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요시다 아쓰히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입도 하나밖에 없고, 사람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도 하나밖에 없으니까."

"하나밖에?"

"맛있는 것." <p.78>

 

맛있는 제목과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에 반해 읽게 된 요시다 아쓰히로의 <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교외 주택가에 어울리는 두량짜리 작은 노면전차가 천천히 달리고 있고,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이웃 역 근처에 학생 때부터 자주 다녔던 오래된 영화관이 있어 이 마을로 이사오게 된 오리군.

실업의 몸인지라 되도록 빨리 일을 찾아야만 하지만 바로 이웃 역의 영화관으로 저절로 발길이 향하는 남자다.

영화뿐 아니라 푹 빠지면 반복하는 버릇은 먹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먹을 때마다 맛을 더해가는 트르와의 샌드위치를 매일 빠짐없이 먹게 된 오리군은 그 인연으로 트르와에서 일하게 되고 날이 추워지면서 손님도 줄고 신제품 개발 차원으로 샌드위치에 어울릴만한 수프를 만들라는 안도씨의 부탁으로 수프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 . .

그는 맛있는 수프를 만들 수 있을까 ? 그 수프는 어떤 맛일까 ?

 

아들 리쓰군의 표현을 따르자면 너무 성실해서 재미가 없는 <트르와>라는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안도씨. 키가 작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말하는 것만 보면 굉장히 어른스러워 아버지도 당해내지 못하는 똘똘한 초등학교 4학년. 안도씨의 아들 리쓰군.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를 찾아 상영하는 곳만 있으면 시간을 내서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는 '안절부절 못하는 병'에 걸려 회사까지 그만두게 된 우리의 주인공 오리군. 오리군이 살고 있는 곳의 집주인이자 건물 꼭대기에서 혼자 살고 있는, 옛날 프랑스 영화에 나오는 안뜰과 다락방이 딸린 낡은 아파트에 사는 마담처럼 전혀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데다 호탕한 면이 있는 다락방 마담 오야씨.

우리의 주인공 오리군이 첫눈에 반한 배우 마쓰하라 아오이씨. 개만 남기고 떠나버린 지배인, 주인이 떠난 극장을 지키는 팝콘을 파는 청년과 개 한 마리까지.

 

시종일관 음식 이야기, 그 중에서도 <수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이웃들이 들려주는 소박하지만 맛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읽고 있는 내내 잔잔한 미소가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방세와 상관없이 옆에 세워져 있는 교회의 하얀 십자가가 창을 통해 곧바로 보이는 모습, 엷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이 십자가를 부드럽게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광경에 짧은 탄성과 함께 한동안 넋을 잃은 주인공의 행동에 당연히 '여자'일거라 생각했는데 '남자'라니~ 거기서부터 책읽는 내내 예기치못한 즐거움과 만나게된다.

첫번째로 빵 터진건 샌드위치 가게 이름 때문. 맛있단 얘길 듣고 찾아간 샌드위치 가게 '트르와'. 꽤 맛있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이 바뀔 정도의 맛인지라 오리씨는 트르와를 자주 찾게 되는데 몇번의 방문후 우연찮게 주인 안도씨의 아들 리쓰군으로부터 트르와의 뜻을 듣게 되는 장면이다.

(트르와는 프랑스어로 3인데 (여기까진 괜찮았다 ㅋ) 안도집안. 안(Un), 도(Deux), 트르와(Trois), 프랑스어로 1,2,3이라 뜻이라고 ㅋ

안도씨라 가게 이름이 트르와란 얘기에 빵 터진 웃음은 그칠줄 몰랐다. 곧이어 두 번의 실패후 세 번째 일터. 세번의 도전이라는 제법 진지한 설명도 들었지만 배꼽잡고 웃은 후라 그런지 별로 귀에 안들어오더라는 ㅎㅎ)

 

트루와의 맛있는 샌드위치 얘길 하다 영화 이야기로 빠지기도 하고, 수프 이야기를 하다가 공중돌기나 티비 이야기, 태엽감는 시계 이야기로 빠지는 것처럼 편해서 정감있고 엉뚱해서 즐겁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 주인공들이 가슴 속에 안고 있는 삶의 무게와 조언이 그대로 녹아 내려있어 좋다.

