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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망고 - 제4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36
추정경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다수의 청소년 소설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은 비교적 협소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청소년 소설은 가정, 우정, 학교의 문제라는 한정된 주제 안에서 서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불어 한정된 배경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 소설의 대부분이 성장담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의 성격화가 중시되는 것에 반해 배경의 다양성은 크게 강조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청소년 문학의 특성상 유사한 플롯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시공간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추정경의 <내 이름은 망고>는 제4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드는 새로운 사회적 배경을 제시한 <완득이>를 시작으로, 장르의 변주를 시도한 <위저드 베이커리>, 시간의 확장을 꾀한 <싱커>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소설에서 배경의 다양성을 위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내 이름은 망고>는 앙코르 와트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씨엠립(씨엠레아프)을 배경으로 한 소녀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서사 공간의 확장을 통해 이야기에 풍부성을 더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캄보디아는 현실적인 공간이지만, 다른 많은 알려진 나라들과 달리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공간으로 선뜻 와닿지 않는 이국이다. 그래서인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속에서 환상을 꿈꾸게 해준다. 현실과 환타지의 경계쯤에 있는 이 캄보디아라는 공간은 그래서인지 과감한 일탈과 모험 또한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작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으로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는 캄보디아라는 국가라는 배경에 대한 구체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소설은 그 현실의 공간을 단순히 방관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삶의 터전 깊숙한 곳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얼마 안 되는 인구가 각국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악착같이 매달려 삶을 꾸려가는 치열한 공간, 의무교육을 받아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생계를 위해 관광객들을 상대로 조악한 물건을 팔거나 일달러를 구걸하는 그 곳으로 포커스를 맞춘다.
이처럼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깔고 한국인 소녀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다름에 대한 이해가 한 축을 이룬다. 앙코르 와트라는 공간적 배경에 대한 이방인과 현지인의 서로 다른 시선은 이 차이를 더욱 부각시킨다. 처음 캄보디아는 '숨쉬기 조차 힘든 더운 나라'에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크메르어'를 배워야 하는 열등한 나라로 비춰진다. 수아에게 캄보디아는 어떻게든 돈을 모아 한시바삐 떠나고 싶은 공간이다. 게다가 그 곳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또래 아이들의 삶조차 이해 안가는 것 투성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차비를 벌기 위해 돈을 모으는 수아와 압사라 무용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생계전선에 뛰어든 쩜빠는 500달러와 50달러라는 돈의 액수만큼이나 너무나 다른 환경에 속해 있다. 교육을 받는 대신 온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뚝뚝이 기사 노릇을 하는 쏙천도 수아의 눈에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의 차이는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를 낳고 갈등을 심화시킨다. 그러나 이방인의 옷을 벗고 생활 전선의 최전방에 뛰어든 수아는 조금씩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사이가 좋지 않던 쩜빠와는 예기치 않게 한 배를 타면서 보편적인 성장통을 공유한 든든한 동지로 점차 발전해간다. 또 3년 전 캄보디아의 한 학교에서 시혜자와 수혜자의 관계로 만난 쏙천과는 치열한 생계에 뛰어든 동료로서 공감대를 쌓아간다. 수아가 쩜빠, 쏙천과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충동이 다양성에 대한 포용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다. 소설은 이처럼 '다름'에 대한 수아의 시각의 변화를 좇으며 다문화 사회를 받아들이는 올바른 방법을 제시해준다.
입시와 경쟁의 산실인 학원이라는 현장을 떠난 소설은 이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을 아우르며 세상을 보는 시선을 확장시킨다. 타국의 청소년들의 전혀 다른 삶의 방식들은 동일한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탐구심과 모험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협소한 사고의 개방과 다문화에 대한 포용에 이르기까지 서사공간의 확장은 단순히 이국적 분위기 조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게다가 성장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주체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해 주는 역할까지 한다. 수아와 쩜빠의 성장을 이끌어 주는 데는 뚜렷한 조력자 대신 삶이 현장으로서의 공간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이름은 망고>는 청소년 소설에 현실적 공간으로서 서사공간이 확장을 가능케 함으로써 청소년 소설의 또 다른 잠재력을 드러내 보여주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