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 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있어.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야."
p.75

 한 남자가 있다. 폴 케이시. 그가 50년전 사랑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이 것은 지나간 그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나 지금도 생활 전반에 잠식돼 있는 그런 사랑 이야기다. 첫사랑은 불 같았고, 지독했고 하나도 풋풋하지 않았다. 첫사랑은 기억에 남았으나 그 기억이 온전한지 공평한지는 알지 못하겠다.
50년 전에 폴은 열아홉살이었다. 테니스 클럽 멤버였다. 40대의 수전을 알게 되고 팀이 되고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수전의 사랑은 10대의 그것과 같지 않았다. 적당히 염세적이고 또래에 비해 호들갑스럽지 않았던 폴케이시는 뜨겁고 빠르게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수전이 남자를 그다지 유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어쩌면 폴의 부모가 지나치게 그녀를 경계했기 때문에 말리면 더 하고 싶은 충동으로 수전과 불륜의 관계를 선택한 것은 아닌지 염려되었다.
 수전도 독특한 캐릭터다. 열아홉살이랑 불륜에 빠진 것도 모자라서 남편과 딸이 있는데도 그를 집안으로 끌여들여 친구처럼 지낸다. 그런 스스럼없는 행동이 독자를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그러나 다소 모자라보이는 수전의 남편 매클라우드는 그들의 만남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것은 내게 무척이나 반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을 떠나 확실히 알게 된다. 둘은 서로에 대해 진심으로 교감하고 진짜 사랑을 나눈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과 보호자의 성적 추행으로 남편과 결혼을 해서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던 수전에게 폴은 진정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폴은 혈혈단신, 수전은 아니었다. 남편이 싫어도 두 아이의 엄마고, 남편은 그를 건져서 살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런 수전이 사랑하나만 믿고 폴을 따라 집을 나가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자 한다. 하지만 불가하다. 폴은 어리고 학생이고 대학을 다녀야 한다. 수전은 본래의 집과 폴과 함께 사는 집을 오가며 죄책감, 환멸, 우울증에 빠지고 급기야 알콜 중독자가 된다. 그리고 수전을 향한 남편의 구애, 그 과정에서 수전이 겪은 과거지사가 드러난다. 그녀의 남편은 수전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폭력을 휘둘렀다. 술을 싫어하는 수전의 머리를 젖혀 억지로 술을 들이붓고, 수전의 외도를 알고나서는 때리기도 한다. 그리고 수전에게 수치를 주고 천대한다. 수전의 딸은 엄마를 외면한다. 그런 수전이 술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점점 미쳐가는 모습을 보였고, 급기야 폴이 그녀를 포기했을 때 나는 울었다. 같은 여자로서 정말 너무나도 슬펐다. 이런류의 슬픔을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돌이킬 수 없고, 개선 될 여지가 없고, 빨리 죽을 수도 없고, 깊은 심연의 고독과 아픔과 가슴이 저미지만 그 사람을 놓을수도 버릴 수도 없는 상태. 원망의 목소리만이 허공에 맴돌다가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이런 거지같은 슬픔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읽는내내 너무나도 답답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전은 죽었다. 그렇게 죽었다. 진실한 사랑을 맛 본 대가는 비참한 죽음뿐이었다. 죽을 때는 그 남자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다정했던 딸은 떠났고, 무뚝뚝했던 딸이 겨우 엄마를 병원으로 데려갔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죽었고, 엄마를 사랑했던 자기보다도 더 어린 남자는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을까? 엄마의 부정(不正). 그러나 엄마를 부정(不定)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비정함 속에서 수전의 작은 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이가 들면 과거에 의무가 생긴다.
하필이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에."
p.302

 

 

줄리언반스는 이미 <예감을 틀리지 않는다>에서 만나본 적이 있다.

담담한 문체, 그렇지만 숨어 있는 철학. 시대를 관통하면서 사람을 통찰하는 인물상. 그러나 주인공은 다소 찌질하다. 다만 사랑이야기답게 <연애의 기억>의 폴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토니보다는 덜 찌질하다. 그래도 폴은 진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안토니가 친구와 애인이 자기를 배신했다고 평생 부들부들 떨며 살아왔다면 폴은 그래도 자기의 사랑과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폴의 기억일 뿐이다. 케이시 폴의 입장이었을 뿐이다. 수전의 입장도 듣고 싶다.