 

왜 그런지, 아직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모두 자진해서 감상을 말하려고 했다.

평소에는 내가 이리저리 캐물어야 겨우 대답이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스푼을 입에 넣을 때마다 맛있다, 정말 좋다 같은 얘기들이 연달아 나온다.

맛있다는 것은 아마 그런 것이리라.

정말 맛있는 것은 말을 찾을 필요도 없이, 목구멍을 통과하는 순간에 이미 감탄의 소리가 나오고, 위에 도달할 무렵에는 꽃이 피는 것처럼 말이 용솟음친다.

"이건, 엄마의 맛이네요." <p.171>

 

평범한 일상속 사람들의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담고 있어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단 생각이 간절해지는 이야기 +_+

추운 겨울, 트르와의 맛있는 샌드위치와 수프는 물론 우리네들의 소박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용~

<그후로 수프만 생각했다>는 <회오리바람 식당의 밤>의 자매소설로 '쓰키부네초 3부작'의 두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쓰키부네 시네마 로비에 남겨진 개를 주인공으로 한 <레인코트를 입은 개>라는 작품을 준비중이란 얘길 들었는데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
 

 


이 책이 좋은 진짜 이유 !!


네 번째 <휘파람>

영화는 지극히 단순하다. 이렇다 할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무대도 장면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중략)

이 영화는 옛날 레코드판으로 치자면 B면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오이 씨뿐만이 아니라 출연자 대부분이 지금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질 만큼 평범한 연기이긴 하지만 지금 시점으로 보면 왠지 리얼리티가 살아 있어서 반세기 전의 서민 생활에 어느새 나 자신도 푹 빠지고 만다.

벌써 완전히 잊었지만 나는 언젠가 영화 대본을 쓰고 싶어 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 <휘파람>같이 지극히 평범한 마을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움직임도 없지만 그래도 역시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 있는,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것 사이에서 무력한 마을 사람들은 종종 길을 헤매다 말을 잃는다. <P.211>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게 이런게 아닐까 싶은 ~

예전엔 재밌거나 슬프거나 감동적이거나 반전이 강한, 나름 주제의식이 강한 이야기를 읽어야 머릿속이 깔끔해지면서 책 한권을 끝냈다 싶어 좋았는데 요즘은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좋아진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세세한 감정들을 글로 만났을때 느껴지는 아름다움, 평범한 삶속에 숨겨진 진짜 '행복'을 깨우치게 된달까.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많이 만나고 싶다.  




 

개인적으로 요런 스타일의 일러스트를 참 좋아함.  

어딘가 낯익다 싶었는데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의 박경연님 작품이더라는 ~

스타일이 맘에 들어 가볍게 검색해봤는데 이곳에 들어감 이분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http://www.byillust.com/artistGallery/4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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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찌지 않는 스모선수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사부님, 제가 잃었던 길을 다시 찾게 해주시고, 그 위를 걸어갈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 말이 맞다, 준. 목표란 길이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길 자체인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승리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습니다."

"잘 생각했다. 비록 승자가 있을지언정 삶 자체는 도박도 아니요, 경기도 아니다." <p.113>

 

 

진홍가 모퉁이, 지하철 출구와 버스정류장 사이에 위치한 최고의 전략지점에서 밀수품을 판매중인 열다섯살 소년 준.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고자였을까 ? 가족은 물론 학교 & 친구들을 등지고서 길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한다.
세상만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소년. 관심 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모든게 역겨우며, 산다는 것 자체가 가려움증을 불러일으킨다 말한다.
열다섯살 소년이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이러는걸까 ? '준'에게 무슨일이 생겼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지더라.

성냥개비 위에 말라비틀어진 청어 같은 꼬락서니인 준에게 매일 '네 안에 떡대가 보인다'란 말을 전하는 쇼민주.

