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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스
곤도 후미에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2월
평점 :

* 북플라자에서 받아본 책이다.
'세 명의 소녀를 연결하는 세 건의 살인사건!'
이라는 강렬한 띠지의 문구.
특히 '캐리어의 절반을'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던지라 같은 작가님의
전혀 다른 색을 맛보고 싶어서 신청했었다.
* 한 소설가에게 온 의문의 편지 한 통.
세 친구를 둘러싼 관계에 관심을 가질 거라는 말에
소설가는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모두 소설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가늠할 뿐이다.
* 그렇게 만난 유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 사토코와 마호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같은 단지에 살아서 친하게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사토코와 유리.
사토코는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유리의 집이나 밖에서 놀았지만,
그래도 둘은 늘 함께였다.
* 그러던 어느 날, 유리의 할아버지가 집을 방문 했을 때
사토코는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여자애는 할아버지랑 같이 자는 거지요?" 라고.
유리는 그때 그게 무슨 말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늦은 밤까지 할아버지는 유리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유리의 부모님은 남이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며
유리가 사토코와 더는 놀지 못하게 하겠다고 얘기했다.
* 부모님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유리는 좌절감에 빠졌다.
사토코가 무슨일을 당했는지는 몰랐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할아버지와 같이 자는 사토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사토코는 유리를 찾아와 묻는다.
자신이 할아버지랑 자는 것을 누구에게 얘기 한 적이 있느냐고.
없다는 대답과 함께 돌아온 사토코의 말은
저주와도 가까운 것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죽여버릴 거야.'
* 그 사이의 2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지만
유리는 비로소 그때, 자신이 알던 사토코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렇게 사토코와 멀어졌지만 전학을 오게 된
마호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 그날도 마호와 함께 집에서 놀다가 시간이 늦어버렸다.
유리는 여느 때처럼 마호를 집까지 데려다 주러 나섰다.
집 앞 공원에서 눈으로 마호를 배웅하고 있을 때,
수상한 차 한대가 마호에게 따라 붙었다.
밴에서 내린 남자는 마호를 납치하려고 했다.
그때, 유리는 자신이 어린시절 지키지 못했던 사토코와
현재의 마호가 겹쳐 무엇이든 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
* 그래서 남자가 들고있던 식칼을 주워 돌진했다.
그렇게 유리는 마호를 지키고 도망쳤다.
다음 날 바로 잡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사토코가 사람을 죽여 잡혀갔다는 소식이.
마호를 지키려 사람을 찌른 건 유리인데 왜.......?
어째서 범인이 유리에서 사토코가 된 건지,
유리는 그때도 알지 못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을 살아갈 뿐이었다.
* 소년원에서 나온 사토코는 유리에게 얘기한다.
'내 할아버지를 죽여줘. 유리, 너라면 할 수 있어.'
사토코가 자기 대신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어린 시절 사토코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남아있던 것일까.
유리는 사토코의 제안을 승낙하게 된다.
*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었어도 유리는 혼자였다.
우연히 사토코와 마호와 마주치는 일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연락처를 묻지도 않는 옛 친구.
그런 친구가 다시 유리를 찾아왔다.
가정폭력으로 힘드니, 남편을 죽여달라는 부탁과 함께.
* 책을 읽으면서 내내 사토코와 마호는
참 이기적인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배려는 없이, 자신의 상황에만 전전긍긍하며
서슴없이 절교라는 카드를 꺼내는.
어쩌면 이것도 이미 어른이 된 나의 시선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들은 늘 유리에게 '희생'을 강요한 느낌이었다.
중학생 때, 그 사건이 있은 이후부터
둘은 한뼘도 자라지 않은 모습이어서 꽤나 실망했다.
그러면서도 책은 절대 놓을 수 없었다.
* 책을 펼치고 첫 문장, 첫 페이지를 읽으면
간혹 어떤 강렬한 예감이 들 때가 있다.
'아, 이 책은 덮을 때까지 못 자겠구나.' 하는.
이 책이 그랬다. 다시 찾아온 마호의
숨겨진 진심과 함께 잠도 호다닥 달아나버렸다.
이 세 친구의 비극은 그저 외면하고,
남일로 치부하기 바빴던 어른들의 무심함이 아니었을까?
씁쓸하면서도 역시, 곤도 후미에는 대단해!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