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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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주머니에 송곳하나쯤은 가지고 산다. 누구는 다칠 때마다 얼른 꺼내 되려 상대를 찌르고, 누구는 거기에 송곳이 들어있는지도 모른채 꽉 쥐고 있다가 속으로 피를 철철 흘린다. 남에게 쉬이 드러내지 못할 비밀을 간직한 아이들은 어떨까? 그 송곳이 손을 뚫고 나와 허벅지를 찌르고 지혈도 안 되는 비참을 뚝뚝 흘리는 동안 그 아픔을 그대로 끌어안고 세상을 향해 발짝을 뗀다. 지금도 그런 목숨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실은 소설보다 더 거짓말 같으니까.

소설 속 아이들도 그랬다. 부모가 서슴없이 물려준 고통의 조각들은 아이들을 잘못이 아니건만 아이들은 비통한 울음을 타고 벼랑 끝에 섰다.
가정폭력범인 아버지를 찌르고 감옥에 간 엄마와 헤어져 이모네 집에 사느라 전학을 온 채운, 암에 걸린 엄마가 여행 중 사고사하여 고통스러운 지우, 역시 투병 중이던 엄마가 죽고 죽음을 본다는 비밀을 간직한 채 주변인들과 접촉하지 않는 소리. 이 세 명의 청소년은 산발적이지만 공통의 분모를 갖고 독자에게 성큼 다가선다. 서롤 구원하는 마음으로.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되는 것...
p.221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에 머리통이 깨질 수 있는 것은 비단 가난뿐이 아니다. 모든 상실이, 아니 어쩌면 모든 인생이 그럴 수 있다. 다만 깨진 머리통을 붙잡아 치료해 줄 무엇이 필요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런 구원이 쉬이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부모가 그늘이 되어 줄 수 없는 친구들에겐 작은 결핍이 겉잡을 수 없는 재난이 되어 버리고 영영 회생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른은 필요하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아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아이들 자신이다. 나의 소중한 반려동물을 돌보려는 마음에서 살아갈 의지를 얻는다.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돕겠다는 마음에서 실마리가 얻어진다. 어떨 때는 어른들이 가만히 있어주는 것만으로 아이들 스스로 길을 찾는다. 그럴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

성장은 '고통을 지나는 순간'과 같은 말이다. 도마뱀 용식이가 허물을 벗고도 용식이가 되듯이 아이들도 고통의 순간을 지나며 점차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더 자라야 할 아이들이지만 어른보다 용감하게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애도 위에 살포시 올린 손의 온기가 서로를 구원하면서 보다 독립적인 세상으로 성큼 내딛고 있다. 그동안 송곳 뒤에 감춰두고 울음대신 피를 흘리던 아이들이 애처로워 몇 번씩 울었다. ㅠㅠ 누가 별로랬어!!!

이 소설은 마치 1편인 것처럼, '벗 알러뷰'가 될 2편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끝났다. 그들의 이후를 더 알고 싶지만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어디선가, '너 왜 그런 웹툰을 그렸어!',' 용식이는 왜 죽었니' 하며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 낼 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애처롭지만 이전보단 따뜻하게 또 하나의 허물을 벗을 날이 될 것이다. 제대로 돤 애도의 순간이 끝난 후에 그 때는 모두가 또 다른 성숙한 힘을 얻는 법이다. 그것은 용서일 수도 있고 이해일 수도 있지만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

다만, 궁금한 점은 있다.
굳이 소리가 '초능력'을 소유해야만 했던 이유는 뭘까?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며 성장한다는 건가, 아님 그것이 비밀이 되어 자기를 찌르는 걸까? 궁금했다. 이거이거 독서모임을 해야하는 건가.
채운의 엄마가 아들 대신 감옥에 간 후 아들에게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는 이유는 뭘까? 아들이 자수할까봐 겁이나서 지어낸 거짓말 일까, 아니면 정말로 채운의 아버지가 죽자마자 아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어서였을까?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간에 '누구의 자식도 되지 말라'는 채운 엄마의 편지를 보고 나는 울고말았다.
그래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읽어도 모르겠다. 아니면 선우 아저씨처럼 규칙을 깨고 모두 진실이었던 것은 아닐까? 어차피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모호하다. 이 중 몇개가 거짓말이라도 그저 인내해야 하는 게 또 삶이고. 구원은 그런 것이니까. 잘 견디는 힘.

잘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안이 깃들길!
읽는 동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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