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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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뿐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잖아요.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또 잊으려고 하잖아요.

 

모두 똑같다고요. 저뿐이 아니에요. 자신이 한 일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은 없어요. 어디에도 없다고요.

실패를 모두 후회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전부 돌이키려고 하고, 그러면서 살아요. 그래서 모두 이야기를 만드는 거예요.

어제는 이런 걸 했다, 오늘은 이런 걸 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보고 싶지 않은 건 보지 않도록 하고, 보고 싶은 건 확실하게 기억하면서요.

모두 그렇다고요. 저는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은 걸 한 것뿐이에요. 저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요." <p.436>

 

 

2009년 11월에 구입해놓고(이때만해도 책읽는양이 상당해서 책 구입할때마다 사진을 찍어놨던 터라 구입한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이제서야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달과게, 술래의 발소리, 섀도우,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등등의 책들을 재미나게 읽기도 했고 출간 당시 워낙 입소문이 자자했던 책인지라 꼭 읽어야지 하고 구입한 것 같은데 이제서야 읽어보다니~  사실 이런책이 한두권이 아닌지라 놀랍지도 않다 ;;;

 

초등학교 4학년 미치오, 부모님과 여동생 미카와 함께 사는 그의 마을에서 언제부턴가 개와 고양이를 살해된 것도 부족해 입에 비누를 쑤셔넣고 다리를 부러뜨린 엽기적인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얼마전 여덟 구째가 발견된 상태. 여름 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미치오는 담임인 이와무라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결석한 같은 반 친구 S에게 숙제와 유인물을 전해주러 그의 집을 찾아갔다 목을 매고 죽은 S의 시체를 보게 된다. 깜짝 놀라 학교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리지만 그사이 시신은 사라지고 없는데 . .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왕따, 동물 살해, 시체 유기, 미소년에 대한 집착, 환생 등 평범하지 않은 소재들로 이런 이야기를 그려내다니 ~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2009년에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었다면 굉장히 쇼킹한 내용이었을텐데 그 사이 워낙 다양한 류의 범죄를 그린 책과 영화를 많이 본터라 이정도는 뭐~ 하고 넘어가게 되더라는!!

'환생'이라는 테마로 그로데스크한 세계를 그렸지만 주인공이 9살 소년이다보니 저절로 수위 조절이 됐달까. 그리 충격적이지도 않았던 듯 ~

어머니가 미치오를 미워하고 미카를 편애하는 모습, 횡포를 부리는 어머니에 비해 무력한 아버지의 모습에 말못할 크나큰 사건이 있을거라 상상했는데 그것도 아니고 ;;

생각외로 빨리 읽었고, 생각외로 놀랍거나 충격적이지 않은 결말에 에이 ~ 했던 내 모습에 더 놀랐다는 사실. 호불호로 나뉠만 한 것 같다.

 

정말 무섭고 오래도록 기억이 남았던 것은 미치오가 S에 집에 들고갔던 숙제와 유인물 속에 들어있던 S가 작성한 작문이 아닐까싶다 !!!

 

리뷰쓰다 이런저런 검색을 통해 2011년 8월 신작으로 <까마귀와 엄지>라는 소설이 나온걸 확인했는데 얼른 이것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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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 당신이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김원 글.사진.그림 / 링거스그룹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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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는 월간 PAPER 백발두령 김원의 첫 작품집으로 사진과 캘리그래피 그리고, 영혼을 위로하는 79통의 편지로 꾸며져 있다.

책속에 담긴 글들은 지난 15년 동안 PAPER를 만들어오면서 매달 한 통씩 <이달에 쓰는 편지>라는 독자들에게 적어 보냈던 편지들로,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느낌과 생각들이 잘 담겨 있는 글들을 간추려 낸 것이라고 한다.

페이퍼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의 사진과 글을 만날 수 있어 좋긴 하지만 여전히 PAPER안에 묶인 이야기라 살짝 아쉽기도 하다는 ~

그만큼 그의 인생에 PAPER가 중요한 자릴 차지하고 있단 뜻이겠지. 오랫동안 한가지에 푸욱 빠져 즐기면서 할 수 있었던 그의 삶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침 창가에 내려앉는 햇살을 바라보다가, 문득

식탁에 앉아 갓 구워낸 식빵에 버터를 바르다가, 문득

뜨겁게 끓여낸 커피 향을 가슴 깊숙이 들이마시며, 문득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바라보다가, 문득

 

반가운 치구가 보내온 편지를 열어보다가, 문득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문득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가 말고, 문득

 

오랜만에 사무실에 놀러온 병준이와 건배를 하다가, 문득

건호는 잘 지내고 있는지 생각하다가, 문득

충걸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창완이 형한테 술 얻어먹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봉팔네 스튜디오에서 인권이 형이랑 영애 누이의 노래들을 듣다가, 문득

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들어야지 생각하다가, 문득

비디오 가게에 아직도 붙어 있는 <아멜리에> 포스터를 바라보다가, 문득

하루 일을 마치고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잔을 들어 올리다가, 문득

 

아아, 행복하다 . . .라고 조그맣게 소리 내어 말해본다.

