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머니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2012년 10월
평점 :
한숨의 크기
- 어머니학교 19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냇물 흐린다지만,
그 미꾸라지를 억수로 키우면 돈다발이 되는 법이여.
근삼이니 상심이니 하는 것도 한두 가지일 때는 흙탕물이 일지만
이런 게 인생이다 다잡으면, 마음 어둑어둑해지는 게 편해야.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
시, 에세이, 소설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읽어봐야지~ 하고 결심 하자마자 이렇게 좋은 책 한권을 받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서툰 육아로 인해 올핸 다른해에 비해 읽고 리뷰쓴 책 권수가 한없이 초라하기만한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속할 정도로 내 맘에 쏘옥 든다 !!
이 책을 집어들때까지만 해도 이런 결과를 결코 예상치 못했다는 ~
열림원의 책, 어머니 학교는 이정록 시인이 어머니의 말씀만을 담은 책으로 삶에서 묻어나온 지혜와 철학이 넘치는 72편의 시가 담겨있다.
시인과 시인의 어머니가 함께 쓴 한 권의 책 <어머니 학교>
이 책을 핑계로 시인과 시인의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을까 ~
이것 하나만으로도 시인 자신과 어머님께 엄청난 선물이 됐을 것 같아 내 일인 것마냥 생각만해도 흐뭇해진다.
겉멋들지 않은 글. 날것 그대로의 글. 뽐내려하지 않지만 글 자체에서 빛이 반짝반짝 ~
시이면서 에세이같고 소설같기도 한 글들.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힘들 것 같은데 시인의 어머니라 그런걸까 ? 내공이 장난 아니시다 ~
농사짓는 분의 글솜씨가 아닌 것 같다는 ㅎㅎ
이 책에는 우리네 어머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식이야기를 비롯해 이렇게 밝혀도 괜찮을까 싶은 남편이야기까지 ~
구구절절 자식을 향한 걱정과 사랑이 듬뿍 느껴졌던 시집. 어떤 교훈과 메시지가 이보다 솔직할 수 있을까 싶다.
나 역시 전라도 사람이라 그런지 사투리 섞인 글이라 더 반갑고 좋더라. 울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친근함이 물씬 !!!
이 시집을 읽은 사람들은 싱건지가 무엇인지, 지심이 무엇인지 아려나 ? ㅎㅎ
아이를 낳고 엄마, 어머니라는 단어에 유난히도 가슴 한켠이 먹먹해져오는데 시집 속 어머니의 경지에 오르려면 한참 멀었지만 나 역시 가슴 따뜻하고 다정한,
힘들고 어려울때 한없이 기대고 싶은 엄마가 되고 싶다.
자식들 키우느라 허리 굽는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아오셨을 울 엄마가 엄청 보고싶어지는 오늘. 차가워지는 날씨에 몸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 안부전화 한통 넣어야겠다.
눈물비누
- 어머니학교 47
비누나 비눗갑마냥
쉬이 더러워지는 게 삶이여.
처음부터 때가 껴 있던 게 아니라
골골 때가 탄 거지, 미움이니 원망이란 것도
무언가 다가와 몸 부리고 간 흔적 아니겄냐.
내가 끌어들인 거품이 가슴속 어둔 골짜기에
둥지를 튼 거지, 다음 몸이 들어와 살 부빌 것 생각해서
사금파리나 면도날은 어떻게든 파내야지.
주름살은 날카로운 게 빠져나간 자리여.
그 마음 골짜기 다스리는 데는 눈물만 한 비누가 없어야.
모든 강물의 원천은 눈물샘이여.
남몰래 넘치는 눈물 한 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