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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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에라자드의 천일야화를 이야기하길래 엄청난 기대감으로 출발한 책이다.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읽고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느낌이 달라졌을까는 몰라도 나에게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한 것은 '마계' 에 대한 너무 잦은 설명과 마계와 흑마신의 대립이 와닿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판타지를 차용한게 아니라 아예 판타지로 칠갑을 해서 불편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었느냐!
문장이 너무 좋았다.
내용이 별로라면서 인덱스는 수도 없이 붙였다.
타고난 이야기꾼임에도 분명하고, 탁월한 문장가임에도 분명한 살만루슈디!
영감님 제가 [한밤의 아이들] 먼저 읽고 다시 오겄습니다!!ㅋㅋㅋ

서기 31세기!

정원사 제로니모는 갑자기 지면에서 몸이 떠오르는 괴질(?)에 걸린다. 그리고 한 젊은이는 벽이 뚫리며 자기가 상상했던 외계인이 등장해 접촉을 시도한다. 또, 한 아기가 버려졌는데 그 아기를 데려다가 키우거나 안아준 많은 사람들의 피부가 괴사한다. 손끝에서 번개가 나오는 건 어쩌고!



이들은 본인들은 모르지만 마족의 후손이다. 귓불이 없는 것이 특징. 그들은 마계의 공주 두니아가 800년전에 낳은 자식들의 후손이다. 마족은 그저 존재하는 지루한 족속이며 성교를 좋아하는 (이 장면은 왜 필요한지 아직도 의문) 아주 광란의 족속들인데 인간들은 또 사랑해가지고 흑마신으로부터 그들을 지키려고 한다.

이야기 전개는 웃기게 흘러간다. 두니아가 자기 남편과 엄청나게 닮았다는 이유로 자기 후손인 제로니모랑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800년전에 죽은 이븐루시드는 아내 두니아의 행각을 보며 지옥에서 열받아한다. (이븐루시드는 사람이 아니라서 두니아처럼 불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싸움. 마계와 인간계를 잇는 곳이 뚫리면서 지구를 지배하려는 흑마신들 때문이다. 정원사였던 제로니모는 그 싸움의 중간에, 두니아는 그 싸움의 전면에 서 있다. 결말을 말할수는 없지만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영웅들의 등장을 좋아할테니 궁금한 사람들은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살만루슈디를 잘 모르지만 촌철살인인 것은 확실하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비판적인 시각으로 냉철한 문장을 써서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애쓴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문장들이 좋았다. 갑자기 솟아나는 판타지보다는.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데 이 책에 고야와 르네마그리트의 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고럴 때는 또 눈이 반짝반짝해서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살펴보곤 했다. 특히 르네마그리트의 <골콩드>는 당연히 하늘에서 비처럼 신사들이 내려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땅에서 솟는 것이다. 헬륨풍선처럼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해서 탄성을 자아냈다. 획기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데는 살만루슈디 영감님이 탁월한 재능을 가지신 것 같다. 아마 책의 여러군데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듯!

역사와 신화, 현실과 환상,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유쾌하고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천재적 이야기꾼 살만 루슈디식 천일야화 [2년 8개월 28일 밤]!

작가가 인도사람이라 인도에서는 이 이야기가 허용되지 않아서 목숨걸고 쓴 이야기라고 하니 대단할 따름이다. 언젠가 그의 다른 소설들을 더 읽어보고 차별화된 마음으로 다시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2년8개월28일밤
#셰에라자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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