그를 좋아하진 않지만 너도나도 비슷하게 생긴 도쿄라는 도시에서 어딘지 달라보이는 그의 모습에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을 느끼던 어느날, 쇼민주는 구경한번 오라며 준에게 스모경기 티켓을 내민다. 하지만 준은 새로운 구역의 파벌 싸움으로 물건을 다 잃고 스모 경기 티켓을 팔아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지만 금새 세관의 불심검문에 걸려 빈털털이가 되는 신세가 된다. 그런 소년에게 또다시 스모 경기 티켓을 내미는 쇼민주. 준은 결국 몸을 움직여 스모 경기장을 찾게 되고 스모의 매력에 푹 빠져 쇼민주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렇게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준.

아홉달을 꼬박 노력한 끝에 스모 선수가 되기 위한 신장, 1미터 75센티는 넘었지만 최소 체중이 75킬로그램에 한참, 무려 20킬로그램이나 모자라는 준. 뭔가 유전적인 결함으로 인해 살이 찌지 않는건 아닐까 싶은 준은 이쯤에서 포기하고 떠나려는데 사부인 쇼민주는 준이 감정, 여러 문제점들, 사연들을 모조리 숨기고 덮어버렸기 때문이라며 자신에 대해 모르는 준을 탓한다. 이에 발끈한 준은 이제껏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속 짐들에 대해 토해내고 명상을 통해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렇게 힘과 지혜, 자신과의 화해라는 놀라운 경지를 향한 달려가는 준. 그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살 찌지 않는 스모 선수

프랑스 소설을 제법 읽었다 생각했는데 이 책은 프랑스 소설 같지가 않다. 배경이 일본이기도 하고, 청소년 성장 소설인데다 선불교를 다루고 있어서일까 ?

이야기 패턴도 어렵고 난해한 것이 아니라 잘 짜인 한 편의 철학 콩트처럼 읽어도 좋을, 짧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로 되어 있어 읽는데 부담없어 좋다.

오히려 짧아서 강렬하달까 ~

 

앞만 보고 앞뒤 안가리고 달려가다보면 항상 뭔가를 잃게 된다. 아름다움을 쫓다 건강을 잃기도 하고, 성공만 쫓다 사람을 잃기도 하는 것처럼.

이 책 속 주인공 <준> 역시 쇼민주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거리생활을 하고 있겠지. 자신을 알고 자신을 뛰어넘으면서 비로서 진짜 자신과 마주하게 된 준.

잃었던 길을 찾고, 그 위를 어떻게 걸어가면 되는지를 직접 보여준 준.

진정한 '떡대'란 남들한테 이기는 자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라는 것을 깨우친 준이 자랑스럽다. 그런 그이기에 자신의 아집으로 설 자리를 잃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없이 따뜻하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란걸 말해줘서 고마워요 +_+

 

 

"구름 뒤에는 늘 하늘이 펼쳐 있는 법이다." <p.106>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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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섬 - 박경화 장편소설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결국 삶이란 스스로의 선택인 것이다. <p.13>

 

연휘, 케이, 소용, 루, 재오, 희경, 그리고 누구의 것이 될 필요가 없는 고양이 파랑까지 '딤섬'에는 무언가에 결핍된 사람들이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다 읽는 나까지 멜랑꼴리한 기분에 젖어드는 듯 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꽤나 복잡해 보였던 인물구조. 막상 읽기 시작하니 3:3 핑퐁게임 같더라. 연휘,케이,소용 & 루,재오, 희경의 이야기가 얽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했던 많은 생각들을 고스란히 토해내고 싶지만 그것을 어찌 표현해내야 하는지 조차 모르겠다. 정확한 건 슬픔도 기쁨도 나와는 너무도 다른 표현들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 그만큼 어렵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와도 '예술'하는 사람치고 특이하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대충 그렇게 해석하며 넘긴 ;;; 그들이 온 몸으로 표현해 내는 포퍼먼스 아트처럼. 

