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안드레스 곰베로프 지음, 김유경 옮김, 이기진 감수 / 생각의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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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엘의 아버지로 알려진 이기진 교수님이 감수를 했다고 독서회 회원이 함께 읽자고 했던 책이다.

물리라는 말 자체가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런 마음이 다소 누그러진다.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생활 속 물리가 재밌는 이야기처럼 다뤄져 있어서 읽기가 좋다.



사우나는 100도씨여도 들어가서- 어험~ 하고- 앉아 있을 수 있지만 물 100도씨 수영장에서는 사람이 수영할 수 없다며 너스레를 떤다. 100도씨면 죽는 온도인데 ㅎㅎ 그런데 만득이 시리즈같은 농담따먹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설명해준다. 물 속에서는 땀이 증발할 수 없고, 인간을 죽일만큼의 열 전달율이 공기보다는 물속이 빠르고 강력하다고 하니 왜 내가 삶겨죽을 수 밖에 없는지 절대 잊지 않을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열과 에너지, 그러니까 이른바 줄 어쩌고 외울 때 시험 때매 외우긴 했지만 절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럴때 꼭 한 번 쓰는 말, 내가 오리지널 문과라서 그랴!!~~) 나이 마흔이 다 돼가서야 이 책을 보고 줄의 에너지법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1L의 물을 섭씨 1도 높이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500kg의 물건을 1m 들어올리는데 필요한 에너지와 같다. p.24


제발 부탁인데 역사든 과학이든 이렇게 쉽게 설명 좀 해주라. 예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좀 만들어서 귀에 박히게 예?!



나는 크리스찬으로 믿음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애독자로 이 세상에 모든 명저를 섭렵하고 싶은 입장에서 자꾸 부딪히는 것은 종교는 미신이고 과학은 진리라는 짜증나게 터무니없는 말들이다. 환경에 따라 동식물의 생활습관이나 형태가 나름 변모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창조의 말씀은 거역할 수 없는 바 나만의 가치관을 확립하며 세상의 온갖 지식을 만나보고자 하지만 늘 창조의 설화엔 증거가 없다고 말하는 과학서적과는 다르게 이 책은 나에게도 자유함을 주었다.




과학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증거들을 모으고

이론을 정립할 뿐이다.

과학은 절대 진리가 아니다. p.27


옳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우주적 먼지들이 도처에 있다. 누구도 확신하지 마라!!



재밌는 지식들도 많았다. 마그네슘의 색깔이 초록색이라는 것도, 색이 우리를 자극한다는 것도 재밌었다. 사진을 보정할 때 왜 대비를 높이는 것이 매력적인지(p.56)도 잘 적혀있고 말이다. 가산혼합, 감산혼합 등 학교 다닐 때 배운 것들도 속속 생각나니 추억 돋고 재밌었다. 엇, 배운게 있긴 있네. 도움도 되고 말야.



예전에 읽었던 책들도 많은 도움이 됐다. <천개의 태양보다 밝은> 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원자폭탄 얘기라 하이젠베르그, 오펜하이머, 이렌퀴리 같은 사람들 많이 나왔는데 여기서도 나와서 반가웠다. 물론 아인슈타인도^^

20세기 초만해도 인간의 평균수명은 거의 30세였다고 한다. 지금은 3배가 훌쩍 넘으니 유구한 지구 속에 내가 우뚝 서있구나 생각하니 사뭇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또, 살충제나 비료, 유전공학등을 너무 무서워할 것 없다. 약간의 규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없애기에는 우리가 받은 것이 더 많다고 보는 시각은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이 보면 천국에서 살아돌아와 경을 칠 일이었다.




뜨거운 것은 차가운 것으로 갈 수 있어도 차가운 것이 다시 뜨거운데로 갈 수는 없다.p.149

물리학도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듬뿍 넣은 문장들도 좋았는데 읽다보니 질투도 났다. 원서로 읽을 수는 없겠지만 글을 잘 쓰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백신의 위험성을 이야기 할 때 곧잘 수은중독을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먹는 생선 속에 들어있는 수은의 양이 평생 맞는 백신 속의 수은보다 많다고하니 과학발달의 폐해에 딴지 걸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생각해보라는 작가의 조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제목이 물리학 산책인데 산책이라기보단 주제가 있는 강연같은 느낌이었다. 정재승 교수님의 <열두발자국>도 생각나고. 그냥 이런 책들은 청소년도 함께 읽고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의 발견을 넘어서 지혜의 단추가 될 수도 있는 물리학. 참 재밌었다.

술은 못하지만 안드레스와 와인한잔 따라놓고 그 안에 담긴 우주를 이야기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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