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소식, 그것도 신예작가라 할 수있는 작가 '한강'이 그 주인공이란 점이 더욱 놀라웠다. 그런데 나 외에 많은 독자들에겐 이미 그 진가를 인정받는 작가란 걸 알게 되면서 그동안 편향적 독서에 임했음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그녀의 수상소식이후 베스트셀러를 달리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그녀가 어떤인물인지 작품성향은 어떤지, 궁금증을 키우면서 제일 먼저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만났다.
수수한 여인의 모습과 수상소식을 알리는 띠지뒤 표지엔, 어둠이 내려앉은 작은 산 속의 잎이 풍성한 나무와 빈약한 나무 두 그루가 자리잡은 모습이 그려져있다. 왠지 모를 묵직함이 느껴지는 250여쪽의 책이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3부작의 각기 따로 발표된 연작소설이다. 가족이란 연결선상이었던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 은혜로 이어지는 세편의 화자가 각기 영혜와의 관계 속 이야기를 심도있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채식주의자> 아내가 채식을 하기 전까지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남편의 이야기로 글은 시작된다. 영혜는 어느날 기이한 꿈을 꾼 이후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육식은 물론, 남편에게서 고기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남편과의 잠자리도 거부하게 된다. 그 이후 나날이 말라가는 영혜의 소식을 남편은 처가에 알리고, 처가 식구가 모인 날 드디어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아버지가 영혜에게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영혜가 손목에 자해를 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영혜의 남편에 대한 실망감은 말할 수 없다. 딱 그만한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남편은 정말 남의편임을 실감하게 하는 캐릭터다. 그동안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없었어도 그렇지, 그럭저럭 가정을 이루면 다 이럴까 싶을 정도로 냉혹하다.
도저히 육식을 용납할 수 없었던 그녀. 꿈을 이야기했지만 그건 잠재의식 속 죄책감이 원인이 되었다. 사람을 물었다는 이유로 비참하고 잔인하게 죽음을 맞은 개에 대한 죄책감이 꿈으로 발현된 것이다. 어릴때 아버지의 이런 잔인함과 남편의 무심함이 육식을 거부하게 했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구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로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채식주의자와는 좀 다르다.
<몽고반점> 형부와 처제의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어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다. 다만 식물인 꽃으로 페인팅한 후의 교합을 그렸지만 개인적으론 어떠한 미학으로도 이해할 수없다. 지극히 현실감각을 쥐고 있는 이성때문에 내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야하나? 그저 인간의 동물적 본성인 성욕과 공격성에 대한 식물적 승화를 그린이야기라 여겨도 여전히 내겐 어렵게 다가선다.
마지막 작품은 <나무 불꽃>.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아이를 돌보며 요양병원에 있는 영혜를 찾아가는 언니 은혜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은혜에게도 영혜처럼 도피하고픈 때가 수없이 왔지만 현실을 살아내야하는 은혜로선 그 경계를 넘을 수 없다. 삶의 묵직함에 짖눌려 살아온 그녀에겐 동생도 중하고 어린 자식도 중하기에 정신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착하게 산다는 건 뭘까?' 하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