행복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정말 그렇게 문득문득 <P.21>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어느정도 의무감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사진 찍는 것도 책읽는 것도 여행다니는 것도 ~

난 이런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 하면서 보여주듯 꼬박꼬박 계획하에 즐겼던 ~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지 괴롭고 힘들었다, 후회된다 말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결혼 후 그때와 다르게 마냥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지금,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렇게 해냈던 내가 마냥 신기한 것도 사실.

요즘은 조금은 시들하게, 무심하게, 맘 내키는 대로 흘러가는대로 사진찍기와 책읽기를 즐기고 있다. (여행 ? 그것만은 정말 내맘대로 안되는 듯 ㅠ)

그래서 니가 그럴줄은 몰랐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함을 배워나가는 시간.

 

<정말 그렇게 문득문득>을 읽으며 그래도 참 많은 것을 갖았구나 싶어 아~ 행복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시간 !!

괜히 감상에 빠져 주절주절 해봤다 ㅎㅎ

  

 

한꺼번에 휘리릭 읽고 말 글들이 아니기에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매일매일 한편 한편 읽었다.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재미난 사연도 있었고 (인도의 고대 유물 두 점을, 손에 넣다 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제도 있었는데 (술이 반 병쯤 남아 있는 풍경)

 

책 제목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란 글귀만큼 많은 여운을 주는 글귀도 없는 듯 ~





PAPER에 관련된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 오늘같은 날은 하루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참 좋은 글과 사진, 캘리그래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 . . 황경신님의 글과 밤삼킨별님의 글과 사진, 캘리그래피가 더 맘에 와닿는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니 서운해하지 않으셨음 좋겠다~

 

빠른시간내 PAPER를 제외한 글과 사진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 좋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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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 손미나의 로드 무비 fiction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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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네에겐 젊음, 열정, 미래가 다 있잖아. 용기를 내보게. 막상 걸음을 떼고 나면 두려울 것이 없는 게 인생이더군.

사랑 . . . 참 흔한 것 같지만 정말 소중한 감정은 평생 한 번 느낄까 말까 한 거지. 그런 거라면 놓치지 말게. 무슨 말인지 알지 ?" <p.185>

 

 

집안 형편때문에 오랜 꿈을 포기하게 된 장미는 선배의 제안으로 대필 작가 일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책을 내면서 자신의 작품도 준비해보자 시작한 일이지만 벌써 7년째 같은 자리.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이라며 K그룹 최성렬 회장의 딸이면서 그림을 그리는 여자로 더 유명한 최정희의 자서전을 대필해주면 장미의 책을 출판하게 해주겠다 약속하는 선배. 그 말만 믿고 최정희 이자 레아, 그리고 그의 여덟살 연하의 프랑스 연인 테오에 관한 부족한 자료를 찾으러 프랑스로 떠난 장미는 트랑 블루에서 최정희가 가장 좋아했다는 디저트 '프로피트롤'을 먹고 나오는길에 제약회사가 빈민국 아이들을 상대로 임상실험한 사실에 관한 비밀이 담긴 로베르의 가방과 자신의 가방이 뒤바뀐 사실을 알고 절망하게 된다. 가방속 서류로 겨우겨우 가방 주인 로베르를 찾기는 했지만 그에게 그녀의 가방은 없고 2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대책없는 얘기만 듣게 되는데 ~

그녀는 과연 가방을 찾아 최정희의 이야기는 물론 자신의 이름으로 낸 책도 출판할 수 있을까 ?