"부단히 기록을 남겨두었다해도
어쩌면 그 기록의 방식은 엉뚱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안토니웹스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남겨졌으니 피해자고 떠났으니 가해자라는 발상은 잘 못됐다. 그렇게 따지면 가정폭력 속에서 죽어갈 한 여자가 필사의 사랑을 선택해 떠난 것도 가해란 말인가. 수전의 삶은 그저 아프고 슬픈 오래전 한 여자의 이야기였다. 누구도 어떤 잣대도 들이댈 수 없다. 그녀에게 사랑은 '불가피한 사실로서, 흔들릴 수 없는 주어진 것 (p. 353)으로 거기 있었던 것 뿐이다. 그저 그뿐이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70대가 아니었다면 쓸 수 없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30대인 내가 이해하기에 어느부분은 몹시도 현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자기 반성인지 환멸인지 모르겠는 감정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간다. 지독한 사랑과 도덕사이에서의 번민. 포기할 수 없는 엄마로서의 삶. 깊은 심연의 슬픔이 책을 덮은 여전히 밀려든다. 아직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책은 1,2,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고 2부는 2인칭시점이다. (언제부턴가 소설 속에서 2인칭 시점이 많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내가 소설을 많이 읽어서 분류가 가능해진 것인지 아니면 트랜드인지는 모르겠다) 3부는 당연히 전지적 작가시점이겠지 했는데 이건 뭐 혼재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다. 금방 '너'랬다가 '그'랬다가 '폴'이랬다가. 작가의 필력이 그것밖에 안되냐고 하기에는 이놈의 사랑 자체가 그러하니 어쩔수 없었다고 변명해주겠다. 사랑 그 놈 자체가 오락가락 도저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와중이니 시점뿐만아니라 마음 자체도 혼잡, 혼재 할 수 밖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랑을 말하는 서술자 본인 자체가 미쳐버린 것 같은 사랑에 질려서 도망치는 중이라 그래서 어찌할 수 없다고.

 사랑에 끝이 있을까? 사랑은 끝은 파국이고 그것은 기억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사랑이 끝난 게 아니라고 본다. 폴케이시는 젊었고 지금도 젊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가지만 그의 가슴 한 구석은 뻥 뚫려 있다. 어린시절 만난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랑과 10년을 살았다. 그 후에도 가끔씩 그녀를 찾아갔다. 폴은 해보려고 해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저 부유할 뿐이다. 책임질 것도 책임질 필요도 없지만 그렇게 죽어간 그녀는 그의 삶의 전반을 잠식하며 천천히 살아갈 것이다. 폴은 여전히 그녀를 업고 기억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어느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단 하나의 사랑이 그렇게 떠나지도 않은 채 유령처럼 평생 그의 삶가운데 살 것이다. 사랑에는 끝이 없고, 포기 한 사랑에는 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벌을 추억이라고 생각하든 그리움이라고 위로하든 자기의 몫이지마는.

 원제는 'The Only Story'
개인적으로 나는 이 제목이 끌린다. 다산 책방에서는 왜 이 책의 제목을 '연애의 기억' 으로 바꾸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가장 슬펐던 부분은 이것이다. 이로써 나는 이 들의 사랑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래서 슬픈건지 그 사랑의 끝을 수전이 가장 나약할 이 때에 보아야 하는 게 슬퍼서인지 알 수는 없었다.
폴이 수전을 돌보며 그녀가 얼마나 술을 먹고 그를 괴롭히는지 일기형식으로 적었었다. 여느날과 같이 일기를 쓰려는데 아주 힘겹게 적힌 글씨를 보게 된다.

 


' 네 새까만 펜으로 네가 나를 미워하게.'


 그 다음 글은 알 수가 없다. 수전은 거기까지만 썼기 때문이다. 알콜중독증과 심각한 우울증과 합병증 때문에 아마 더 쓰기 곤란했을 것이다. 아니면 더이상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슬픔과 아픔이 그녀를 먹어버리는 중일지도 모르고.
그 한 마디의 문장이 왜 이렇게 서글펐는지 모르겠다.


 줄리언 반스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줄거리를 전달할 수야 있겠지. 작가의 철학과 사상, 생각을 담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부족하다. 하지만 알 수는 있다. 책을 읽어보면 되는 것이다. 독자는 반드시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러면 사랑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더없이 좋은 소설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삶의 철학과 현학 속에서 독자는 결국 '나'를 뱉어내게 된다. 이는 비단 그가 노작가여서만은 아닐 것 같다. 그의 문체는 원서로 읽고 싶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렇게 까지 했는데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가 덜 살아봐서 일 것이다.

주인공의 나이차이가 충격적이어서, 주인공의 사랑이 어떻게 파국에 이르렀는지 보게 하기위해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에게 속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다. 삶에 대한 단 하나뿐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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