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매일 체스를 하는데도 똑같은 기보를 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이상해. 그렇게 조그만 테이블 위에서 한정된 종류의 말을 움직일 뿐인 게임인데."

"응, 그건 어쩔 수 없어. 체스에서 가능한 기보의 가짓수는 이론상 10의 123 제곱이거든.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 수보다 많다고 해."

"어머,그래?"

"그럼 체스를 한다는 건 저 별을 한 개씩 여행하고 다니는 것 같은 일이구나."

"그래. 지구만으론 부족해서 우주까지 여행하는 거야."
"'리틀 알레힌'이란 우주선을 타고 말이지." <p.177~178>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 오가와 요코의 신작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너무 커져버려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게 된 코끼리 '인디라', 집 벽과 벽 사이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소녀 '미라'
폐버스에서 살면서 살이 쪄 버스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 '마스터', 그리고 자동 인형 안에 몸을 숨기고 체스를 두는 '소년'

줄거리를 읽고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쉬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인디라, 미라, 마스터, 리틀 알레힌이 의미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어서 어서 빨리 이 책을 읽고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던 것 같다.

읽어보니 이것은 '체스', 서양장기라고도 불리는 체크무늬 판과 말을 이용하여 두 사람이 펼치는 게임을 오가와 요코만의 환상적인 이야기로 버무린 소설이 아닌가.

 

"그래, 체스. 나무로 만든 왕을 쓰러뜨리는 게임이지. 8x8 모눈의 바다, 장구벌레가 물을 마시고 코끼리가 멱을 감는 바다에 잠수하는 모험이란다." <p.42>

 

제목 그대로 고양이를 안고 코끼를 코를 잡은채로 어딘가를 유영하는 소년의 모습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몰라 궁금하기만 했는데 이것조차도 체스로 설명이 가능하다니 그 게임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마냥 궁금하기만 하다. 체스를 몰라도 읽는데 문제는 없으나 체스를 알면 더 이해하기 빠르고 감동스러울 이야기가 아닐런지 +_+

 

마스터의 죽음 후 커진다는 것이 곧 비극이라 인식한 소년. 그렇게 리틀 일레힌의 몸은 여전히 열한 살 체격 그대로인 상태로 성장이 멈추고 만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체스 기사 알렉산드르 알레힌을 본떠 만든 자동 체스 인형 '리틀 알레힌' 안에 들어가게 되고 해저 체스 클럽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골격은 더욱 줄어들어 인형 장치 상태에 맞춰 몸이 윤곽이 변해가지만 입술만은 정강이 털이 피부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자유자재로 구불거리고 엉키며 자라나 무성한 덤불을 이룬다. 그렇게 좁고 어두운 인형 안에 머물며 체스의 바다를 여행하는 이야기. 체스를 둘때면 너무도 자유로운 소년. 이야기조차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없이 너무도 자유로운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체스판 밑에서 체스를 두면서 아름다운 기보를 남기는 소년의 행적만은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승부욕에 불타지 않고 말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시'를 즐기며 누구보다 자유롭게 체스의 바다를 헤엄치기에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신성함'이 느껴질 정도. 그가 지나간 자리엔 고요함만이 남다보니 소년의 죽음조차 현실인지 믿기 어려울 정도 ㅠ-ㅠ


여러 영화에 등장할때마다 뭔가 색다른 분위기에 이끌려 묘하게 매력적으로 비춰졌던 체스. 장기나 바둑보다는 확실히 고급스러운 게임으로 내 머리에 박혀 있는데 오가와 요코가 그려낸 이야기로 인해 체스는 시의 언어로 새긴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입술이 붙은채로 태어나 유독 과묵했던, 전설의 체스 플레이어 '리틀 알레힌', 그가 체스판 위에 써내려간 은밀한 기적, 그 감동적인 이야기.

체스의 기보 안에서 숨은 우주를 발견한 그처럼  나 역시 언제고 숨은 우주를 발견할 수 있으려나 ??

은 젤 위대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 모두가 협력하는 셈인데 협력자 중에서도 제일 힘이 센 게 즉 어머니. 큰딸 비숍하고 작은딸 은 여장부인 어머니의 분신이고 큰아들 나이트는 어머니가 못하는 일을 자기가 나서서 한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막내이자 체스의 생명이기도 한 .

킹, 퀸, 비숍, 룩, 나이트, 폰을 이렇게 멋지게 설명할 수 있다니 +_+

 

말들의 움직임으로 우아함, 날렵함, 화려함, 교활함, 대범함, 장엄함 등 뭐든 있는 그대로 음미할 수 있는, 인간보다 장수하는 이 게임 '체스'

체스판에는 말을 만지는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데 나도 한번 배워서 인간이 체스로 그려내는 시가 얼마나 멋진지 체험해보고 싶다~ >.<

나의 스승이 마스터 처럼 승패가 아닌 체스가 갖는 고유의 즐거움만을 알려주는 사람이라면 더할나위 없을 것 같다 ~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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