 

한국 여성이며 고스트라이터인 장미와 프랑스 남성이며 연극 배우인 테오의 이야기가 한 편씩 교차되며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장미와 로베르, 테오와 최정희의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름다움을 갖은 남자가 지적이고 총명한데다 자기만의 뚜렷한 가치관을 지니고 좌중을 압도하는 말솜씨와 유머감각까지 갖춘 '테오'와 뒤바뀐 가방 사건으로 처음 만난 장미에게 한없이 친절하기만 한 '로베르'.  파리에선 누구나 사랑을 하고, 프로방스에선 누구나 꽃을 받는다더니 사랑이 가득한 곳 '파리'라 그런가 ? 그녀의 이야기속엔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만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나 나올법한 소재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하지만 첫 소설치고 이야기의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절로 빠져들게 되더라는~

대리만족이랄까 ? 마음속 한곳에서 항상 이런 운명적인 사랑을 꿈꿔온터라 그런지 거부감이 없더라는 ㅎㅎ

두 쌍의 남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지다보면 연애소설, 연극과 미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에 집중하면 예술 소설, 프랑스 파리와 영국의 런던 등의 아름다운 장소에 집중하다보면 여행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는지에 관한 미스터리한 부분은 추리 소설이기도 한 이 소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다보니 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

초반 장미와 로베르, 테오와 레아의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에 글자와 글자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것 같아 마음이 스산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따뜻해져오는게 절로 다행히다 싶은 ~ 역시 로맨스 소설은 해피엔딩이 최고지 싶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악마가 있소.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할 수가 없지.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자기가 이번 생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허상만 좇게 된다니까.

어떤 일에 확신이 있을 때는 아가씨 마음속에 악마가 들어서게 하지 마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해낼 수가 없소.

아가씨는 용감하니까 아마도 잘 해낼 것이오. 아, 그 악마의 이름은 '두려움'이라오. 그럼 행운을 빌겠소. 언제나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 . ."

 

스페인 너는 자유다, 태양의 여행자 이후 간만에 읽은 손미나 작가의 책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2년 전, 일본과 아르헨티나를 잇는 세 번째 여행 에세이를 쓰기 위해 프랑스에 갔다가 본능적으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지금 한 단계 뛰어넘지 못하면 계속 에세이를 써나갈 때 나라가 아무리 바뀌어도 똑같은 글밖에 못쓸 것 같았다고 ~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후 첫 문장을 쓰기까지 꼬박 1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가 짐작이 된다. 두려움이라는 악마를 잘 견뎌낸 그녀이기에 다음 작품도 넘 기대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다 조만간 프랑스 여행 에세이도 나올거라는 글을 읽었는데 이 소설에 나온 장소들에 대한 더 자세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된다.

 

 

여행기가 아닌 소설이라는 의외성이 더해져 이 책이 더 읽고 싶었는데 어느날 거짓말처럼 내 손에 들려지게 된!!

누군지 모르겠지만 읽고픈 책 딱 맞춰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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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파더
이사카 고타로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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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맞는 말이다. 그건 이 경기장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냐. 사회 전체가 그런 거야.

보기엔 다정하고 평화롭고 모두가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승부와 불평등이 횡행하는 위험스러운 도박장이나 다름없어. <p.116>

 

 

마리아비틀에 이어 순식간에 읽어버린 이사카 코타로의 신작 <오! 파더>

병원에 누워있는 아들 와타루의 복수를 위해 신칸센을 타게 된 기무라를 비롯 수많은 킬러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내용인지라 어딘가 모르게 묵직하고 서슬퍼랬던 마리아비틀과 다르게 오! 파더는 어이없을 정도로 명랑 상쾌한 내용이라 나도 모르게 실실 웃으며 읽고 있는걸 발견하곤 했다. 친구로 인해 크나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 유키오지만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네 명의 아버지 때문에 이야기는 한없이 통통 튀는데 그게 그리 기분 나쁘지가 않더라. 오히려 머리 식히기에 좋았다고나 할까 ~

 

고등학교 2학년 유키오는 화려한 연애 경력의 어머니 덕에 네 명의 아버지들과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도박과 자신의 직감을 믿으며 살아가는 타카, 잘생기고 여자 밝히는 아오이, 항상 책을 끼고 사는 대학교수 사토루, 그리고 격투기 마니아인 몸짱 중학교 교사 이사오.>

이런 어마어마한 네 명의 남자를 거느리다니~ 어떤 매력의 여자이길래 ? 나도 여자이기에 이 부분이 제일 궁금했는데 잦은 야근과 출장으로 존재감 없는 어머니 ㅠ-ㅠ

하지만 유키오의 질문에 아버지들이 들려주는 자잘한 이야기속에 잠깐잠깐 등장하는 어머니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화려한 연애경력을 갖고 있다곤 하지만 어찌 네명의 남자와 살게 됐을까 궁금했는데 책 읽기 시작한 후 얼마 안되 궁금증이 풀렸다.

'애인이 나 말고 더 있느냐고 물어본 적 없잖아?'라며 네다리 연애 발각 당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빵 ~ 터졌다는!!

유키오가 태어난다는 발표를 계기로 네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됐고, 사랑하기에 함께 살기로 결정했으니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을 것 같다.)

