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28가지 세계사 이야기 : 사랑과 욕망편
호리에 히로키 지음, 이강훈 그림,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기회가 닿으면 꼭 읽어보려고 하는 책이 있는데 미학에세이와 세계사다. 특히 몇가지 사건들로 구성된 이야기 형식의 단편적인 세계사들을 좋아한다. 특별한 사건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도 좋지만 유명한 인물들의 몰랐던 뒷 얘기나 처음 알게된 인물을 탐구하는 것도 좋다. 그러니 이 책이 나를 사로잡지 않을 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개구쟁이 같은 그림이지만 자세히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림들! 막상 열어보니 엄청 그로테스크 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또 그런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 법 아닌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부터 명사들의 다소 변태적인 욕망까지!!!

너무 재밌었다.

28가지 이야기가 있다. 책을 딱 덮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몇 편을 골라보면 역시 피카소를 빼 놓을 수 없다. 피카소의 그림이야 상당히 많이 접했고 예술 사조적으로 대충 알고는 있지만 이정도로 여성편력이 심했을 줄은 몰랐다. 아니 중년 아저씨일 때도, 할아버지가 돼서도 애인이 모두 이십대면 어쩌라는 겁니까. 거기에다 애 낳고 살기까지 하고 버리고. 그나마 한 번은 버림받았다고 하니 좀 후련한데 그러면 뭐해 또 여성을 갈아치우기 바빴는데!!! 성욕이 해결돼야 작품이 나온다는 말도 안되는 자기만의 루틴을 가지고 아주 몹쓸 인생역사를 써내려간 피카소의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코코샤넬 이야기다. 나는 지금까지 샤넬이 얼마나 멋진 여자였는지 같은 여자로서 부럽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왠걸, 그게 아니었다. 루이제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 속 여주인공처럼 남성에게 기대지않고 독야청청 살아왔었겠거니 싶었나보다. 나의 환상을 완전히 박살냈다. 그녀는 남성의 재력과 자신의 재능을 적절히 섞어서 한발씩 나아갔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신여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시 남성의 재력에 기대지 않고는 혼자 커리어를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말년에는 조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는데 내가 잘 알아보지도 않고 착각 속에 살았다는 생각에 조금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죽을 때 하녀에게 '잘봐 죽는 건 이런거야.' 라는 말을 남겼다니 희한하고 특이한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뭐 사생활이 중요하나 그녀의 업적이 길이 남은 것은 확실하니까 뭐 ㅋㅋ

또 기억에 남는 사람은 루돌프 황태자의 동반자살 사건이었다. 나는 루돌프 황태자는 잘 몰랐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는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탓에 풍운아처럼 살다가 간 사람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살을 결심하면서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 메리를 자살상대로 결정한다. 메리는 황태자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아쉬운 마음이다. 황태자 나쁜놈!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는 살게 두고 별로 안 사랑하는 여자를 데리고 같이 죽다니. 게다가 총으로 그녀를 먼저 쏘고 지도 죽었다니까 참 독하기 짝이없는 사람이다. 희대의 동반자살로 남았기에 이 <사랑과 욕망 편> 에 엄청 잘 어울리긴 하지만 여자로서 뭔가 기분 나빴던 것은 사실이다 ㅎㅎ

또, 모차르트의 처가 악처로 소문났었다는 것과 그녀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편을 들어주는 저자의 말하기 방식도 재밌었고, 아인슈타인의 뇌를 200조각으로 잘랐다는 말에 경악해 그 페이지로 달려가기도 했다. 차례만 봐도 너무너무 흥미로우니까 궁금한 사람은 직접 만나보길 바란다.

그래도 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외제니였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와 붕괴되는 제정을 보면서 철저히 무너졌던 여잔데 본인의 삶에 대한 회의와 일말의 희망을 개인의 영달에 쓴 게 아니라 여성의 인권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노력하고 여성도 바칼로레아 시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고 한다. 물론 죽음도 그녀를 피해갈 수 없었지만 아흔이 넘는 나이를 사는 동안 풍진 세월 속에서도 끝내 의로운 일을 했다는 것이 가슴에 남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존경심이 확 드는 그런 사람이라 소개하고 싶었다.

이 밖에도 재밌는 내용이 많다.

저자 호리에 히로키의 저서는 이 것이 처음인데 이렇게 참신한 시각을 가진 사람의 저서라면 다른 책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번역할 때 '추정된다' 라는 동사가 너무 많이 쓰여서 읽는데 부자연스러웠다. 물론 원서를 보지 못해서 어떻게 번역이 된건지 모르지만 약간 의역처럼 느껴졌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다.

세계사를 알고 싶지만 지루한 사람들에게 한 챕터씩 읽어보라고 권유해주면 좋을 것 같다. 역시 예나지금이나 가십거리가 제일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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