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거두는 시간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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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채 서포터즈 2기 자격으로 받아본 책이다.
1년 동안의 서포터즈가 길게만 느껴졌는데
벌써 마지막 책이라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이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제목이 매우 쓸쓸하게 느껴졌다.
어떤 그물을 쳐 놓았길래~
거두는 시간이 필요한 걸까, 생각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 아이 없이 남편과 이혼하고
대필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윤지.
그녀는 엄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자 이모를 두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오선임,
엄마는 경상도 억양 때문에 스님이라고 부르는,
외가에서 내쳐지다시피 한 존재.

* 그 이모가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모는 수연의 앞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음 속 깊이 감춰왔던 일을 꺼내 보인다.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자로 살아가야만 했던 이유,
자식과 남편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그 속사정을
윤지에게 가감없이 토해낸다.

* 한편 윤지는 이모의 자서전 의뢰와 더불어
한 유품정리사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의 이름은 민혁.
민혁은 자신 어머니의 의뢰로 윤지를 찾았다고 얘기하며
오래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한 고등학교
동창 수진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 윤지의 기억 속에는 늘 선재만 가득했다.
졸업 앨범 속 잘려진 수진의 사진처럼
윤지의 기억 속에서도 그 아이만 싹둑 잘려나간 느낌이었다.
그렇게 윤지는 잊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
자신이 던지 그물이 훗날 어떻게 돌아올지도 모르고
새카맣게 잊고 지내며, 자신은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위안했다.

* 이모 선임의 이야기가 깊어져 갈수록
윤지와 선재, 수진에 대한 이야기도 깊어져갔다.
윤지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조금 놀라웠다. 아니, 소름 끼쳤다.
적어도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편히 못잔다는데,
윤지는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걸까.
가족들에게 제대로 소리 한 번 치지 못하는 선임이 답답했고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며 자신을 방어하려한 윤지가 짜증났다.
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 내게 동성애에 대해 찬반을 묻는다면,
나는 찬성을 지지하는 쪽이다.
전염병도 아니고, 사회의 악도 아닌데
내가 뭐라고 그들의 사랑을 막겠는가.
그저 나와는 조금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취향 차이'로 가볍게 생각했던 이 감정이
그들과 그들 가족에게는 어떤 어려움이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시대만 다르게 성장하며, 쏙 빼닮은 두 여인의 이야기는
세상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사랑'이라는 감정과 '가족'이라는 형태에 대해,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전유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기억과 망각이라는 것은 신의 선물일까, 신의 장난일까?
고요하고 잔잔하게 느껴지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폭풍이 될 수도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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