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다 컸다고 버럭버럭 대어 들 때 하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한번씩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했다. 어떻게 키웠는가 하니 스물 넷 어린 나이에 낳아서 길렀다. 나 중심의 삶에서 애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고 내 커리어 보다 누구 엄마 경력 쌓고 살아 온 시간이 더 깊고 짙었다. 그런 삶은 17년동안 지속 됐다. 그것이 생명을 가진 후에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실수로 낳았다는 말이잖아."
사춘기 온 탑 찍는 아들을 보며 여느 때와 같이 던진 말- 그러니까 내가 널 어떻게 낳...- 에 그날따라 돌아온 칼날 같은 대답에 갑자기 멍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지. 실수로 낳은 건 아니지 이누무 자식이. (대답도 안 듣고 휙 가버렸다)
청소년 소설 [얼음이 빛나는 순간]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은 누구나 시절을 보내며 선택의 버튼을 누른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인생의 새로운 장면은 펼쳐지고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 때의 장면은 사라지고 만다. 애초에 없었던 장면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한 면을 선택했을 뿐이다. 선택은 사람을 나아가게 한다. 바로 후회하고 머뭇거리는 선택일지라도 결국엔 어디론가 나아간다. 돌이키는 건 대체로 어려우며 결국에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혹 누군가 내 버튼을 마음대로 누르려고 한다면 짙은 열패감에 휩싸여 원망하게 될 것. 결국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어한다. 마치 가능할 것처럼 도망칠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소설은 스스로 한 선택에 기꺼이 절망하지 않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기숙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때로는 아버지의 간섭을 피해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기숙학교에 온 동창생의 이야긴가 보다 하고 읽으며 방심했다. 그러다 충격적인 반전에 놀랐다.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 더 놀랐다. (아니 작가님 이렇게 저를 후려치시깁니까...ㅋㅋㅋ)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누군가 내게 인생에 대해 깨달은 단 한줄을 말하라고 한다면 '부딪치고 깨지지 않으면 절대로 어른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겠다. 이제 겨우 마흔일 뿐이지만 팔십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대답일 것 같다. 성숙의 순간은 반드시 파쇄의 과정을 거친다. 얼음이 빛나는 순간은 녹을 때다. 얼음장은 깨지며 빛을 발한다. 마지막 장면들을 위해서 소설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장면은 독자를 톡톡히 위로 하기도 한다. 비틀린 순간들을 겪어내고 빛나는 한 때를 맞이하는 것은 비단 어린 학생들만이 아니다. 나는 이 소설을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 인생 소설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