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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 - 생을 요리하는 작가 18인과 함께 하는 영혼의 식사
유승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9월
평점 :
"인생은 길지 않다.
다투거나 쉽게 헤어지기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누군가의 꽃이 될 시간이 . . . <p.260 >
밥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책 속의 책. 색다른 이야기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유승준의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은 지치고 허기진 인생을 찾아가 따뜻한 밥 한 끼 먹여주는 문학 속의 음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에 실린 18인의 작가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밥에 대한 이야기가 날카로운 질문과 답이란 색다른 형식을 통해 나에게 읽어보지 못한 작가의 시와 산문 소설을 통해 밥처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를 들려준다.
책 한권을 통해 많은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이런 형식의 책을 몇권 읽어본 적이 있다.
인상적인 책을 몇가지 꼽으라면 젊은 여성 작가 7인이 그려내는 비 혹은 그날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테마 소설집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회화, 일러스트, 조각, 공예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작업과 에피스드, 그들이 꾸며가고 있는 작업실을 보여주고 있는 흥미로운 책 '작업실의 고양이'
일본 인기 여성작가 4명이 슬로푸드와 소울푸드를 찾아 떠난 유럽 여행기와 그 곳을 배경으로 쓴 이야기를 엮은 단편소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등등
내가 좋아하는 소재를 엮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재밌게 읽었고 또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 비가 오거나 낯선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책 속 내용이 떠오르곤 하는데 이 책은 한창훈, 황석영, 김재영, 손미나, 백영옥, 김훈, 이명랑, 손홍규, 박범신, 윤고은, 안도현, 신현림, 조현, 손현주, 허택, 노경희, 강순희 등등 익숙하면 익숙하고, 낯설다면 낯선 사람들과 그들의 작품을 새롭게 이해하고 읽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지 않아 작가나 그 책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없이 작가와 작가가 들려주는 책의 이야기에 푹 빠지게 만드는 것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질문 자체가 참 날카롭고 재치있었다고나 할까 ~
비슷한 분량의 페이지 같으나 유난히 글빨이라고 해야할지 말빨이라고 해야할지 글밥이 많지만 지루함없이 휙휙 넘어가는 작가님도 있고, 예리한 질문에 비해 부응하지 못한 대답을 펼쳐놓는 작가님도 있어 비교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더라.
출산과 육아로 한동안 책을 멀리하긴 했지만 유난히도 한국 소설에 관심이 없었던 나이기에 더 낯설게 느껴졌던 제목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골고루 반찬을 집어먹듯 편식과 편견없이 책을 읽어보자고 반성과 결심을 하게 되기도 했다. 일본소설, 영미소설만 재밌는 줄 알았는데 한국소설도 이렇게 재밌구나~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 ~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이명랑의 삼오식당, 윤고은의 1인용 식탁, 손현주의 불량 가족 레시피 등등 몇몇의 작가와 그들의 책을 눈여겨 보았고 읽고픈 책 리스트에 올려놓기도 ㅎㅎ
조만간 꼭 읽고말것이다. 이런 작은 다짐이야말로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즐거움이자 결실이 아닌가싶다~
"'신시가지'로 상징되는 그곳에 무엇이 있는가.
보다 넓은 집, 보다 빠른 자동차, 보다 큰 텔레비전 등이 놓인 그곳은, 생텍쥐페리의 표현대로 한다면 '재화(財貨)의 감옥'일 뿐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소중한 영혼의 가치들을 대부분 잃어버린다.
예컨대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방법을 잊고, 사랑의 완성이라는 꿈을 버리고, 삶의 더 큰 비전인 내면으로 가는 길을 상실한다.
남는 것은 불모지와 같은 '도시의 황야(荒野)'에서 느끼는 고독과 갈망뿐이다. 나는 이것을 '자본주의적 슬픔'이라고 부른다." <p.212>
기운을 내게 하는 음식, 기쁨을 주는 음식, 용서하게 만드는 음식등 음식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을 주제로한 책들이 유행처럼 출간되고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읽은 것만 해도 몇권 된다)
이 책은 그 책들중 삶에 녹아들어간 음식, 그 희노애락에 담긴 의미를 가장 진지하게 묻고 답한 책이 아닐까 싶다.
한국문학을, 편견으로 멀리했던 작가나 작품에 대해 또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