그러하기에 내가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긴 한건가 ? 잘못 해석된 글로 이 책을 읽으려 집어든 사람까지 주저하게 만들까 조심스럽고 겁나기만 하다.

 

"예를 들어 조경사는 공원을 디자인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위로를 주고 작가들은 책을 씀으로써 독자들에게 위로를 주지요. 그것은 소울을 나누는 멋진 일이죠." <p.111>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해 내려하는 사람들. 완성도 없고 정점도 없이 그렇게 무던하게 흘러가는 우리네 일상이지만 이것 역시 나름의 예술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딤섬>이 연휘가 온 몸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그런 연휘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케이처럼 작가 스스로가 글로서 표현해내고 싶은 하나의 작품으로 보였다.

본문 내용처럼 그냥 예술가가 아닌 매혹적인 예술가. 사람들을 사로잡느냐, 사로잡지 못하느냐, 매혹하느냐, 매혹하지 못하느냐의 문제라면 . . .

사람을 홀리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팠던 게 작가의 의도라면 글쎄 ~ 그녀는 나를 사로잡지도 매혹시키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 이런 예술도 있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작가도 있다는 것으로 이 책을, 작가를 이해하고자 했달까.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의 미묘한 줄다리기 싸움으로 인해 상처받고 외로움에 처하는 사람들. 이해를 하든 못하든 한번쯤은 그 모든것을 끌어안고 싶은 맘으로 가득하다 ~

 

사랑과 예술과 자유,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오로지 그 세 가지만을 향해 지적인 폭력을 행사하리라 마음먹었던 매 순간들.

재오는 그러한 인식들을 단 한순간도 의식 속에서 놓지 않았음을 뚜렷이 자각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순간은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너무도 간절한 포기할 수 없는 찬란한 생이었다. <p.241>

 

찬란한 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모두에게 화이팅 해주고 싶은 12월의 첫날.

통통통 가볍게 저 멀리 날아가는 물수제비처럼 마음을 건드리는 다음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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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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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반찬으로는 말린 쏨뱅이를 구웠다. 점심을 늦게 먹은 탓에 배는 조금도 고프지 않았지만, 위보다는 혀의 욕구에 이끌려 전갱이덮밥과 오이 샐러드도 만들어 먹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여행지에서 만난 음식은 하나같이 정말 맛있었고, 현지에서는 다른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일 아침에는 과일을 실컷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평소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점심때도 뭐든 먹어야(시원한 중화면이 좋겠다)겠다고 생각하고,

밤에는 키마 카레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p.170>

 

에쿠니 가오리의 푸드 에세이 <부드러운 양상추>

 

요근래 음식과 관련된 에세이를 많이 읽어서 그런지 '부드러운 양상추'를 만났을 때도 언젠가 이런류의 책이 나올 것만 같았단 식의 당연한 느낌이 있었다.

가요나 패션 뿐만이 아닌 출판사에도 분명 트랜드라는 것이 있기에 ~

이 책보다 앞서 출간된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일본 최고의 인기 여성작가 4인이 유럽의 시골에서 먹고, 쓴 치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 여성작가 4인방이 우연찮게도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거야말로 소장해야 되는게 아닌가 싶을정도) 운명처럼 이 책부터 만나게 됐다는 ~

본문 내용중 <길치, 또는 사전 회의의 전말> 을 보면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기획단계에 있었던 자잘한 에피소드가 들어있는데 그 것 하나만으로 이 책을 먼저 읽게 되 다행이란 생각도 했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

 

푸드 에세이니만큼 수많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요란스럽지 않게 잔잔하게 ~ 에쿠니 가오리만의 스타일 그대로 들어있다 생각하면 된다.

컵라면, 커피와 도넛, 스카치(술), 미역귀, 세멸도시락, 해파리, 우무, 장어구이, 오미자맛 쌀겨 된장, 비파, 김 도시락, 콜드미트, 포타주 등등 뚜렷한 형태와 맛을 띄는 재료와 음식이 나오기도 하지만 '냉동 귤'처럼 상상은 되지만 살짝 이해하기 난감한 음식 이야기도 즐겁기만 하다.