 

허리 높이의 사이드보드에는 어머니 토모요가 좋아하는 액세서리와 인형, 고급스러워 보이는 손목시계, 작은 그림 등이 놓여 있다. 가로로 긴 사진틀도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어머니 양옆으로 아버지들이 둘씩 섰다. 사려 깊고 침착한 사토루 옆에 키가 크고 눈썹이 돋보이는 아오이, 그리고 만면에 웃음을 짓고 쌍꺼풀 진 눈을 크게 뜬 어머니, 머리를 뒤로 벗어 넘기고 쑥스러워 얼굴을 일그러뜨린 타카, 가슴을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이사오, 전원이 있다.

어머니 뱃속에는 나도 있는 거지. 유키오는 사진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p.95>

 

평범한 듯 특이한 네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에 농구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여자에게 인기도 좋은 '유키오'

정작 자신은 그런 사실에 별 관심이 없는데 친구 타에코에게 휘둘려 학교에 나오지 않는 '코미야마'를 설득하러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중학교 친구 '마스지'로 인해 우엉남자들에게 쫓기지를 않나, 타카를 따라 도그 레이스에 갔다가 톤다바야시를 만나고 그가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변호사의 가죽 가방이 바꿔치기되는 상황을 목격하기도 하는 등 자잘한 사건이 끊이질 않고 일어난다.

지사 선거 운동, 런어웨이 프리즈너라는 어릴 적 봤던 드라마 속 죄수 탈옥장면, 도그 레이스 경기장에서 일어난 수상쩍은 가방 바꿔치기, 우엉 남자들의 시비, 휴대전화 대신 수기를 배우게 된 과정, 침에 침입한 빈집털이, 등교 거부중인 코미야마, 타에코에게 다시 사귀자고 매달리는 쿠마모토 선배 등 당췌 어울리지 않는 사건들이 모이고 모여 빵 터질때의 감격이랄까 전율이랄까 ~ 크고 작은 일들 사이사이에 평범하지만 아기자기한 생활 에피소드를 끼워넣어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어물쩡 넘어가다 막판에 한방 크게 터트려주는 이사카 코타로만의 이야기 진행 스타일에 그럼 그렇지~ 콧노래가 나온다.

 

아들의 위기에 모성애보다 강한 부성애를 발휘, 팀워크를 자랑하며 아들 구출 작전에 나서는 네 아버지. 다소 엉뚱(?)하긴 하지만 돈독한 가족애를 보여주니 이건 확실히 가족소설!!

그래서일까 ~ 한명도 아닌 네 명의 아버지로부터 각기 다른 교육을 받으며 성실하게 자란 유키오가 어떤 훌륭한 남자가 될지 마냥 궁금해진다는 ~

아직 부모가 아니기에 훌륭한 부모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식이 힘들어할때 도움을 주고, 이 넓은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 없이 든든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ㅎㅎ

 

사람이 생활하는 데 있어 노력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답이나 정답을 몰라서 번민하여 사는 게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해법과 해답이 반드시 있는 시험 문제는 귀중한 존재다. 답을 누가 가르쳐 주다니, 그런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러니 최대한 즐거운 마음으로 시험에 임해야 한다. <p.98>

 

학창 시절엔 그렇게 어른이 되고 팠는데 지금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

그 시절이 얼마나 좋은 때인지를 당사자들은 모를거라 생각하니 한없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시험 문제보다 답이 없는 인생 문제가 얼마나 자신을 힘들고 무기력하게 만들지는 진짜 '어른'이 된 다음에 알게 되겠지. 다들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을 맘껏 즐겼으면 좋겠다. 나 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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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3
츠쯔졘 지음, 김윤진 옮김 / 들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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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원커의 여인이다. 우리 부족 마지막 추장의 여인이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어미니의이름은 다마라, 아버지는 린커다.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 아버지는 흑곰 한 마리를 잡았다. 나무 굴에 웅크리고 겨울잠을 자고 있던 곰을 찾아낸 아버지는 좋은 웅담을 얻을 심산으로 자작나무 가지를 들쑤셨다. 슬슬 약이 오른 곰이 격노하자 그제서야 아버지는 사냥총을 쏘았다. 곰이 화를 내면 담즙 분비가 왕성해져 두둑하게 부풀어 오른 쓸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일진이 괜찮았다. 윤이 좌르르 흐르는 두둑한 웅담 하나와 나를 한 쾌에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p.15>

 

표지가 넘 맘에 들어 읽게 된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특이한 제목도 한 몫 했다. 무슨 뜻일까 굉장히 궁금하더라는 ~

