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지만 사실은 49일이다. 죽기전에 49일을 내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로 살면서 주어진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정리 해야 한다. 게다가 '구미호 식당' 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말이다!
주인공은 두 명. 열다섯살 소년 왕도영과 마흔살이 넘은 셰프 아저씨다. 이 둘은 죽었다. 이제 강하나만 건너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 그런데 그 앞에 서호가 막아선다. 서호는 여우인데 강을 건너지 않은 자의 피를 받아먹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단다. 그래서 49일동안 인간 세상에서 더 살고 자기에게 피를 달라고 한다. 왕도영은 그냥 죽음의 세계로 건너가고 싶지만 아저씨는 그렇지 않다. 아저씨가 졸라서 다시 이승으로 오게 된 도영과 아저씨. 서호는 아저씨가 죽기 전에 셰프였기 때문에 원래 살던 동네 근처에 식당을 오픈해주고 - 이름하야 구미호식당- 주의사항을 남긴 채 사라진다. 주의 사항은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는 것. 그러나 아저씨는 바로 나가버린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돌아와 쓰러진다.
도영은 죽기 전에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할머니와 이복형, 아버지와 살았는데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둘렀고- 그마저도 4학년때 사망- 형은 도영의 것은 무조건 빼앗고 갈궜으며, 할머니는 늘 '나가죽어라' 는 식의 말만 달고 살았다. 도영은 흠씬 두들겨맞고 쫒겨나 개집에서 밤을 지샌 적이 있을 정도로 비참하게 살았다. 중학생이 돼서 한가지 낙이 있다면 친구 수찬네 가게 스쿠터를 훔쳐타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아저씨는 사고로 죽었다고만 말할 뿐 그의 과거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식당은 영업이 시작된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댔나? 갑자기 손님이 밀려오자 그냥 시작됐다고 봐야지. 그러나 아저씨는 꼭 만나고 싶은 여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그 여자와 자기만 알고 있는 레시피의 요리, 크림말랑을 출시하고 공짜로 음식을 제공하며 손님들에게 홍보하기 시작한다. 또, 아저씨는 독단적으로 알바를 구한다.
도영은 알바가 들어오자 까무러친다. 양아치같이 굴며 자기를 괴롭히던 형이 아닌가. 심지어 형은 자기를 준 왕이라며 영어이름으로 소개한다. ㅋㅋㅋㅋㅋ 완전 웃겼다. 책을 잡고 얼마나 풉풉 거렸는지!!
솔직히 웃긴 상황은 아니다. 학대받다 죽은 가련한 청소년이 얼떨결에 49일을 살게 되었는데 웃을쏘냐. 하지만 작가가 창조한 세상은 슬프지만 유쾌하다. 그리고 작가의 큰그림. 화해와 정리, 그리고 사랑과 헤어짐.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정말 재밌게 잘 읽었다.
살다보니 내 마음대로 되는게 없고, 우연히 도착한 기회도 발로 뻥 차버리기 일쑤며, 같은 시공간에 있어도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바람에 오해가 쌓이고 미움이 싹튼 적도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도 원하는 때에 취소가 되고 리셋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작은 것에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
'나는 원래 무뚝뚝해.' 라고 말하지말고 곁에 있을 때 고백하고, 터놓고 말하고 일찍 일찍 서둘러서 풀건 풀고 해야할 것 같다.
소설처럼 어떤 여우가 내게 죽기 전에 사십 구일을 선물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받은 날 붙잡아서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책이 작기도 하지만 작가가 글재주가 뛰어난 것 같다. 장면 묘사가 탁월하고 읽을 때 여러번 웃음이 터졌다. 다만 아저씨가 헤어진 여자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데이트폭력이 연상됐는데 그 점을 뉘우치지 않아서 조금 씁쓸했다. 청소년 도서이니만큼 그런 장면에 대한 조심성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