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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다양한 유전/ 강화길/ 아르테
서로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함께 경험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p.17
이 책은 구성이 특이하고 좀 어렵다.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게 무슨 소리지 싶을 수 있다. 이해한바로는 해인마을이라는 깡시골에 사는 두 소녀가 대학에 안정적으로 붙기위해 백일장에 참가하고 싶어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민영과 진영은 모두 백일장에 참가하고 싶어한다. (안타깝게도 학교에서는 단 한명만 내보내준다. ) 그래서 서로 글을 지어 학우들에게 보여주고 누구 글이 좋은지 판가름하기로 약속을 한다. 그리고 끼어드는 스토리들은 다양히다. 교통사고가 난 여자이야기, 옹주로 태어난 여자의 일생이야기,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는 한 여자의 이야기, 가난하고 무능한 남편과 결혼해 힘들게 살아온 여자이야기 등.
누구의 이야기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민영의 이야기고, 진영의 이야긴지 알지 못하겠다. 복잡하고 지난한 꿈을 여러편 연달아 꾼 기분이다. 잦은 변주 속에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숨이 너무 짧아서 속상했다. 더 깊이 빠지고 싶은데 맛만 봤다고 할까? 그러나 썰매를 탄 것처럼 쭉쭉 미끄러져갔다. 더 읽고 싶었다. 손안에 잡은 책장이 수시로 넘어가는 건 비단 책이 작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도서 설명에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감정의 기록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겪은 수치심, 모멸, 행복, 고통, 괴로움, 궁금함, 열병, 배신, 치욕 등의 감정들이 고밀도로 들어차 있는데 기록하지 못해서 변비처럼 꽉 들어차 상처로 발현돼 있다. 강화길의 소설은 다르다. 여자들의 삶이 문자로 기록돼 '너도 그러니? , 나도 그렇다.' 하고 있다. 무거운 이야기지만 덜외로운, 그러니까 결코 혼자가 아닌 이야기들이 묵직하게 담겨있다. 누가 '작은 책' 이라고 했을까.
누군가는 불쌍하다는 말을 쉽게 했고,
또 누군가는 삶이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소리를 지껄였다.
가능한 아프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시련이 삶을 더 단단하게 해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p.88
소설은 숙명처럼 삶을 비춘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여성의 유대와 연대를 말하고자 했을까, 아니면 교감을 말하고자 했을까, 아니면 의지와 운명을 말하고자 했을까. 모두 다 일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양한 인생을 만나며 내 삶을 정돈하고 정립해 보는 것은 대단히 필요한 일이며, 소설로 만났기에 물리적 흉터없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강화길 작가의 세계관에 대해서 불쑥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것은 내겐 이 소설이 첫소설이기 때문이다. [화이트 호스]도 사두고 못 읽었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이 책이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아무튼 가벼운 책 무겁게 잘 읽었다.
아르테 출판사에서는 한국 소설선을 '작은책' 시리즈로 함께 하고 있다. 이미 7권의 작은 책이 출간됐고, 강화길의 책은 여덟번째다.
작은책 시리즈는 인간성을 탐구하고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소설의 본질이라고 본다. 그래서 더 많은 소설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이 작은책들을 출간하고 있다.
게다가 이 소설들은 책을 사랑하는 셀럽들의 목소리가 녹음된 오디오북으로도 들을 수 있다. 특별히 [다정한 유전]은 색깔있는 배우 이유영이 낭독을 해 화제를 낳고 있다. 감상을 원하는 독자는 <팟빵>, <밀리의 서재>,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소리책으로 함께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