중국문학을 크게 즐겨 읽지는 않지만 19세기 중국 후난성을 배경으로 여자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온 비밀의 문자 '누슈'를 통해 평생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두 여인의 삶과 사랑을 신비롭고 아름답게 그려낸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 '숲 속 여인'의 놀라운 100년 삶을 증언한다는 글귀에 반해 집어든 이 책. 설화와 비밀의 부채와 비슷해 비교해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아 냉큼 집어 들게 되었는데 순전히 상상으로 쓴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다양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 다싱안링에서 태어나 열일곱이 될때까지 살기도 했고 2005년, 어원커 족의 발자취를 좇아 탐방을 마치고 이들 부족의 100년사를 조망한 작품인지라 사실적이라 맘에 든다.
루쉰문학상, 빙신(氷心)산문상, 좡중원(壯重文)문학상 등 권위있는 문학상을 두루 수상함은 물론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루쉰문학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운 작가의 작품이라니 ~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운명이 아닐런지 !!

 

밤에도 달과 별을 볼 수 있는 시렁주에 살며 고기를 먹고 사냥을 하며 불씨와 순록을 귀히 여기는 어원커 부족. 다람쥐가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버섯을 보고 다가올 겨울 날씨를 미리 점치는 그들. 눈밭의 발자취를 찾지 못하면 나뭇가지 위에 매달린 버섯을 찾으며 친칠라 사냥을 하고, 소금 함정을 이용해 사슴을 잡으며 자연을 벗삼아 삶을 꾸려나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한동안 내가 즐겨봤던 다큐멘타리 한편를 떠올리게 했다. 툰드라에서 살고있는 지구상의 마지막 순록 유목민인 네네츠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최후의 툰두라>로 그들 역시 자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자신들의 친구이자 먹이 그리고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주는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부족인지라 이들의 모습이 그들과 많이 닮아있어 익숙하면서 친근했는데 다큐를 소설로 옮겨놓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자연에서 얻은 것들을 이용해 유지해온 그들의 삶. 하지만 가스를 얻기 위해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술과 마약에 노출된 네네츠 족의 모습은 굉장히 충격적 이었는데 어원커족 역시 부차별한 벌목으로 인한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현대 문명의 투입으로 부족의 일원이 산을 버리고 마을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그 모든 것도 사랑하는 여인을 뒤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니두 무당과 다른이의 생명은 물론 죄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사랑스러운 아이의 목숨을 신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던 니하오의 운명과 견주지는 못하리라.

가장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물건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쉽게 손에서 떠나는 법이라는 말.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는걸까 ~

 

어얼구나 강은 헤이룽 성 서남쪽 변경에 위치하며, 오늘날 내몽고 자치구 동북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가르는 강이다.

1689년 7월 24일 청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맺어진 '네르친스크조약'으로 인해 어얼구나 강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게 되고 그 명칭도 둘로 갈라지게 되는데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에서 사는 어원커족, 마지막 추장의 여인이었던 아흔살인 '나'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새벽 - 정오 - 황혼으로 이어지는데 아흔해의 삶, 그것은 그녀의 삶이자 곧 소수민족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되어 장엄하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진행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들이 또다른 가정을 꾸리면서 쭈욱 이어져온 그들의 삶.

그 속에는 자연을 벗삼아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순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운명같은 사랑이야기도 있고, 소박한 즐거움이 있으며, 자신의 자식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다른 이의 목숨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이의 사무친 모정도 담겨 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이름을 남겨놓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바램에 린커, 다마라, 니두 무당, 라지다, 와뤄쟈, 니하오 등등과 다르게 그녀를 기억해낼 수 있는 이름 하나 없는 것이 못내 서운하지만 해와 달, 바람, 순록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도 나는 가만히 그녀를 떠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는 라지다를 좋아했지. 그런데 라지다는 지금 어디있지? 이완은 나제스카를 좋아했어. 그런데 나제스카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지 않았니?

린커와 네 큰아버지 니두 무당은 네 아마였던 다마라를 좋아해서 겵를 벌이게 됐어. 진더는 니하오를 좋아했지만, 니하오는 루니한테 시집가지 않았니?

난 깨달았어. 사랑하는 건 반드시 잃게 된다는 사실을. 오히려 사랑하지 않은 것이 오래도록 함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이푸린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가슴속 깊이상처를 간직한 여인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 설파하고 있었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사랑했다면 찰나의 행복이 떠나가버린들 무엇이 두렵겠는가. <p.237>

 


 

사랑하라. 인생에 있어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
-G.상드-


 

사랑이라는 이름의 찰나의 행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가슴에 새긴 사람, 죽음으로 거부한 사람, 곁에 살면서 영원히 부정한 사람.

그 지독한 열병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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