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냄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9
김지연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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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후유증이 후각과 함께 미각을 잃는 것이라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걸렸을 때 정말 냄새가 나질 않아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태초의 냄새]도 그런 내용이다. 코로나에 걸린 K가 냄새를 잃어버린 이야기.

출판사에서 '후각을 잃는다면 그래도 기억하고 싶은 냄새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나는 김치찌개 냄새라고 대답했다. 순식간에 허기지게 하면서도 식탁의 온기를 온전하게 떠올리게 하는 음식으로 나는 자주 김치찌개를 꼽는다. 그래서인지 그 질문이 도착하자마자 김치찌개가 생각났다. 하지만 소설은 김치찌개의 온기보다는 모밀국수보다 더 차가운 어떤 마음이 흐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면 무슨 감각이든간에 고장나기 마련이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떠난 사람에 대한 부채감이 남아, 곁에 있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한다. 그렇다고 싹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사랑에 전념하자니 이미 뻥뚫려 시린 가슴을 어쩌지 못하겠다. 그래서 그를 기억할 무언가를 남겨두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기억할 수 있는 게 후각 밖에 없는 지금 그것마저 잃고 겨우 맡을 수 있는 냄새란 지독한 악취뿐이니 이 상황을 어쩔까.

하지만 주인공 둘이 처한 나쁜 상황은 코로나로 후각을 잃은 것뿐만이 아니다. 죽은 S를 사랑과 우정이란 이름으로 공유했던 상황과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둘의 관계도 소설의 서늘한 감각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코로나 시국에 집에 있어야 했는데 둘만의 여행을 감행한, 그마저도 자꾸 어긋나버려 하다못해 준비해 간 삼겹살 하나 제 때 구워먹을 수 없었던 P와 K의 상황은 계속 불안하다.

그러나 문득 등장한 남자 청소년은 이상한 환기를 이끌어낸다. 조모와 둘이 사는 와중에 코로나에 걸려버린 학생은 격리라는 방역지침을 어기지 않고자 폐건축물에서 며칠밤을 보낸다. 집은 너무 좁아서 노쇠한 할머니가 병이 옮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건물은 고2짜리 아이가 홀로 밤을 보내기엔 위험하다.

그러고보니 격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 남아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경제학박사 이상헌은 자신의 저서에서 '바이러스의 물은 높은 곳에는 미치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 처절하게 적신다'고 말했다. 우리가 코로나 우울증을 말할 때 안전을 담보로 하는 비참이 많은 곳을 적시고 있다는 걸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김지연 작가의 소설은 평범하게 보이지만 읽기를 마칠 때면 어딘가 건드려져 읽기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술수(?)가 있다. 강물에 발을 담구고 있지만 어제의 강과 오늘의 강이 다른 것처럼 같은 데 다른 어떤 지점에 나를 데려다놓고 생각의 배신을 요구한다. 그 바람에 나는 무방비로 소설을 읽다가 그만 가슴이 찌릿하고 만다. 이번에도 그랬다.

유령냄새 때문에 방황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누가 붙들고 놔 주지 않는 것처럼 답답했다. 소설가는 그것을 환후라고 불렀지만 나는 상실이라고 부르고 싶었고 괜히 슬펐다. 하지만 김지연 작가의 소설은 마지막엔 늘 희미한 희망이 있다. 나는 K가 애쓰고 있다고 믿었다.

핀시리즈 소설선에 김지연 작가가 이름을 올려서 정말 너무 읽고 싶었는데 기회가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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