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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 - 여인의 초상화 속 숨겨진 이야기
이정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9월
평점 :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에 빛나는 예술 인문학서 [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를 읽었다. 이 책은 읽었다기보다 보았다고 해야 어울린다. 왜냐하면 미술 책이기 때문이다. 명화 속에 숨겨진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표지도 종이도 너무 근사하다. 자꾸만 쓰다듬게 하는 책이다. 표지에 반하고, 그 감촉에 반하고, 내지의 질에 반했다. 그리고 내용에는 더 더 반했다!!
이정아 작가는 기자출신 칼럼니스트로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읽어보니 글 참 잘쓴다. 문장이 매끄럽고 읽기에 좋은 형태를 가졌다. 그래서 술술 읽힌다. 그런데도 책장을 넘기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들이 세세하게 아름다웠고, 도도한 청춘의 숙녀처럼 나를 빤히 응시한채 그저 놔주질 않았다. 한장 한장 정성스레 넘겼지만 그 그림들이 죄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술 인문학서를 자주 읽다보니 속에 담긴 그림들이 자주 겹치기 마련이다. 특히 페미니즘을 노래하려는 책은 <목을 베는 유디트> 나 프리다칼로의 그림들 등 여류화가가 그린 그림이 아주 비슷하게 올라오기 다반사. 그런데 이 책은 특이하게도 여성 화가가 그린 그림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림 속 여성' 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예상한 바가 보기좋게 빗나가고 몰랐던 그림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우와, 어머를 남발하며 천천히 음미하였다.
젖가슴이 오롯이 드러난 것은 다반사고 여성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그려져있다. 아무리 예술적 감각을 소양코자 보무도 당당히 맞서고 싶지만 벗은 몸은 뚫어져라 보기가 어려웠다. 내숭이라고 해도 할말 없지만 아직 나의 감성으로는 그랬다. 그랬기에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류들은 좀 불편한건 사실이었다. (어린이를 보여주기가 민망한 것은 뭐 나만의 생각은 아닐거다) 여성의 나신(裸身)을 가지고 꼭 세상의 기원이니, 탄생 등을 논해야 하는지, 매혹적이지만 외설을 의심케하는 지나치게 클로즈업 된 신체의 일부분이 아름다움과 연결되어야만 예술인지 등은 아직까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시선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저자는 이런 나신의 그림, 특히 여성이 성적인 욕망을 표출하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그린 그림을 제국주의적 시각이요, 관음증이라고 말했다. 격하게 동의하며 나 역시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그림인데 불쾌함이라도 표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는만큼 보인다고. 지난 번에 읽은 김선지의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은행나무) 에서 본 수잔발라동도 보이고 또 얼마 전에 읽었던 [페르메이르] (아르테) 의 <진주귀고리 소녀> 도 보이고 내가 가진 책 [햄릿]의 표지인 <오필리아>도 보여서 반갑기도 하고, 그 여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기도 하고 그랬다.
마네의 <올랭피아> 처럼 늘상 보아오던 그림도 있었지만 에밀졸라의 [목로주점] 속 제르베즈를 연상시키는 드가의<세탁부> 처럼 처음보는 그림도 있어서 좋았다. 뿜뿜 아는 것이 늘어난다.
놀랐던 부분 중에 또 하나는 살바도르 달리다. 나는 그의 그림을 흘러내리는 시계로 기억하는데 한쪽 젖가슴을 봉긋하게 내놓고 있는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놀랐다.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화가 나혜석이다. 여태껏 나혜석 그림을 실은 예술서를 보질 못해서 그런지 (물론 어딘가는 있을 것이다) 신기했고, 반가웠고, 고마웠다. 찾아서 보려고 하면 번거로운 것을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나혜석을 조명해주니 넘 좋았다. 예전에 나혜석 평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화가였지만 작가이기도 했다. 그녀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평전에는 고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해석의 어려움이 있었다. 사랑을 노래했다는 소설가 나혜석. 그리고 그녀의 그림. 우아하고 세련됐다. 천재이기에 너무 외로웠을 나혜석의 그림 세계를 더 많이 알아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역시 독서는 독자가 마음껏 우물에서 뛰쳐나오도록 사다리가 돼주고, 날개가 돼준다.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가지고 있으면서 두고두고 펴볼 책이다. 내가 가진 미술 책들은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다. 이렇게 소중한 한 권의 미술책을 또 만날 수 있게 돼서 너무 기쁘고 좋았다. 그림 속에 담긴 여자들의 이야기를 알아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곰브리치의 책처럼 '나는 미술백과요.' 하는 책도 좋지만 나는 이런 류의 책을 더 선호한다. 저자가 주제의식을 가지고 세밀하게 연구해서 분류해 놓은 그런 책 말이다. 여러권 사서 나같은 책쟁이에게 선물해줘야겠다.
정말 근사한 기분으로 잘 읽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