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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평점 :

나는 드가가 인상주의 화가인 줄만 알았다. 잉? 그런데 아니란다. 그건 그가 밖으로 돌아다니며 풍광을 담는 게 아니라 실내로 들어와 앉았다. 도시의 면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동하는 여성이나 발레 공연 등 사람과 현실을 그렸고, 정적인 자연을 그리는 것이아니라 역동적인 모습 자체를 묘사했다. 빛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인상주의라고만 규정지을 수 없는 이유다. 오모나, 내가 알던 드가가 아니네?
드가와 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벨에포크 시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드가는 이 시기 속에서도 사람들의 허무와 고단을 포착해냈다.
에드가르 드가는 1834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1917년에 별세할 때까지 주옥같은 회화를 남겼다. 드가는 마네와 교류했고, 사진과 판화와 조각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그림의 오류들이 발견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드가는 그림이 가진 고유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상당히 애썼다. 또, 유화를 즐기는 회화가들과는 달리 파스텔을 즐겨썼다고 하니 그 점도 신기했다.
드가는 미혼으로 살았지만 여성을 많이 그렸다.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아름다움에 주목한 것 같았다.
작가는 마네보다 드가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마네 팬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다. 갑자기 피리부는 소년이 생각나...)
드가는 역설적인 예술가다. 인상주의 그룹의 핵심이면서 인상주의에서 벗어난 듯한 그림을 그렸고 (본인을 사실주의 화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혁신적이기도 했지만 전통을 고수하기도 했다.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체제를 미워했고, 루브르에서 공부했지만 오르세에 더 많은 작품이 있다. 전통적이면서도 새로운 사람, 파리를 닮은 사람.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무엇에 탐닉하고 있을까? 늘 제대로 바라보고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던 드가의 생각은 당시의 예술 사조에서 썩 반기는 구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어딘가 방향성을 상실하고 어딘가 무의미한 가족 사진 앞에 직접 서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 중에 하나인 <콜코르드 광장, 르피크 자작과 딸들>p.135 이다.
마치 몰래 찍은 자연스러운 사진 같지만 어딘지 서글픈 그림이다.
우리는 거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드가는 첫번째 인상주의 작품 전시회에서 실패하기도 하고 회원들과 의견이 갈려 싸우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서로 개성이 강하니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모네와 르누아르보다 형이라고 하니 뭔가 어색하다 ㅋㅋㅋ 나이가 제대로 기록돼 있는 것도 신기하고. 1830년대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회화의 한계와 거짓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았다. 그 유명한 제리코의 <엡섬의 경마> 와 마네의 <블로뉴 숲의 경마> 는 사진술의 발달 이후 그 폭발적인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거짓말 회화 인 것처럼 돼버렸다. 말은 실제로 그렇게 앞 뒤 다리를 쭉 펴고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뒷다리가 접혀야 정상이다. 미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촬영한 경주마의 사진이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것이다. 드가의 그림은 좀 더 나아보인다. 다른 사람들을 찰나의 스피드를 그릴 때 드가는 천천히 멈추는 영속성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런식으로 비교해주니 너무 재밌었다. 드가는 화가지만 점토나 밀랍으로 형상을 만드는 조소작업도 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독하게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갔던 드가. 나는 드가가 이렇게 다채로운 사람인 것을 처음 알았다. 역설의 예술가라는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p.147 이라는 회화를 다른 예술에세이에서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 책에 쓰인대로 실존인물이 자기 얼굴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겠다 진짜) 아침부터 몰아치는 알콜중독자의 묘한 눈과 그 기운. 공기의 무게까지 그릴 줄 아는 화가라는 말에 상당부분 공감한다. 그 예술 에세이를 볼 때 그 그림이 드가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었겠지만 금방 잊었다. 그런데 그림을 보니 생각이 확 난다. 드가의 그림이 강렬했던 것은 사실이다. 예술 시류의 중심에 있었지만 언제나 당당한 이단아, 드가.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토록 상세하고 읽기 좋게 서술 해 놓다니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서평을 쓰면 늘 서평이 길어진다. 소개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다. ㅎㅎ
소장 욕구 뿜뿜인 이 책은 벌써 스물네번째 책이다. 작가, 화가, 음악가, 철학자 등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면서 그의 삶과 작품을 조명해 보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정말 좋다.
유튜브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고 하니 책을 읽고 한 번 씩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