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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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마거릿 애트우드의 이름 때문이다. 디스토피아 소설로 유명한 애트우드의 작품을 서너권쯤 읽다보면 그녀의 팬이 된다. 그런데 단편을? 게다가 지금 당장의 것을 썼단 말이지? 흥미가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도서소개

이 책은 29인의 소설가들이 코로나 시대를 제제로 하여 쓴 단편 소설들을 엮었다. 1353년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조반니 보카치오는 100편의 이야기를 써서 [데카메론] 이라는 책을 집필하였단다. 7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보카치오에 대한 오마주로 29인의 작가가 이야기를 쓴 것이다.



"아주 최근의 나날들, 자유롭고 아무 문제도 없던 화창한 나날들조차 이제 망각되기 직전의 향수 어린 먼 기억들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
p.302



■지독한 상징성

여기 나온 단편소설들은 모두 펜데믹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상징적이다. 그래서 어떤 소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 너무 짧고 축약적인 상황 설명들만 있어서 고개가 갸우뚱 했다. 두번씩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아마도 작금의 현실을 반영하다보니 상징적으로 표현한게 아닐까?

가장 기억에 남는 상징은 버스에 관한 것이다. 버스가 목적지로 가다가 갑자기 어딘가에 갇히게 되는데 그건 바로 시간에 갇혀버린 것.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조급하다. 코로나 상황으로 발목이 묶인 우리의 일상을 아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해하는 상징성도 있고, 그렇지 못한 모호한 표현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다 좋았다. 작가들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소설을 썼을까 싶기도 했고, 보카치오가 했다는 그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신선했다!



■코로나를 대하는 자세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시간이 하세월같다. 2년전의 삶이 까마득하다. 이제 마스크는 문신처럼 돼 버렸다. 어떤 사람은 너무 익숙해져 버렸고,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돈을 벌며, 어떤 사람은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세대. 코로나로 삶의 방식은 무너져버렸다. 주저 앉아 울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소설 곳곳에 드러나있다. 소설가들이 만들어 낸 세계는 거대하면서도 세밀하다. 등장인물의 마음이 잘 드러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래서 작가구나 싶기도 했다. 통찰력이 엿보이는 글들도 많았다. 공상과학적인 소설도 눈길을 끌었다. 단연 마거릿 애트우드가 최고였지만!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 제목이다. 첫 장면부터 우주선을 연상하는 어떤 곳에 사람들이 격리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내하는 듯 말하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애트우드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나는 SF물이다. 이 소설은 두가지 이야기가 혼재하는 액자소설인데 내부의 이야기는 좀 괴기스럽다. 하지만 재밌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 이야기를 강렬하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펜데믹 시대야말로 우리의 삶을 강렬하게 뒤흔든다. 일상의 것을 잃어버렸다. 기본적인 만남을, 애정을, 질서를 전부 먹어치우고 있다.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 자매처럼.



두려운 시대를 살다보면 이야기가 필요한 법이다. 재밌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설이 있으면 좋겠다.





"1001명의 사망자는 1001명의 밤과 같았다.
그것은 1000건의 죽음과 한 건의 죽음이었고
무한한 죽음에 하나를 더한 것이었다."
p.300

#데카메론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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