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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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싸움은 존엄을 위한 거야.

우리가 우리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은

맞서 싸우는 것뿐이야.

설령 패배한다고 해도.

설령 죽는다고 해도.

p.487



부커상 수상자이자 인도의 사회운동가이자 소설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아룬다티로이가 20년만에 펴낸 소설 [지복의 성자]를 읽었다. 화제의 소설이기도 했고, 너무 읽어보고 싶었지만 다른 책에 치여서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 이럴때 자주 이용하는 - 독서 모임 선정도서로 지정하면서 같이 읽게 되었다. 늘 느끼지만,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엄청난 일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고, 흔히 내가 말하던 고난이라는 것이 투정이었음을 인지하게 하는 대단히 참혹한 역사의 현장이 여전히 존재한다. 나는 주로 그것을 소설에서 만난다. 또다시 나의 무지를 탓하며 개인과 민족의 존엄을 위해 죽어간 이들의 넋을 기리는 투사들의 장례를 앎으로 치뤘다.


인도라는 나라의 나의 느낌은 이랬다.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닮아 있다는 것. 그렇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안타까운 나라라는 것. 우선,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우리나라처럼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일제치하 40년남짓인 우리나라에 비해 영국은 200년이나 지배를 당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인도의 불가촉천민은 세계의 그 어떤 계급보다 인간 존엄이 심각하게 훼손된 계급이었다는 것. (나는 이 것을 소설 [세갈래 길]에서 제대로 알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그리고 나라가 분단되었고, 역시 분쟁 중이라는 것이 비슷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상과 이어진 제국주의의 땅뺏기 싸움이었다면, 인도는 종교분쟁으로 시작돼 정치적으로 귀결된 분단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투사들이 존재했고 인간 존엄의 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는 연대가 있다는 것이 또 비슷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분단의 아픔은 존재하지만 한 나라로서의 존엄과 위상은 많이 회복되었는데 인도는 그렇지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인도에서 여성이 혼자 여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치안이 무너져있고, 아직도 여성의 존재는 대단히 미약하고 여리다. 모든 여성이 아룬다티처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아직도 인도는 그러기에 넉넉한 나라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란 여성으로서의 삶은 그다지 불행하지 않다. 나아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인도나 중동지역의 여성의 삶을 소설로 접하면 한국여성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여성만의 삶을 다룬 책은 아니다. 주인공이 두 명의 여성이지만 그래서 여성의 시각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지만 좀 더 혁명적이고 전투적으로 바라보고 읽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책이 너무 양성을 모두 가진 한 인물의 삶에만 초점을 맞춘채 홍보되고 있어서 대단히 안타까웠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젠더의 문제를 벗어나서 논해야 하는 아주 훌륭한 저서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안줌이 가지고 있던 두개의 성기와 그 후의 삶을 궁금하게 만드는 데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좀 그랬다. 읽고나니 안줌만큼 중요한 틸로와 무사, 그리고 다른 스러져간 인물들의 삶이 모두 인도를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인데도 불구하고 누가봐도 흥미를 끌만한 분리되지 않은 성(性)에 대해 초점을 맞춘 것이 안타깝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두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가 하나로 귀결되는 이야기 형식을 가지고 있다. 우선 안줌을 먼저 이야기 해야 한다. 인도의 평범한 신분의 평범한 가족에게서 태어난 안줌은 그의 부모가 간절히 바라는 아들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딸도 아니었다. 아들을 상징하는 성기 아래에 딸의 성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히즈라였다. 히즈라는 두 개의 성징을 동시에 갖는 인간의 형태를 말한다. 지금이야 인도에도 의술이 발달해 두 개의 성기 중에 하나를 포기하는 시술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안줌이 태어날 당시에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아들로 자라나길 원했다. 안줌은 여성성을 택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히즈라들의 안식처인 콰브카로 가서 거주하게 된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종교적으로 분리되면서 계속 전쟁중이다. 이 와중에 난민, 빈민, 고아, 병자들이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로 몰려온다. 인상깊었던 것은 안줌이 콰브카 잔나트게스트 하우스에 장례식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엄격한 카스트제도 때문에 장례식 조차 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장례 절차를 진행했다는 것이 정말 멋있었다.


안줌은 누구나 신기해하고 불편해하는 성징을 지녔지만 그 성품만큼은 모두를 아우르는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안줌은 너무나 사랑하는 딸 자이나브를 입양한다. 다소 거친 엄마 밑에서 그래도 안전하게 커가던 자이나브는 딱 한번 엄마 안줌을 잃을 뻔한다. 그 때 좀 슬펐다.


틸로는 또 하나의 중심인물인데 책의 후반부를 이끄는 인물이다. 틸로는 엄마가 낳자마자 버렸는데 생모가 다시 입양을 하는 희한한 과거를 지녔다. 피부색이 검었고, 아버지와 신분을 알 수 없으므로 인정받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무사라는 카슈미르인을 사랑하게 됐고, 안전을 위해 나가랑 결혼했지만 결국엔 미스제빈을 입양해 기르게 된다. 서평에 틸로와 세 명의 친구를 모두 적을 수는 없지만 인도사회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가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분할되면서 종교의 분쟁도 겪었지만 민주화를 이루면서 공산주의와 이념적으로도 대립했다. 특히 국경지대에 이르는 카슈미르란 곳이 많은 억압을 당했는데 소설에서 무사와 대립하는 소령 암리크싱과의 일화를 보면 마치 우리나라 50년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도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 이점을 명확하게 설명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지닌 냉소적인 말투와 여러명으로 설정된 주인공들은 독자로 하여금 다각적으로 인도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이다. 그래서 다소 어지러울수도 있다.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을 잃은 무사, 그가 사회운동가로 평생 살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던 부분은 얼마전에 읽었던 [철도원 삼대] 생각도 났다. 어느나라든 혁명을 위해 스러져간 들풀같은 전사들이 도처에 있었기에 지금의 안녕이 가능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예전에는 신분때문에 학대받았다면 지금은 온갖 전쟁과 분쟁 속에서 힘이 없어 학대당하고 죽고 또 죽어야 하는 인도 국민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난임이 많아서 아기 공장을 운영한다는 인도. 그 안에서 당당하게 사랑하는 남자의 아기를 중절수술하는 틸로의 모습에서 깊은 슬픔을 느꼈다. 아름다운 미래를 물려줄 수 없기에 빼들었던 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을 도려낸 틸로를 보면서 [빌러버드] 가 생각난 것은 또 왜일까.


안줌과 틸로 모두가 인도를 대표한다면, 안줌의 두 가지 성은 종교로 분열돼서 끊임없이 전쟁하는 두 나라를, 틸로는 화합을 가져올 움직이는 젊은이를, 미스제빈은 희망찬 미래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아룬다티가 인도에서 태어나 이만큼의 영향력을 끼치며 이런 소설을 펴 낼 수 있었다는 것에 대단한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슬프지만 값진 소설 [지복의 성자]! 많은 이들이 읽고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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