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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빅 픽처]란 작품으로 알게 된 더글라스 케네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데 선택이란 걸 하게 된다. 그 결과가 지금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내가 만약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나 동경을 지니게 되는 게 사람의 속성이다. 그는 그런 공감은 물론이거니와 생생하고 치밀한 묘사, 매력적인 인물들, 스피디한 전개 또한 일품이기에 그의 작품은 읽는 도중에 손을 떼기가 쉽지 않다. 또 한 가지 더한다면 다방면에 박식함이 읽는 이에게 흥미를 더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빅 픽처], [위험한 관계], [파리5구의 여인], [더 잡]을 읽었고 이제 이 책을 마주했다. 책 두께의 압박이 오면 좀처럼 손이 안 가는데, 천재적인 이야기꾼의 책은 두께의 부담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보다는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지 기대만으로 책장을 펼쳤다.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며 자란 제인. 그녀가 미숙하고 어린 나이에 내뱉은 ‘결혼도 않고 자녀도 낳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가 도화선이 되어 아버지는 떠나고 그 책임을 제인에게 전가하는 엄마와 살게 된다. 그녀는 그 불행을 피해 하버드로 달려온다. 그런 그녀에게 위안이 되고 사랑이 되었던 지도교수 데이비드와의 밀회는 정상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찾아온 그의 사고소식은 그를 깊은 상실에 빠지게 했다. 좋게 말하자면 사랑이지만 유부남인 만큼 불륜이다. 본인들만 아는 비밀이라 생각하지만 그들 외에 다수가 알게 되는 그들의 관계는 이후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에 매번 낭패를 만들게 된다.
그래도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그녀에게 나타난 영화계에서 일하는 테오는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였고 사랑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다른 그들의 만남은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에밀리를 출산하면서 그 위기는 더욱 극대화되었다. 거액의 빚을 제인에게 안기고 떠나버린 그에 대한 배신은 그를 좌절에 늪으로 몰았고, 생의 끝을 의지했던 딸 에밀리마저 사고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녀는 더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녀의 생은 불행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희망도 보이지 않게 되면 생각하게 되는 세상과의 이별. 그런 위기 속에서 그녀는 어떻게 헤쳐 나올 것인가.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떠했을까? 묵묵히 눈도 떼지 못하고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과연 그녀가 다시 일어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물리학에서는 움직이는 입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 입자들이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죠.’ (중략)
‘바로 그게 인간의 운명이야. 임의대로 떨어져 나온 입자들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듯이 인생도 우리를 상상하지 못한 세계로 데려가는 거야. 결국 불확정성 원리가 인간 존재의 매순간을 지배하는 것이지.’ -566p