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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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지켜내야 하는 건 무겁다. 처음부터 혼자라면 좀 나을까? 줄곧 함께라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어쩌다 혼자가 되고나면 몸서리치게 더 외롭다. 절대 고독을 이기고 내가 지켜야할 세계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다. 나는 그런 세계가 있을까? 있다손 치더라도 윤옥처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하고.

국어 교사 정윤옥은 뇌병변 장애 동생을 잃은 기억이 있다. 대학 때 운동권 선배를 지켜준 경험이 있고, 교사 초년시절에 촌지를 거절한 경험이 있고,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 학교를 상대로 저항한 적이 있다. 노조에 가입했다가 파면당한 적이 있고,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고, 풀뿌리 서점을 운영한 적이 있고, 선배와 제자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아차린 적이 있다. 그리고 수연의 아이를 맡아서 기른 적이 있다.

나이가 든 윤옥을 밀어내려는 학교와 학부모가 있지만 윤옥에겐 돌봐주고 싶은 학생이 있고, 문제가 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은 열정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은 국어 교사 정윤옥의 일대기임과 동시에 돌봄과 지킴 사이에서 날카롭고 매몰찬 시대를 견뎌내야 했던 어른의 이야기다. 너무 어려서 지키지 못했던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같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시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윤옥, 젊은 교사시절 지켜주지 못했던 학생 수연에 대한 죄책감으로 지금 만난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정윤옥, 옳음을 향한 수고를 절대 모른 체 하지 않은 교사 정윤옥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정 선생님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정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라고 나쁜 사람으로 태어났겠어요? 아닙니다. 다들 사느라 그러는 거에요.

p.155

다들 사느라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말은 비단 윤옥을 괴롭히는 빌런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착한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부지불식간에 부끄러움의 복판으로 내동댕이처진다. 사느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여기, 정윤옥보다 더 큰 죄책감으로 또 다른 삶을 짊어진 윤옥의 엄마가 있다. 나는 정윤옥에게도 그랬지만 그 엄마에게 더욱 마음이 갔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없다지만 누가 그 엄마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남편은 가산을 탕진한 채 죽었고, 혼자 기대 앉지도 못하는 뇌병변 아이를 포함해 자식 둘을 건사해야하는 여성가장이 윤옥의 엄마였다. 한 집안의 재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가혹했다. 사회가 모른 체한 양육과 교육의 문제는 형벌에 가깝다. 하지만 그 엄마는 아이를 찾아냈고 더 큰 참변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바쳤다. 가슴이 아팠다.

소설은 육십이 된 정윤옥이 차가운 도로에서 오래 방치 돼 1년을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가 세상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왜 정윤옥의 죽음까지 다루었을까? 무사히 퇴직하고, 상현과 나이들고, 새로운 가족을 안아보도록 그리지 않았을까?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독자에게 이미 그녀의 부고를 알리고 거꾸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이유가 알고 싶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생각도 났는데 구조는 비슷하지만 이 책은 영 웃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아마도 그것이 현실과 비슷해서일 것이다. 더 나아지는 쪽으로 가길 원하지만 그새 어긋나버리고 마는 인생과 비슷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을 보았다. 기어이 승리하고야 마는 정의를 꿈꾸었다. 정윤옥은 홀로 싸우다가 갔지만 따뜻했던 마음이 오래도록 도시 이곳저곳에 머물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생들 사이에서는 차갑고 불편했을지 모르지만 학생 곁에 책상을 두고 오래도록 머물렀던 눈길이 아이들에게는 평생 따뜻함으로 남을 거라고 믿었다. 처음 마음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본 적도 없는 정윤옥에 대한 그리움이 내내 남았다.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세계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사람을 살리는 세상이어야 한다. 시절에 따라서, '여의'에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세계, 개인의 영달을 위해 타인을 죽도록 모른 척하는 세계여서는 안된다. 정훈의 세상은 무너지고 윤옥의 세계가 도래하길. 수연처럼 포기하지 않길, 지호도 숨 쉬는 세상이 오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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