
자신이, 모드 딕슨이 될 수 있는 기회를.

* 처음에 책을 펼칠 때는 꽤나 흥미로웠다.
작은 도시에서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았던 여자가
뉴욕이라는 대도시로 나왔을 때의 그 상실감.
자신은 최고가 아닌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좌절감 등이 글에 매우 잘 묻어나왔다.
그래서 나는 플로렌스가 매우 불안했다.
똑똑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였다.
그녀는 단 한순간의 충동으로 인해 직장도,
자신의 꿈도 잃을 뻔 했으니
이렇게 생각한 것도 과언은 아니었다.

* 그녀의 불안이 증폭되고 안정감을 추구할 수록
나는 그녀가 더 불안했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몰랐고 그녀의 엄마보다는
세상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녀가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모로코에서 사고가 있던 그 날,
그 날 이후로 나는 책의 뒷내용을 모두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 예상이 하나도 빠짐없이
맞게 되자 호기심이 푹 식어버렸다.

* 어쩌면 작가는 나도 플로렌스와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성공한 듯 하다.
내가 플로렌스였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겠지만.
차라리 정말 그녀가 글에 미쳐있는 여자였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공감과 동정은 했을텐데.

*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책이 무미건조하게 끝나버려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와
내 뒷통수를 갈겨주길 얼마나 바랬던가.
플롯은 좋았지만 너무 뻔한 내용의 책이었다.

#소설가 #작가보조 #터닝포인트
#기회 #작가 #작가지망생 #범죄
#잘못된 #선택 #예상가능 #용두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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