그것들이 에쿠니 가오리가 들려주는 책 속 음식과 자신의 단점이 될법도 할 습관과 같이 어우러져 너무나도 일상적인 면들이 허물없이 엉켜 있어 그런게 아닌가 싶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 이기에 그녀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유명 작가가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한 사람으로서, 가까이 아주 가까이 있는 듯한 너무나도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드는 듯~

언어에 충격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몸에 촉촉한 알칼리 천연수, 발 모양 양말, 천국의 맛 컵라면 등등), 들어가기가 부끄러워 스타벅스를 가본적이 없다는 것, 뜯어보는 게 무서워 알게 모르게 쌓이고 마는 우편물, 길치에 예약병이 있고 한꺼번에 두 가지를 하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 아직도 원고를 손으로 연필로 쓴다는 것, 운동은 공포, 기계를 싫어하고(청소기는 8년째 사용않고, 티비와 비디오는 10년째 사용 안했다는 부분에서 어찌 그럴수 있는지 탄성이 절로), 팔을 쓰면 열이 나고, 바게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온 날 다 먹어야한다는 규칙이 있다는 것 등등 내가 알아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많은 부분을 알게 됐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에 얽힌 사연과 추억, 풍경, 함께했던 사람에 대해 얘기한 것 치곤 꽤나 간결해서 아쉽기도 했지만(나열해놓고보니 간결한 것도 아닌 듯 ㅋㅋ)너무나 일상적이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것도 특유의 섬세함으로 무장한 감각적인 문체만은 여전히 따뜻하고 평온하다.

 

20대, 여행을 계획할 때는 예약 없이 무조건 떠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1년짜리 싸구려 오픈티켓을 사서 비행기에 오르고 묵는 곳은 물론 이동할 곳도 정하지 않은 채 떠나는 것이 자유로운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예약병을 앓고 있다며 ~ 세상이나 인생이나 안심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여행이나 외식 같은 소소한 즐거움만은 안심하고 즐기고 싶어 예약을 하고 나선다는 그녀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즐겁기도 ~

 

여행지에서의 그 무모할 정도의 식욕이, 나는 유쾌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일상이 아니니까 모든 것이 가공의 얘기 같고, 음식도 몸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쓱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p.221>

 

일상이기에 가공되지 않고, 쓱 사라지는 이야기도 아니라 좋구나 ~

음식 이야기 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동화책 한 귀퉁이 이야기. <어쩔수 없는 물>빼놓고는 죄다 처음 접하게 된 작품이 많은데 무민 골짜기의 겨울, 어부와 아내, 프라이팬 할아버지, 가노코와 마들렌 여사, 환영의 붉은 열매, 프리지오 왕자, 그리고 하마들은 탱크에서 익어 죽었다, 피터 래빗 시리즈 등등 에세이에 언급된 책 중 도서관에서 찾아 읽을 수 있는 책만큼은 꼬옥 읽어보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는 언제나 즐거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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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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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매일 체스를 하는데도 똑같은 기보를 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이상해. 그렇게 조그만 테이블 위에서 한정된 종류의 말을 움직일 뿐인 게임인데."

"응, 그건 어쩔 수 없어. 체스에서 가능한 기보의 가짓수는 이론상 10의 123 제곱이거든.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 수보다 많다고 해."

"어머,그래?"

"그럼 체스를 한다는 건 저 별을 한 개씩 여행하고 다니는 것 같은 일이구나."

"그래. 지구만으론 부족해서 우주까지 여행하는 거야."
"'리틀 알레힌'이란 우주선을 타고 말이지." <p.177~178>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 오가와 요코의 신작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너무 커져버려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게 된 코끼리 '인디라', 집 벽과 벽 사이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소녀 '미라'
폐버스에서 살면서 살이 쪄 버스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 '마스터', 그리고 자동 인형 안에 몸을 숨기고 체스를 두는 '소년'

줄거리를 읽고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쉬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인디라, 미라, 마스터, 리틀 알레힌이 의미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어서 어서 빨리 이 책을 읽고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던 것 같다.

