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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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유명한 작가인데 그래서인지 자주 접하지 않았던 베르베르다. 우연히 지인이 선물한 <나무> 라는 책을 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빼들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완전히 반해버렸다. 미래 지향적이면서 예언자적인 그의 말투는 현실 주의자의 면모를 갖춘 나에게 아연실색을 가져와야 맞는데 이상하게 빨려들었다. 그것이 예측을 통한 말하기가 아니라 마치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을 옮겨 적은 듯 뻔뻔하게 적어놨기 때문일까. 우리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문제 의식들을 비교적 꼼꼼한 장치로 끄집어 냈기 때문일까. 근 십년전에 적은 그의 글들은 마치 십년 후에 우리 생활에 진짜 일어날 것처럼 불안한 마음을 동반한다. 과학의 지나친 발달. 인간 생명의 문제까지도 개입하는 전능함들이 두렵기까지 하다. 그런면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작품은 <내겐 너무 좋은 세상> 과 <투명피부> 였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 에서는 집안에 있는 모든 가전들이 주인인 사람을 위해 헌신한다. 그런데 그들의 헌신은 플러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감정을 드러내고 인간의 감정을 인지하며, 말은 기본이고 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사실 처음에는 정말 이런 세상이 있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미 이런 세상에 굉장히 근접해 있다. 집 밖에서도 목소리로 집안의 전기를 차단하고, 방범을 가동하고, 애완동물의 밥을 주는 최첨단 IOT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런 환경에 질릴대로 질렸다. 조용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싶은데 알람시계부터 토스터기까지 계속해서 말을 시키고 각종 가전들은 자기네들끼리 들리도록 대화를 한다. 조용하게 먹고 싶은 주인공의 기분을 스스로 헤아린답시고 음악을 멋대로 바꾸고 티비를 켜기도 한다.

 침묵을 원했던 주인공은 너무 화가 났다. 그러다가 강도가 든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 강도는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모자라 주인공을 희롱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녀가 가지고 나간 가전들 때문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와의 키스가 떠올라 경찰에 신고하기보다는 데이트를 꿈꾼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차갑게 남자를 벽에 밀치고 그의 가슴을 연 후 인공 심장을 꺼냈다가 도로 넣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미 너도 기계이지 않느냐고.

  이런 충격적인 줄거리를 접하고도 흥미를 느꼈던 것은 인간이 기계로 변하고 있다는 것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면서 어떻게 이런 창의적 생각이 가능할까 하는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스스로의 마음에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꼴이다. 실제로 사람은 이제 의학이라는 이름 아래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렵다. 지금이야 신체 건강한 30대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기계의 힘을 빌어 삶을 연명할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인공 심장을 달거나 인공적 호흡기로 생명을 연명하는 환자는 종합병원만 가도 만날 수 있다. 베르베르는 인간이 기계화가 되는 것을 병원으로만 국한하지 않았고, 의료로만 속박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창의적이고 글에 힘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첫 글부터 이렇게 반했으니 다소 두께감 있는 이 책이 쉽게 넘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약 이 책의 단편 소설들을 영상화 한다면 가장 어렵고도 충격적인 영상은 바로 <투명피부> 일 것이다. 한 과학자가 벼룩부터 시작해서 쥐, 닭, 개 등 동물의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을 연구한다. 급기야 자기 몸에 실험을 하였고 온 몸의 장기와 핏줄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피부를 갖고 연구실에서 도망치듯이 나와 서커스단원이 되는 매우 황당무계한 소설이다. 이미 복제의 문제가 인간 윤리와 과학의 발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시대이다. 베르베르는 이미 10년전에 이 소설을 만들었다. 어쩌면 베르베르가 예측한 잔혹한 과학의 발달은 우리가 생존하고 있을 이 세대 속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신비롭다기보단 공포스러운 세상이다. 이런 과학의 부작용들을 재치있고 풍자스럽게 적어 놓은 글들이 단편 소설집 <나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무’ 라는 단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나무’ 라는 제목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 분명한 건 계속해서 발달만 하다가는 결국 우리가 만나고 싶지 않은 잔혹한 세계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조금 천천히 걸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놀랍고도 진지한 공상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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