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진의 아버지 염무칠이 지주 최씨네에서 꼴머슴살이를 벗어나 읍내의 숯가게에 취직한 것이 열여섯 살 때였다. 염무칠의 아버지는 낙안벌의 토호 최씨네의 가복이었다. 국법에 의해 노비제도가 폐지됨과 동시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다른 대부분의 노비들이 그렇듯 염무칠의아버지도 경제적 독립을 꾀할 수가 없었다. 노비문서만 불살라졌을 뿐생활조건은 예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법에 의해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소작농으로서의 자립경제를 도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땡전 한 닢 없는 신세로 어디로 거주를 옮길 것이며, 이미 소작을 부치고사는 작인들도 농지가 줄어들까 봐 급급하는 판에 소작인들 어디서 구할 것인가. - P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