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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ㅣ 클래식 클라우드 26
이길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2월
평점 :
나는 크리스찬이다. 클래식클라우드에서 루터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을 의심했다.
마르틴 루터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이기 때문이다.
놀랐다.
인문학에서 종교를 다룰 땐 그저 역사의 획 수준으로, 제국주의의 도구 정도로 다루기 때문에
명사들의 발걸음을 찾아 떠나는 클래식클라우드에서 성직자 편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거의 선지자 수준으로 종교개혁을 이끈 혁명가 마르틴 루터에 대해서 덜 크리스찬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을지 염려하면서 읽었다.
마르틴 루터가 태어나기 전 중세 종교계는 썩을 대로 썩어있었다. 요즘 철종 나오는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는데 배경이 되는 세도정치 60년의 세월과 닮아 있었다.
교황을 위시한 성직자들이 권력을 잡고 황제 위에 군림하였다. 교회는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됐다. 민중을 개돼지로 알았으며, 그들이 계몽할까봐 두려워서 어려운 말로 아주 적은 수의 성경을 자기네들끼리 읽었다.
교황과 바티칸의 도덕적 해이는 상식 수준을 넘었다.
게다가 페스트가 번졌다. 장례를 진행해야 하는 성직자들은 자연스럽게 노출이 자주 됐다. 그래서 많이 죽었다. 교황은 성직자를 우후죽순 뽑았고, 사제의 성품이나 실력이 되지 않는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사치와 향락이 심해져서 교회에서는 면벌부를 팔았고, 성상을 세웠고, 성물이라며 돈을 받게 했다.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류의 미신을 교회에서 자행하고 있으니 내 생각에 하나님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그리고 루터가 태어났다. 루터는 자라서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명강사가 되었다. 그러나 자꾸만 파고들수록 신앙생활에 환멸이 있었다. 성서대로 살아야 하는데 교회가 정치하는대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이런 신앙은 잘못된 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만들었다. 그 유명한 95개조 논제를!!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성교회 문에 라틴어로 쓰여진 95개의 비판하는 조항이 붙었다.
면벌부 판매를 반대하고 죄와 회개의 문제는 오직 신과 자신만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천명하였다.
루터는 이 일이 있은 후 거대 세력의 미움을 샀다. 그러나 그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중세의 끝자락에서 근대의 문을 열었다는 말처럼 진짜 그랬다. 때론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끝내 옳은 것을 향해 나갈 수 있었다.
칭의와 만인사제주의가 올바른 신앙의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스도인의 '의' 란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에서 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루터는 믿음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읽음' 에서 왔다고 말한다. 성서를 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신앙에 대해 깨우칠 수 있었다.
루터는 그 선봉에서 어려운 라틴어 성경을 번역해 독일어로 출간했고, 값을 현저히 낮춰서 누구나 성경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읽으니 앎이 되었고, 앎이 또 행함이 되었다. 이 일에는 구텐베르크 활자의 영향도 컸고, 당시 유럽이 처한 상황도 잘 맞아 떨어졌다.
그 중세의 끝자락을 찾아가는 길에 이길용 교수가 있었다.
저자의 글은 처음 읽어본다. 그런데 문체가 좋다. 술술 읽힌다. 어쩌면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어도 석가의 생애와 관련된 글을 얼마든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러니 논크리스찬이어도 루터의 발자취를 얼마든지 즐겁게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여정은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해 두었다.
루터는 성직자이기 전에 선각자였다. 우매한 대중을 일깨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런데 어쩌면 성직자라는 이유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신앙고백서가 아니라 철저히 위인전의 형식을 띄고 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번뇌 속에서 결단하였고, 그것이 근대의 문을 여는 대단히 중요한 열쇠가 됐음을 배우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누구나 접할 수 있고, 흥미롭게 다가 갈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