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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평점 :
저녁 반찬으로는 말린 쏨뱅이를 구웠다. 점심을 늦게 먹은 탓에 배는 조금도 고프지 않았지만, 위보다는 혀의 욕구에 이끌려 전갱이덮밥과 오이 샐러드도 만들어 먹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여행지에서 만난 음식은 하나같이 정말 맛있었고, 현지에서는 다른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일 아침에는 과일을 실컷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평소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점심때도 뭐든 먹어야(시원한 중화면이 좋겠다)겠다고 생각하고,
밤에는 키마 카레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p.170>
에쿠니 가오리의 푸드 에세이 <부드러운 양상추>
요근래 음식과 관련된 에세이를 많이 읽어서 그런지 '부드러운 양상추'를 만났을 때도 언젠가 이런류의 책이 나올 것만 같았단 식의 당연한 느낌이 있었다.
가요나 패션 뿐만이 아닌 출판사에도 분명 트랜드라는 것이 있기에 ~
이 책보다 앞서 출간된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일본 최고의 인기 여성작가 4인이 유럽의 시골에서 먹고, 쓴 치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 여성작가 4인방이 우연찮게도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거야말로 소장해야 되는게 아닌가 싶을정도) 운명처럼 이 책부터 만나게 됐다는 ~
본문 내용중 <길치, 또는 사전 회의의 전말> 을 보면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기획단계에 있었던 자잘한 에피소드가 들어있는데 그 것 하나만으로 이 책을 먼저 읽게 되 다행이란 생각도 했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
푸드 에세이니만큼 수많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요란스럽지 않게 잔잔하게 ~ 에쿠니 가오리만의 스타일 그대로 들어있다 생각하면 된다.
컵라면, 커피와 도넛, 스카치(술), 미역귀, 세멸도시락, 해파리, 우무, 장어구이, 오미자맛 쌀겨 된장, 비파, 김 도시락, 콜드미트, 포타주 등등 뚜렷한 형태와 맛을 띄는 재료와 음식이 나오기도 하지만 '냉동 귤'처럼 상상은 되지만 살짝 이해하기 난감한 음식 이야기도 즐겁기만 하다.
그것들이 에쿠니 가오리가 들려주는 책 속 음식과 자신의 단점이 될법도 할 습관과 같이 어우러져 너무나도 일상적인 면들이 허물없이 엉켜 있어 그런게 아닌가 싶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 이기에 그녀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유명 작가가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한 사람으로서, 가까이 아주 가까이 있는 듯한 너무나도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드는 듯~
언어에 충격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몸에 촉촉한 알칼리 천연수, 발 모양 양말, 천국의 맛 컵라면 등등), 들어가기가 부끄러워 스타벅스를 가본적이 없다는 것, 뜯어보는 게 무서워 알게 모르게 쌓이고 마는 우편물, 길치에 예약병이 있고 한꺼번에 두 가지를 하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 아직도 원고를 손으로 연필로 쓴다는 것, 운동은 공포, 기계를 싫어하고(청소기는 8년째 사용않고, 티비와 비디오는 10년째 사용 안했다는 부분에서 어찌 그럴수 있는지 탄성이 절로), 팔을 쓰면 열이 나고, 바게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온 날 다 먹어야한다는 규칙이 있다는 것 등등 내가 알아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많은 부분을 알게 됐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에 얽힌 사연과 추억, 풍경, 함께했던 사람에 대해 얘기한 것 치곤 꽤나 간결해서 아쉽기도 했지만(나열해놓고보니 간결한 것도 아닌 듯 ㅋㅋ)너무나 일상적이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것도 특유의 섬세함으로 무장한 감각적인 문체만은 여전히 따뜻하고 평온하다.
20대, 여행을 계획할 때는 예약 없이 무조건 떠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1년짜리 싸구려 오픈티켓을 사서 비행기에 오르고 묵는 곳은 물론 이동할 곳도 정하지 않은 채 떠나는 것이 자유로운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예약병을 앓고 있다며 ~ 세상이나 인생이나 안심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여행이나 외식 같은 소소한 즐거움만은 안심하고 즐기고 싶어 예약을 하고 나선다는 그녀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즐겁기도 ~
여행지에서의 그 무모할 정도의 식욕이, 나는 유쾌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일상이 아니니까 모든 것이 가공의 얘기 같고, 음식도 몸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쓱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p.221>
일상이기에 가공되지 않고, 쓱 사라지는 이야기도 아니라 좋구나 ~
음식 이야기 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동화책 한 귀퉁이 이야기. <어쩔수 없는 물>빼놓고는 죄다 처음 접하게 된 작품이 많은데 무민 골짜기의 겨울, 어부와 아내, 프라이팬 할아버지, 가노코와 마들렌 여사, 환영의 붉은 열매, 프리지오 왕자, 그리고 하마들은 탱크에서 익어 죽었다, 피터 래빗 시리즈 등등 에세이에 언급된 책 중 도서관에서 찾아 읽을 수 있는 책만큼은 꼬옥 읽어보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는 언제나 즐거워라 ~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