읽어보니 이것은 '체스', 서양장기라고도 불리는 체크무늬 판과 말을 이용하여 두 사람이 펼치는 게임을 오가와 요코만의 환상적인 이야기로 버무린 소설이 아닌가.

 

"그래, 체스. 나무로 만든 왕을 쓰러뜨리는 게임이지. 8x8 모눈의 바다, 장구벌레가 물을 마시고 코끼리가 멱을 감는 바다에 잠수하는 모험이란다." <p.42>

 

제목 그대로 고양이를 안고 코끼를 코를 잡은채로 어딘가를 유영하는 소년의 모습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몰라 궁금하기만 했는데 이것조차도 체스로 설명이 가능하다니 그 게임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마냥 궁금하기만 하다. 체스를 몰라도 읽는데 문제는 없으나 체스를 알면 더 이해하기 빠르고 감동스러울 이야기가 아닐런지 +_+

 

마스터의 죽음 후 커진다는 것이 곧 비극이라 인식한 소년. 그렇게 리틀 일레힌의 몸은 여전히 열한 살 체격 그대로인 상태로 성장이 멈추고 만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체스 기사 알렉산드르 알레힌을 본떠 만든 자동 체스 인형 '리틀 알레힌' 안에 들어가게 되고 해저 체스 클럽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골격은 더욱 줄어들어 인형 장치 상태에 맞춰 몸이 윤곽이 변해가지만 입술만은 정강이 털이 피부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자유자재로 구불거리고 엉키며 자라나 무성한 덤불을 이룬다. 그렇게 좁고 어두운 인형 안에 머물며 체스의 바다를 여행하는 이야기. 체스를 둘때면 너무도 자유로운 소년. 이야기조차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없이 너무도 자유로운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체스판 밑에서 체스를 두면서 아름다운 기보를 남기는 소년의 행적만은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승부욕에 불타지 않고 말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시'를 즐기며 누구보다 자유롭게 체스의 바다를 헤엄치기에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신성함'이 느껴질 정도. 그가 지나간 자리엔 고요함만이 남다보니 소년의 죽음조차 현실인지 믿기 어려울 정도 ㅠ-ㅠ


여러 영화에 등장할때마다 뭔가 색다른 분위기에 이끌려 묘하게 매력적으로 비춰졌던 체스. 장기나 바둑보다는 확실히 고급스러운 게임으로 내 머리에 박혀 있는데 오가와 요코가 그려낸 이야기로 인해 체스는 시의 언어로 새긴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입술이 붙은채로 태어나 유독 과묵했던, 전설의 체스 플레이어 '리틀 알레힌', 그가 체스판 위에 써내려간 은밀한 기적, 그 감동적인 이야기.

체스의 기보 안에서 숨은 우주를 발견한 그처럼  나 역시 언제고 숨은 우주를 발견할 수 있으려나 ??

은 젤 위대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 모두가 협력하는 셈인데 협력자 중에서도 제일 힘이 센 게 즉 어머니. 큰딸 비숍하고 작은딸 은 여장부인 어머니의 분신이고 큰아들 나이트는 어머니가 못하는 일을 자기가 나서서 한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막내이자 체스의 생명이기도 한 .

킹, 퀸, 비숍, 룩, 나이트, 폰을 이렇게 멋지게 설명할 수 있다니 +_+

 

말들의 움직임으로 우아함, 날렵함, 화려함, 교활함, 대범함, 장엄함 등 뭐든 있는 그대로 음미할 수 있는, 인간보다 장수하는 이 게임 '체스'

체스판에는 말을 만지는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데 나도 한번 배워서 인간이 체스로 그려내는 시가 얼마나 멋진지 체험해보고 싶다~ >.<

나의 스승이 마스터 처럼 승패가 아닌 체스가 갖는 고유의 즐거움만을 알려주는 사람이라면 더할나위 없을 것 같다 ~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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