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평점 :
조정래 선생님의 굵직한 대작인 [태백산맥],[한강],[아리랑]으로 우리의 시대적 아픔을 잘표현한 작가다. 그의 작품 속에 시대적 우리 아픔이 오롯이 묻어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1%의 이야기가 아닌 99%의 국민의 정서를 더욱 더 공감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약자들의 고된 삶의 현실과 이를 이용하는 파렴치하고 비열하고 비겁한 우리의 모습이 드러난 그의 젊은 시절의 단편모음을 만나게 되었다. [외면하는 벽]이란 새로이 출간된 책을 통해서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조정래 작가가 문예지에 발표한 8개 작품을 수록한 이 책은, 1999년 '조정래 문학전집'(전9권)의 여섯 번째 책 '마술의 손'으로 출간되어 사랑을 받아온 작품집의 개정판이다. 청년시절의 문제의식과 고뇌가 그대로 담겨있는 이 작품집에서 급속한 근대화가 빚어낸 각박한 사회상, 전쟁이 남긴 혼혈의 아픔을 예리한 시선으로 파헤친다.
이 책에 담긴 단편은 비둘기, 우리들의 흔적, 진화론, 한,그 그늘의 자리, 마술의 손, 외면하는 벽, 미운 오리새끼, 두 개의 얼굴 등 총 8개로 이루어져 있다.
사상범으로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들어온 암벽 감옥, 그 속에서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었다. 햇빛 한 줄기 조차 없이 간수가 깨우는 기상시간이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지만 세끼 먹을 수 있으며 아내의 체취와 기억을 베게 삼아 아내를 기다리던 그.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그에게 간수는 자신의 현실을 인식케 하고 있었다. 자신이 갇힌 곳이 백골섬이며 더 이상의 범죄자가 이곳에 들어오지 않고 언젠가 여기도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그와 친해진 간수는 탈옥의 기회를 준다.
삶의 새로운 희망인듯 다가온 탈옥이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은 결국 절망의 나락이 되어버린 ‘비둘기’란 작품. 추위와 굶주림을 그는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해피엔딩의 동화처럼 빠삐용의 탈옥이 자유와 희망으로 다가서지 못한 슬픈 사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실은 이런 거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어느 날 가정형편상 학교를 접고 생업에 귀로에 서야했던 동호. 어린 동호는 이모든 처지가 어린 자식들을 남기고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치닫게 되고 엄마를 찾아 남아있는 가족을 뒤로한 채 몰래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게 된다. 그러나 넓은 서울에서 엄마를 만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굶지 않기 위해 일을 시작하게 된다. 동호가 만난 서울의 각박한 사람들은 그의 노동력 착취는 기본이고 모질게 학대까지 하게 된다. 인두껍을 쓰고 하지 못할 짓을 어린 소년에게 해대는 비열한 어른들에게 과연 어린 동호는 무엇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
그 시절 누구나 먹고 살기 바빠 곁을 돌아보기가 힘든 세상이었다지만, 세상은 한 소년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따뜻한 누군가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갈 수 있었을까 싶다. 동호의 불행의 진화를 다룬 ‘진화론’을 읽으며 가슴 속 묵직한 울화가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시대의 아픔을 관통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 그것이 너무 적나라해서 마음이 무겁다. 옆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이들에게 잠시 멈춰서서 옆을 돌아보라고 하는 듯하다. 마음 한켠 내어주고 관심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아질 수 있는데 옹색하게 마음 한켠을 내주기 어렵다고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의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지금 소통을 위한 마음 나눠주고 들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이 사치일까?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